집으로 돌아오자 covid 19와 전쟁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자택격리 3주째

by 다나 김선자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저녁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대국민 담화가 발표됐다. 전 지역 이동 제한령이 발동되고 모든 학교 상점 회사는 업무 중지 자택 근무와 격리에 돌입했다.

몇몇 예외를 남겨두고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며 '지금은 전쟁 상황'이라고 프랑스의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으로 인하여 친지들의 진심 어린 염려와 안부 인사를 받으며 2주 동안 조용히 전염 증상을 관찰하고 지켜보았다. 다행히 그들의 사려 깊은 마음 덕분에 무탈하게 2주가 지났다.

프랑스 정부는 추가 격리 조치를 연장, 강화하여 또다시 최소 2주간 더 자택에 머물기를 명하였다.


이동 제한령이 실시된 지 3주째 접어든 현재 코비 19는 절정으로 치닫아 연일 마스크 대란과, 가족들 배웅도 받지 못한 채 하루 사이 몇백 명씩 세상을 등지는 이 암울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잊고 있었던 것들을 점점 되돌아 짚어보는 시간으로 서서히 늘어나는 현실적 추세다.

그리고 먼저 자연이 그 변화를 감지하고 반응했다. 조금씩 새로운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틀 전에는 파리 코미디 프랑세즈 앞 도로에 사람, 자동차 대신 뒤뚱뒤뚱 걸어가는 한쌍의 청둥오리와 한 무리의 청둥오리가 외곽 순환도로에서 오토바이 탄 경찰들 에스코트를 받으며 줄지어 가는 모습. 아주 가까이서 밤중에 들리는, 다시 찾아온 올빼미 소리.

또한 공해 없는 파리의 하늘은 잔인하도록 맑고 파랗게 빛난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에펠탑은 인적 없이 푸른 하늘 아래서 잠잠하게 침묵한다. 파리에 과연 이런 날이 있었던가? 참 오랜만에 가지는 휴식이라고 늘어지게도 고요한 낮잠을 즐긴다.


우리 집에도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20여 년 살았지만 한 번도 없었던 일 그래서 이 상황이 코비 19 현상이라고 아무 의심 없이 우리는 생각한다.

프랑스 주택들은 지하나 반지하 또는 1층에 차고나 창고를 두고 있다. 예부터 포도주를 비롯한 음식을 저장하거나 각종 도구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우리도 주택이라 프랑스 어느 집과 마찬가지로 반 지하 창고가 있어 공간 활용을 한다. 우리는 12도를 항상 유지하는 반지하 창고에 작품 보관과 포도주를 비롯한 각종 식재료들을 둔다.

3일 전 남편은 반지하 창고에 둔 과일을 가지러 갔다가 쥐의 소행으로 보이는 갉아먹은 아보카를 발견했다. 분명 그들의 이빨 자국이다.

'이크 야단 났네' '심각한 상황' '새로운 현상' 우리는 즉각 모든 음식물을 부엌으로 옮겼다. 그리고 당장 쥐를 비롯한 곤충 방어 탐지기를 구입했다.


그동안은 은밀하고 외진 곳으로만 기죽어 다니던 동물들이 함묵 속으로 접어든 인간 세상에다 자신들의 영역 확장이 시작되었다.

차량들 소음과 분주한 사람 움직임에 감히 진입하지 못하던 장소였지만 한적한 이 틈에 자유롭게 활보하다 용케도 안전하고 먹을 것까지 있는 이 평화로운 새로운 공간에 서슴없이 기어들었다. 나는 그의 안착을 막아 온전히 정착하기 전에 쫓아낼 각오를 했다. 새로운 곳에 익숙되어 가족도 늘어나고 완전한 근착 후에는 떠나기가 또는 떠밀어 내기란 좀처럼 쉽지 않으므로.




비엔나에서 돌아온 다음날 계란 없는 아침식사와 점심으로 냉동 생선과 브로콜리, 김으로 간단히 해결한 후, 큰 장은 내일로 미루고 당장 내일 아침 식단에 올릴 계란을 사러 인근 마켓으로 갔다.

'이런 난리가 났구나'

계란은 동이 났고 마켓 진열대는 구멍 난 호주머니처럼 헐렁했다.

그제야 현실 파악이 된 우리는 느리고 순진함을 돌이켜 자송하여 몇 걸음 떨어진 작은 아랍인 가게를 갔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내친김에 자동차를 타고 또 다른 신선한 채소가 유명한 슈퍼마켓을 찾았으나 우리는 이곳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달걀은커녕 메추리알도 없이 싹쓸이된 진열대가 덩그러니 우리를 비웃고 있었다. 그 많던 채소는 누가 다 가져갔는지? 평소 사람들이 이토록 채소를 잘 먹었던가? 정말이지 텅텅 비어서 휑뎅그렁했다.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실제, 이것을 두고 심리적 공포심이라 말하던가?

우리는 곧바로 정신을 가다듬어 "아무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도 암탉은 내일도 알을 낳을 것이다"라고 자존 자족하여 마지막 남은 야채 몇 개만 주어 담아 돌아왔다.




3월 17일 화요일 일찍 감치 우리는 계란을 사러 또다시 슈퍼마켓을 찾았다. 마켓 진열대에는 빈틈없이 물건들로 차곡차곡 쌓였고 옹기종기 달걀로 꽉꽉 잘 채우진 상자들, 빵집, 정육점 앞에서 듬성듬성 적정 간격을 두고 줄을 선 사람들 모습, 또 다른 새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그렇게 코비 19가 우리 곁에 바짝 도착했음을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12시 정각부터는 휴교령과 이동 제한령이 실시되었다.

생필품점 및 약국 등의 의료시설과 주유소, 그리고 애완견을 동반한 산책이나 조깅 같은 근거리 외출은 주거지로부터 반경 2킬로미터 안에서 제한되어 허용했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서명 날인된 통행증을 소지하여 경찰 검열 시 제출을 전제로 한다.

그날 저녁 티브이 뉴스에서는 시행 첫날의 이색적인 풍경을 보여 주었다. 그야말로 전쟁이 났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다.

슈퍼마켓마다 생필품을 사러 나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가 하며 텅 빈 진열대 모습과 시골집으로 떠나는 파리지앵들의 자동차로 고속도로는 심하게 정체되고, 부모님 댁으로 가는 학생들이나 파리의 비좁은 아파트를 벗어나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로 역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마치 팔월 바캉스를 방불케 하는 피난민 들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듯 파리지앵들의 도착을 두려워하는 노르망디나 브르타뉴 지방 사람들. 이것 역시 사회적 불신으로 와 닿았다.




3월 18일 성명 발표 이틀째 날 화요일은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햇살과 휴식! 만연한 봄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로질러 삽시간에 도착했다. 찬란한 햇살이 온 대지를 빛나게 한다. 백화만발 탄성을 지르고 새들이 노래하며 대 자연이 큰 숨, 긴 호흡으로 다 함께 합창한다. 코비 19보다 더 강렬한 힘으로!


오후 우리는 날인한 증명서를 호주머니에 넣고 평소대로 산책을 나갔다. 자동차 없는 거리는 걷기에 더없이 좋았다.


목련꽃 떨어지고 개나리 활짝, 튤립 고개 들며 이미 떠나버린 자두꽃, 살구꽃 이어서 복숭아꽃, 체리꽃이 덩달아 집집마다 언덕으로 피어나고, 바람 불어 후루룩 꽃비인가 눈꽃인가.

이 엄청난 자연의 선물을 받아서 넘치는 기쁨을 자택 울타리 너머로 대문 앞에 서성대며 오손도손 이웃과 나누는 온정들, 곁에서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 소리, 정원에서 가지 치던 손 멈추어 낯선 얼굴이나 고개 들어 "봉쥬르 Bonjour" 반가운 웃음으로 친근하게 인사한다.

평소 지치고 긴장된 무뚝뚝 표정 없던 그들은 어제, 그제와 다른 정감 넘친 모습이라는 점에 놀라웠다. 이 평화로운 인간적인 모습! 이 역시 코비 19가 가져다준 커다란 변화다.

개인주의 성향이 깊은 프랑스 그것도 대도시 사람들의 오만하고 차갑던 어제의 그대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 살가운 친절함이 봄날처럼 따뜻하다.

모두가 뜻하지 않게 부딪힌 세계적인 힘든 현실 앞에서 위로와 끈끈한 연대 의식으로 다 함께 결속되었다. 그렇다 파리 벙유자르(파리와 근교 사람을 칭함) 사람들도 결코 냉정한 개인주의자 만은 아니었는데...

거창하게도 나는 여기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맹자의 학설 '성선설'을 떠오르게 한다.




그렇게 나는 이웃을 사회를 인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간혹 자택 격리를 어기고 바캉스 온 기분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없지 않겠으나 또는 사재기로 자가 격리를 자처하는 사람도 참을성 부족한 이탈자도 이 또한 급작스레 찾아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을 잃은 현대인의 반사적 행동은 아니었을까? 두려움과 공포심에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 순간적 오류?

그들도 남의 피해를 계획하고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린 또는 다른 형태로 얽매여 있었던 우리 모두 같은 피해자는 아닌가?

도망칠 수밖에 없는 비좁은 공간 단절된 인간관계의 외로움 아니면 아주 오랜만에 주어진 이 찬란한 자연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한 그동안 급박하게 살도록 만들어 놓은 현대 사회 시스템에 우리 모두가 희생자며 책임자는 아닐까?

지난 3주간 곳곳에서 엄청난 피해도 있지만 그러나 대 자연이 돌아오고 인간 본성도 되찾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디로? 왜? 그렇게 달음 박치며 앞으로만 향하여 달렸는지 자연의 반응처럼 이제는 우리 나부터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 같았다. 명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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