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아서

아르데쉬(l'Ardèche) 지방에서 2.

by 다나 김선자


시골 돌집에서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더니 미디(le midi 남쪽) 냄새가 물큰 풍겨온다. 우리를 더욱 진하게 끌어안는다. 남쪽의 관대한 태양을 흠뻑 마시고 자라난 무화과와 포도나무, 시프레, 올리브, 월계수 나무들이 맘껏 뿜어내는 냄새다. 특히 내 남편은 무화과 냄새를 미디에 대한 추억의 향내로 기억되어 예민하게도 잘 맡고 좋아한다. 상쾌하고 기분 좋은 아침이다.


뜨거운 햇살이 한풀 꺾였을 때 우리는 남편의 희미하지만 뚜렷하고 선명하나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아르데쉬 협곡(les gorges de l'Ardèche)으로 50년 전 추억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남편 A는 11살 때부터 5년 연속 여름 바캉스 한 달씩을 부모님과 함께 아르데쉬 협곡(les gorges de l'Ardèche)에서 캠핑하며 보내었다. 그 시절 좋았던 경험들은 지금까지도 내 남편의 삶 곳곳에서 엿보인다. 또한 시댁 가족이 모이면 그때 일을 자주 화제에 올려서 내 귀에 닥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다. 거기는 이미 내가 잘 아는 곳처럼 느껴지기도 때로는 생소하고 궁금해서 내 호기심을 강하게 끌어당기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A가 나를 그곳에 꼭 데려가고 싶어 했었다.


집을 나섰다.

마을의 널찍한 공터에는 더위를 쫓는 남쪽의 느긋한 어른들이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하얀 먼지를 날리며 뻬땅끄(la pétanque, 쇠공 놀이)를 하고 있다. 이 놀이는 주로 남쪽 사람들이 즐겨한다.

우리는 "봉쥬르 Bonjour"하고 가볍게 인사를 했지만 대꾸 없이 멍하니 유심하게도 쳐다본다. 이곳에서 흔치 않은 작은 아시아인의 출현과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이 깔려있다는 느낌이 그들의 시선에서 넉넉히 감지된다. 사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 명의 동양인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만큼 프랑스에서 깊숙한 곳이다. 그들의 관심 따윈 아랑곳없이 우리는 그늘 아래 세워둔 자동차에 올라 짧은 시선을 남기고 아르데쉬 협곡(les gorges de l'Ardèche)으로 출발했다.


좁은 골목길마다 배추벌레처럼 기어 나온 서양 채송화가 커다란 눈동자를 반짝이며 월계수 꽃들과 더불어 분홍 미소로 방실댄다. 우리는 크고 작은 동네를 거쳐서 협곡까지 약 30km을 달렸다. 남쪽 시골마을들은 북쪽의 소도시같이 잠잠하고 우울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여름 바캉스 맞이에 다분히 분망 하다.

협곡 쪽으로 다가가자 자연에 조각된 거대한 바위들이 뚜렷한 입체감으로 온갖 표정을 짓는다.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긴 암벽이 지그재그로 펼쳐놓은 한 폭의 거대한 병풍 같기도 또는 박물관 벽에 나란히 붙어있는 다양한 인간 흉상을 보는 것도 같다. 그야말로 자연 박물관이지 않은가? 나의 환성에 남편은 "조금만 기다려봐 더 멋진 것을 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한다.

절벽을 깎아서 만든 벼랑길에 간신히 차량 한 대 지나갈 수 있는 터널이 있다. 터널인지 다리인지 계곡 쪽으로 기묘하게 뚫리어 이 자체로도 멋진 조각품이다. 쪼개진 바위 기둥들 사이로 내 시야에 들어온 절묘한 경치는 이 지역의 새로운 명물로도 보인다.

우리는 곧장 아르데쉬 지방에서 유명한 아치형 다리 <le Pont d’Arc>에 이르렀다.

오!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치형 다리 <le Pont d’Arc>는 길이가 59m 높이가 54m의 아르데쉬 강물이 잘라놓은 자연적인 다리다. 강에서 카누에를 즐기는 사람들에 의하면 '자연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도 칭한다.

기나긴 세월에 조각되어 천연으로 이루어진 이 아치 다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움' 또한 '위대한 세월에 대한 경건함'과 '자연의 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충분히 사람 넋을 잃게 만드는 주변 경관에서 불가사의한 그 무언가의 엄청난 에너지가 흐른다고 느끼게 한다. 자그마치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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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dèche - 25.jpeg 아치형 다리(le Pont d'Arc)

아니래도 이 근처 어느 절벽에 있는 동굴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36,000년 전으로 추정하는 선사시대 벽화가 발견되었다. 발견자의 이름을 붙여 <쇼베 동굴, la grotte Chauvet>이라 부른다. 라스코 벽화보다도 무려 17,000여 년이나 앞선 것이라 평가되며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최근으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다. 이 오리지널(원래) 벽화가 있는 동굴은 현재 보존상 폐쇄되고 관람객을 위한 복제된 동굴이 <쇼베 동굴 2, la grotte Chauvet 2>라고 이름 붙여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깎아지른 암벽 틈새를 뚫고 자라난 풀과 나무들, 협곡을 따라 짙푸른 숲, 고고히 흐르는 강물, 봄, 가을에 거센 물줄기가 만들어 놓은 널따란 기슭, 자연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문은 활짝 열려있고 저 건너편에는 천상으로 이르는 파란 하늘이 손짓한다. 강물에 떠있는 오색 카누에와 온갖 자연들이 어우러져 마치 지상 낙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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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베 동굴(la grotte Chauvet)이 발견된 곳

샴(Châmes) 마을에 왔다. 우리는 자동차를 길가에 세웠다. 이미 몇 대의 자동차가 주차된 거로 보아서는 아래 강가에 사람들이 있나 보다.

남편은 허리까지 억세게 자란 풀을 헤치고 길이 아닌 길을 만들며 원시인처럼 가고 있다. 그가 옛날에 다녔던 길이란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나섰다가 더 이상은 무리다 싶어 멈췄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내 용기를 더 꺾어 놓았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태양빛이 세차게 퍼붓는다. 살갗이 따끔거린다.

강가로 닿는 사라진 길을 찾아 A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찾아 헤맨다. 서두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혹시 독사뱀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사뭇 걱정이 앞선다. 오히려 나는 못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라고 했지만 종아리에서는 가시덤불에 긁힌 자국들로 벌써 선홍빛이 물들었다.


내 남편 A는 자유와 자연인을 좋아한다. 그는 캠핑하듯이 자연 속에서 아궁이 불 지피기도 즐거워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요즘같이 흔하게 구입할 수 있는 편리한 숯불구이 도구 따윈 없다. 블록을 쌓아 허술하나 우리가 직접 만든 아궁이가 있다. 구운 고기 맛이야 별반 차이 없겠지만 불 지피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A는 편리성보다는 시간과 불편함이 다소간 따르더라도 형식이나 가공되지 않은 자연적인 것을 더 좋아한다. 나 역시 때론 힘들어 귀찮을 때도 있지만 되레 이러한 자유로움이 없다면 이제는 불편하다.


남편 A는 보이지도 않고 없어진 길을 당연지사 못 찾고 되돌아왔다. 우리는 계곡을 낀 오솔길 따라 걷기로 했다. 예전에는 강으로 곧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없다. 그때는 여기가 포도밭이었다지만 지금은 아니다. 50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세월임을 상기시킨다.

긴 계곡을 끼고 인디언 걸음으로 좁은 벼랑길을 걸었다. 아래로는 강물이 흐르고 위로는 참나무 숲 사이로 비치는 암벽이 하늘에 맞닿아 있다. 바윗돌에 부딪히는 카누에 소리가 메아리 되어 벼랑을 타고 굉음으로 내려온다.

우리는 산책길에서 암석을 타고 흘러내리는 원천수를 만났다. 50년 전과 같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원천수가 맞는지 남편은 가물한 기억을 더듬는다. 그가 기억하는바로는 캠핑하던 내내 이 부근에서 원천수를 떠다가 식수와 음식물 보전에도 이용했다고 한다. 세월이 기다란 물길까지 옮겨 놓았는지 바꾸었는지는 알 수 없다.

목도 축일 겸 우리는 걸음을 멈췄다. 빈 물병을 채우고 시원한 물을 끼얹어 얼굴에 땀도 식혔다. 냉동고까지는 아닐지라도 선풍기 바람보다 더 선선한 감촉이 내 뺨에 와 닿는다. 이끼를 타고 내리는 암반수가 맛도 그윽하다. 우리처럼 목이 말랐는지 더워서인지 수십 마리 됨직한 작은 나비 떼가 축축한 이끼 위에 앉아서 새하얀 무늬로 은근하게 수를 놓았다. 졸졸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한 편의 시가 담긴 동양화를 보는 듯.

드디어 도착한 곳은 유년시절 A가 부모님과 함께 캠핑을 했었다는 바로 그 지점, 그때로부터 50년 후의 장소다. 강물이 꺾이는 곳으로 빠른 물살이 회전하여 건너편을 섬처럼 만들어 놓았다. 확 트인 전망은 답답함이 없고 뒤로는 거대한 암벽이 바람막이로 솟아 있다. 강물은 어른도 헤엄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적당히 깊고 강가에는 작은 모래톱이 깔려있다. 그 옆으로 키 큰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서 아늑하여 캠핑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방금까지도 해변 타월을 깔았다는 흔적이 뚜렷하다.

마지막 카누에가 지나자 개구리들이 일제히 뛰쳐나와 그 자리를 채우며 개골개골 무엇이 그리도 한탄스러워서 아니면 즐거워 환호성인가? 하얀 자갈들도 덩달아 중얼거린다.

강에는 둘만이 남았다.

고요함이 찾아왔다.

묵상하는 자연!

흐르는 물을 침대 삼아 누워서 하늘을 본다. 절벽 쪽 먼 공중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빙빙 맴돌며 유유히 날고 있다. 그때도 이렇게 유유창천에서 원을 그렸단다. 짧은 수영을 끝내고 몸을 말린다. 더 요란해진 개구리 소리에 사냥 나온 물뱀이 내 발치 너머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으며 헤엄쳐간다.

남편은 그 시절 분명 있었다는 근방에서 그 길을 도저히 단념할 수가 없는지 또다시 추억 속의 길을 찾아다닌다. 비록 오래된 일이지만 수없이 지나다녔다고 그래서 더욱 뚜렷하다고.

하지만 없어진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발길 끊긴지도 오래되었는지 온통 풀 섶으로 뒤덮였다. A는 길 대신에 그 옛날 그가 사용했었던 낡은 뒷간을 찾았다. 현재는 녹슬고 그 기능마저 잃어 흉한 형세이나 양철로 사방에 벽을 치고 지붕을 얹은 그때의 그 모양새다.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같은 곳에서 그대로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남편을 기쁘게 했다.

설령 5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려 많은 것들이 바뀌고 변했지만 여전히 존재하고 남아서 흔적을 나타낸다는 사실은 추억에 대한 실체이며 기억에 대한 존엄이고 삶에 대한 예의다.

다이빙을 즐겼다던 바위는 물 가운데 그대로 솟아 있고, 강물의 수치가 낮아졌지만 강기슭은 더 넓고 깊어졌다. 사라진 고목 대신 새로이 생성되어 자란 나무들, 가시 목들에 자리를 내어준 지름길, 포도밭 대신 억새풀밭, 강기슭과 밭 사이에는 농부 대신 철조망이 자리를 지킨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더 이상의 길은 없었다. 자연도 사람도 섭리 따라 꾸준히 변동하며 세대가 교체되었다. 하지만 근본은 변함없다. 모든 것이 하물며 생각도, 감흥도 같은 듯 다르지만 나 자신 그때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그렇지만 나다.

남편의 심오한 마음을 헤아리며 낭만적 우수에 빠져든다.


Ardèche - 35.jpeg 왼쪽 위 부분 바위 동굴에서 쇼베 동굴(la grotte Chauvet)이 발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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