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찾아서

아르데쉬(l'Ardèche) 지방에서 3.

by 다나 김선자


그때 추억은 시댁 가족들에게 불과 몇 년 전 일같이 기억되고 지금도 생생히 떠 올리며 얘기한다. A도 즐거웠던 유년시절 추억의 장소를 가장 먼저 찾아보고 싶었던가 보다. 이제 그도 나이가 들고 있다는 걸까? 무엇이든지 사소한 것조차도 내게 꼭 보여주고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육체적 활동에너지가 약해져 줄어드는 반면 행복하고 유쾌한 기억들을 회상하며 남은 생을 지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즐겁고 아름다운 추억이 많을수록 앞으로의 삶 역시도 보다 풍요로운 여생으로 채울 수 있지는 않을까? 행복한 삶이 충만하게 연장되는 방법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즐거웠던 아름다운 내 추억들을 살짝 꺼내 보면서...!


남편은 나를 데리고 땅 주인이 살던 집을 찾아간다. 그 예전 시댁 가족들에게 기꺼이 캠핑을 승낙하고 선뜻 자리를 내주었던 농부 가족이다.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은 여름이면 한 달간 씩 오 년을 걸쳐 그들과 이웃하여 친지처럼 우정을 쌓고 나누었던 사이로 아직도 그들과의 인연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잊지 못한다.

남편 A는 그들이 이곳에 여전히 살고 있는지 이미 떠났는지가 궁금하기도 그들이 만약 아직 살고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또한 그 자신의 추억이 담긴 곳을 되찾아 보고픈 심정과 유년의 기억을 재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복합적으로 깔려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내게 그곳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우선한다. 우리는 내친김에 발걸음을 옮긴다.

국도 아래로 작은 계곡이 있고 그 사이에 차량 한 대 들어갈 수 있는 흙이 깔린 평지가 100미터가량 곧게 쭉 나있다. 발길이 뜨음해서인지 가시덤불이 길 가운데로 쑥쑥 팔을 내뻗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버려진 길은 아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길 가장자리로 길게 늘어서 있는 가시 목 풀밭에서 수많은 작은 흰나비 떼가 일제히 와닥닥하고 팔랑팔랑 날아오른다. 땡볕에서 하얀 먼지가 풀풀 오르듯이 헤아릴 수 없이 무수하다. 어제 계곡 원천수에서 본 나비 떼들과 가족처럼 닮았다. 인적 없는 그늘에서 한갓진 오후를 보내던 그들에게 우리의 출현은 불청객이었나 보다. 걸음을 떼 놓을 때마다 너울거리며 발 그림자 따라 마구 뒤얽혀서 나풀나풀 무수히도 쫓아온다. 종아리 사이를 비집고 너울너울 돌아서 온다. 내 허리를 휘감으며 훨훨 춤추며 따라온다.

아! 어지럽다.

혹시나 내 발길에 차이거나 밟히지 않을까 사뿐사뿐 걸었다. 발길 짓에도 아랑곳없이 바간에서 미얀마 소녀들처럼 자꾸만 따라붙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뒤숭숭 끈덕지게 쫓더니 어디선가부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은근슬쩍 서운함 마음이 비껴 선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허물어질듯한 고 농가 한 채가 보인다. 낡은 나무 대문은 굳게 닫혀있다. 정말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일까?

남쪽 지방에서 흔히 보는 로마식 붉은 기와를 얹어 돌로 지은 집이다. 대문 앞에는 너절하나 한편 정리한 것도 같은 허름한 작업복과 때 묻은 장화가 놓여있다. 그리고 장작을 패다 중단된 세간살이가 서글프게 쌓여있다. 대문 밖 헛간에는 염소나 젖소는커녕 고양이 한 마리 없다. 망가진 쟁기와 오래전부터 잠자는듯한 각종 농기구들, 한쪽 바퀴가 빠져나간 짐수레가 어둠 속에 나뒹굴어져 있다. 그 옆에는 허술한 차고에서 한대의 60년대식 녹슨 르노 자동차(Renault 4L)와 2000년대 노란색 르노 트윙고(Renault Twingo) 한 대가 힘없이 서 있다. 우리는 집 둘레를 한 바퀴 둘려보지만 인기척은 없고 무화과나무가 자라서 굴뚝을 뒤덮고 지붕으로 기어오른다. 괴괴하다.

모두가 떠났을까? 어디로?


남편은 50년 전에 드나들던 이 집을 회상한다. 캠핑하는 동안 거의 매일같이 부모님 심부름으로 치즈나 우유를 조달받으러 왕래했었단다. 그리고 남편보다 10년쯤 연상인 주인집 아들 쟝 뮈흐(Jean Murre)는 내 남편 A와 한 살 위 형 다니엘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영화관이나 카페도 다녔단다. 소년 A는 쟝 뮈흐를 통해 남자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사회를 목격하면서 마치 자신도 어른이 된 듯 우쭐했단다. 지금이야 아르데쉬 협곡(les gorges de l'Ardèche)이 여름철 여행객들로 붐비지만 그 당시 이곳은 외진 촌구석 벽처나 다름없었다. 이 산골 농부들에게는 도시에서 온 시댁 가족이 짧은 기간이지만 유일한 이웃이었다. 또한 그 시절 현금을 구하거나 만져보기가 쉽지 않은 시골에서 그들은 시부모님 덕분에 적으나마 귀한 현금을 융통하기도 했단다. 그리하여 몇 해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여름마다 시댁 가족을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았다고도 한다.


우리는 다시 대문을 두드려본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만 돌아서려다 우편함에서 고지서를 발견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사람의 흔적이 있었음을 말한다. 우편 날인이 오래되지도 않았다. 또한 우편함 옆에 초인종도 있다. 나의 권유에 따라 남편은 초인종을 눌렀다. ‘짜르랑’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안에서 "누구요" 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분명 누군가가 있다. 다시 한번 눌렀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다가온다.


사실 시댁 가족만큼은 아니지만 다 함께 캠핑한 적이 있었던 남편 사촌들도 이 가족을 알고 있다. 그들은 우연히 작년에 이 집을 찾아와 보았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그냥 되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큰 기대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전혀 없지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누군가와 마주치리라는 구체적 상상이나 예상도 않았고 다만, 그냥 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뜻밖에도 대문이 열리고 지긋한 나이에 큰 체구는 아니지만 굳세고 단단한 모습의 남성분이 우리와 마주 섰다. 그는 우리들의 방문이 귀찮다는 듯이 굵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누구요" "무슨 일이요" 하고 다소 따지는 듯한 말투로 묻는다.

서로가 늙고 변해버린 모습이지만 남편은 그가 쟝 뮈흐(Jean Murre) 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자신을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쟝 뮈흐(Jean Murre)가 맞는지도 묻는다. "예, 그렇소만" 그가 시큰둥하게 말한다. 남편은 시부모님의 안부와 근황을 전해주면서 그에게도 재차 안부를 묻었다. 그리고 옛날 추억을 되살려 그에게 상기시키며 재빨리 우리의 방문 이유를 설명하려 하는데,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듣고만 있던 쟝 뮈흐 노인은 갑자기 남편 말을 뚝 끊고 "아~, 그렇소. 알았소. 잘 가시오" 하더니 뒤돌아서 퉁명스레 문을 꽝 닫아버린다.

우리는 느닷없는 상황에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미처 예기치 못해 얼떨했다.

그는 정말 내 남편 A를 알아보기는 한 것일까? 남편은 물론 시부모님을 과연 기억하고나 있을까? 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의 돌연한 태도와 표정에서 굳게 닫혀버린 문처럼 폐쇄적이고 가파른 절벽강산이 느껴진다. 허물어진 돌담과 기와지붕에서 손길이 닿지 않은 나무와 잡풀들, 잠자는 농기구를 비롯한 주변 모습에서도 미루어 감지할 수 있듯이 사회와의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되돌아서가는 외톨 같은 뒷모습에서 문틈 사이로 언뜻언뜻 그의 등이 비칠 때마다 막간처럼 바깥세상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연관관계도, 자신의 삶과는 소용없음을 말하는 듯했다.

그의 행동에 어이없이 머쓱해진 우리는 발길을 돌리는데 만감이 교차되면서 요요한 마음에 걸음마다 찐득찐득 마른땅이 자꾸만 들어붙는다. 머리 위에서는 아직도 산을 넘지 못한 긴 여름날 저녁 햇살이 뜨겁게 쏟아져 내린다.


몽트레알(Montréal) 집 마당에 수국 꽃이 맥없다. 소피의 부탁으로 아침나절에 물을 주고 나갔건만 그늘 아래서 핀 꽃이 벌써 시들하다니 참으로 된 더위다. 남편은 꽃나무에 물을 준다. 껄끄럽던 기분도 정화시켜 생기를 돋운다. 바깥 테이블에 저녁상을 차린다.

평소 우리의 저녁 메뉴는 다이어트 식단이지만 오늘같이 에너지 소모가 많은 날은 특별히 칼로리가 많은 빵과 치즈, 알코올도 허용한다. 얼음을 띄워 마시는 우조(ouzo)와 함께 아뻬로 디나또와르(apéro dînatoire; 식욕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과 함께 식사대용으로 푸짐한 안주 겸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입맛 떨어진 더운 여름날 마시는 술과 저녁식사로써 안성맞춤이다.


우조를 마실 때면 나는 항상 그리스가 떠오른다. 내가 우조를 처음 알게 된 곳이 그리스 에게해에 있는 시크라드(Cyclades) 아모르고스(Amorgos) 섬이다.

50, 60년대 아모르고스 섬이 벽에 걸린 흑백사진들 속에서 누렇게 빛바랜 모습으로 있고, 내부장식도 오랜 세월 그다지 손대지 않아 더 정감 있는, 허름하지만 전통적이고 인심도 후한 작은 항구 옆에 있는 카페였다.

반머리가 희끗한 가식 없는 주인 양반의 너그러운 인정으로 유리잔에 한가득 채워준 우조를 마시고도 별 탈 없이 지낸 밤 이후부터는 그리스를 돌아다닐 적마다 도처에서 마치 전통의식처럼 거의 매일 저녁 우조를 즐겨 마셨다. 여행객보다 현지인이 드나드는 경치 좋은 카페만을 찾아서 땅콩이나 감자칩 때때로 올리브가 곁들어 나오는 우조 한잔으로 그 지역의 민심이나 경제력을 파악하기도 소재를 삼아하는 대화 역시 꽤나 재미가 솔솔 했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우리는 여름철 아뻬로는 우조를 즐겨 마신다.

소화력을 키우는 아니스(anis)라는 식물로 만든 우조는 내 허약한 소화력을 돕는다는 큰 이유도 있지만, 무채색인 우조에 물이나 얼음을 부으면 사르르 반투명 우윳빛으로 변하는 요술 같은 현상이 흡사 유리잔에서 저녁 안개가 내려앉는듯한 모습이 참 흥미롭다. 우조에 물이나 얼음 량으로 색의 농도 변화를 재어보는 것 또한 즐거움 중 하나다. 변한다는 거, 움직인다는 거. 살아있다는 것은 유쾌하다.

얼음을 띄운 우조 한잔에 식욕이 끌어 오르면서 긴장된 몸도 나른히 풀린다. 기분도 되살아 난다. 우리는 쟝 뮈흐(Jean Murre)를 위해 건배하고 우리의 건강과 삶을 위해, 그리고 뜨거운 여름을 향하여 건배한다.

작은 도마뱀이 돌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까만 제비들이 새파란 공중에서 재빠르게 사선을 그어대며 분주하게도 지붕 너머를 왔다 갔다 그리고 빙빙 돌면서 수없이 많은 원을 그린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더위는 쉽게 수그러지지를 않는다. 바람 한 점 없다. 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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