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 길을 따라 걷는다
5월 같은 4월, 이 감미로운 봄날에 붓꽃, 라일락, 등꽃이 사향에서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하얀 라일락꽃 덩이덩이 내 코 끝에 살포시 얹어보았더니 그 부드러운 촉촉한 감촉 미끈둥하게 스며온다. 이 그윽한 꽃 내음 사방에서 풍기며 달려들어 보랏빛 하얀 세상을 이루었네.
아 나의 동네!
뜻밖에도 일일 찾아온 파란 하늘 찬란한 햇살 가가호호 형형색색 잇달아 펼치는 꽃잔치가 이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을 마음껏, 실컷 음미하며 내 한정된 생활 지루함을 달래어 보네.
흰 비둘기가 앉은 듯, 목련 나뭇가지 끝에 두셋 남은 꽃봉오리 바람 따라 날 때, 체리나무는 하얀 꽃비를 뿌린다. 때 마침 천지간 사방팔방 우후죽순 만개한 꽃 숲에서 화간 접무를 이루는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프랑스 전 지역 온 국민이 자가 격리 실시한 지도 벌써 6주째.
자택에서 1킬로 미터 허용된 범위 내에서 활동하는 나, 솔직이 세상 밖 그 너머 실상에 깜깜한 그믐밤이다. 이리 저래 보고 듣는 미디어 정보 따라 난무한 추측과 짐작, 모호하여 절박함도 그만큼 크게 와 닿지 않는다. 그 덕분에 조용한 주택지 여기서는 자동차, 비행기 소음 없어 오히려 평화롭기만 하구나.
평소도 빙빙 온종일 집에서 고적함을 벗 삼아 지내는 내 일상, 자가 격리 전후와 특별히 달라진 거 없고, 외로움 또한 익숙된 나에게 차라리 하염없는데. 이 공주 같은 고요한 나날 보내다가, 우리는 오후 나절 긴 햇살을 붙잡고 산책을 나간다.
250여 년 전 루소가 산보를 즐기며 걸어갔던 길을 따라, 그의 발자국에 묻었던 흙이 먼지 되어 또다시 토양을 만든, 이 오솔길 따라서 분분한 꽃향기 풀냄새 맡으며, 색색이 피어나는 향연 속에 묻혀 오늘도 한량없이 걷는다.
자동차 사라진 도로 조용하고 넓으나, 좁고 호젓한 길이 더 좋아 유유히 살피고 찾아서 초로를 걸어가네. 무시로 마주치는 산보자들 서로 간 신중을 기하여 살며시 인사하며 길을 열어준다. 때때로 들어선 초경에서 들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 쑥쑥 자라난 풀들이 내 무릎을 간지럽혀도 싫지 않다. 색소 옷 갈아입는 녹음들 오고 가는 바람 소리 듣는 것도 참 좋구나.
샛길을 더듬어 찾는 다분한 모험 조차도 우리의 취향이고 구속 없이 한가로이 걷기는 유일한 운동이라네.
동네 언저리 돌다 돌아 눈에 익어 졸음 몰려오면, 필경 낯선 길 접어들어 슬그머니 지루함을 끊어도 본다. 그렇게 십수 년 온 동네 뒤집고 다녔어도 매번 생소한 길 만나서 새로운 노정을 여는구나.
오솔길 많아서 좋아하는 시골 같은 도시, 내 사는 동네라네.
누군가 내게 '당신 사는 곳 어디냐?' 묻는다면 그래서 내 사는 마을 소개를 정중히 원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가 약 6년간을 살았던 곳. 무수한 그의 발걸음 스치고 숨결이 깃든 그의 사상과 도덕, 철학이 머무는 곳'이라고.
이곳은 전기 낭만주의 작가 루소가 대성공을 안았고, 자연과 사랑의 감정을 써서 독자들을 무한정 유혹했던 서간체 소설 '줄리 우 라 누벨 엘로이즈(Julie ou La nouvelle Héloise 신 엘로이즈 1761)'를 완성하였으며, 생계수단으로 수많은 음악 작곡도 필사했던 에르미타주(L'Ermitage 외진 곳이라는 뜻임)가 있다네. 또한, 당대의 전통 기득권을 부정하고 기존 질서와 제도를 타파하자 주장했던 '에밀(l'Emile)'과 '사회계약론(le Contrat de social)'을 써서 비난과 박해로 프랑스를 떠난 동기가 됐던 곳이기도 하지. 그가 사색을 위해 산보를 즐겼고, 자연 속을 걸으며 채집한 식물들은 현재 훌륭한 역사적 사료가 되어 당시 그가 세 들어 살았다는 지금의 루소 박물관에서 그와 함께 숨 쉬고 있구나.
지난 2월, 우리는 십수 년 전 첫 방문 이후 두 번째로 몽모홍시 중심가 장 자크 루소 박물관을 찾았었네.
이 작은 박물관은 루소가 에삐네 부인(Mme d'Epinay)과의 사이가 소원해져 그녀 농가였던 에르미타주를 떠난 후 세 들어 살았던 곳. 방문객이라고는 우리 둘 뿐, 우선 정원부터 천천히 둘러보았다네. 루소가 언급한 엉걍 레 방 호수가 언덕 저 아래 아득히 펼쳐진 풍경 가운데서 반짝반짝 손거울처럼 비치었지. 정원 끝에 그가 조용히 글을 쓰기 위해 앉았던 작은 정자 <르 동종(le donjon)>이 잠잠하고 호젓하게 있었네.
우리는 첫 방문에서 문이 닫혀 보지 못했던 집안 구석구석을 가이드 설명 들으며 찬찬히 둘러보고 루소와 그의 영원한 동반자 마리-테레세 르바쉬에르(Marie-Thérèse Levasseur) 숨결도 느껴 보았지. 그들의 검소하고 간소했던 살림살이 더듬어 감회에 젖어도 보았다네. 마땅히 18세기 19세기 고풍스러운 건축미에도 탄복했었지.
에삐네 부인이 그에게 마련해준 숲 속의 농가 에르미타주는 오늘날 무너진 축대만이 그 흔적을 대신하지만, 여전히 그 명성에 힘입어 동일 이름 요양원이 자리하네.
에르미타주 밑으로 느긋이 경사진 언덕의 확 트인 공간, 하얗게 피어난 사과꽃 과수원, 그 틈을 비집고 나있는 오솔길은 언제나 햇살 들어 쾌적해서 걷기에도 더없이 좋다네. 맞은편 언덕 울창한 거목들 틈틈이 집집마다 꽃나무들 와글와글 단조롭지 않은 색채 대비가 오월 같은 사월의 은은한 풍경이 절묘하구나.
잠시간 걷다 보면 또 다른 가파른 언덕에서 수십 그루 너도 밤나무를 만난다네. 루소 글로 헤아려 어림쳐 보아 수백 년 세월을 굳건히 견디며 서 있다네. 내 처음 이 고목들 맞닿았을 때, 그 장엄함에 미혹된 도취가 내 벌어진 입을 감히 다물게 하지를 못했었지. 지금도 그때 순간 그 기다랗게 자아낸 감흥이 되살아난다. 이 오래 묵은 나무들 곁에서 후윤들이 생겨나고 너도 밤나무 늙은 표피가 코끼리 가죽보다 더 두껍게 까칠하네. 벗겨진 껍질에서 드러난 노란 속살, 거역할 수 없는 유장한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는구나.
그 먼 지난날 내가 울란바토르 역사에서 목격했던 노부부, 망막한 초원의 햇볕과 바람에 그을리고 새겨져 당당한 절개와 힘차고 늠름한 기상을 지닌 그 노부의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군.
금시에도 우리가 걸었던 이 초로의 오솔길 전원도시 내 사는 나의 동네!
대철인 칸트 조차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은 후 깨달음을 얻어 그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흠모했었다지. 철저한 평등주의자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언을 남겼고 '꽁페시옹(les Confessions 참회록 1770)'을 쓴 대 작가 자연주의 방랑자의 삶을 살다 간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그가 살았던 곳이라고 언감생심 힘주어 말한다네.
철 따라 시절마다 고목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꽃향기 부풀어 라일락, 등꽃이 넘실대는 오솔길을 나는 유랑자처럼 어제도 걸었고, 오늘내일도 그의 걸음이 머문 곳, 그 자취 따라 산책을 나선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