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앵(Amiens)에 갔다

노트르담 드 아미앵 대성당을 보았다.

by 다나 김선자



프랑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이 이 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대중교통 운행이 평소보다 절반 이하 또는 삼분의 일 수준이라 지하철은 지옥철이 되었고, RER나 기차 등 이를 이용하던 시민들은 자가운전으로 거리 곳곳에서 평소보다 갑절 혼잡하다.

또 다른 명목의 파업으로 연일 음악만 흘러나오는 라디오 채널, 어떤 날은 뉴스조차도 없어 하루 종일 아름다운 음악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교통은 거의 마비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외출을 한다는 건 고생을 사서 하는 짓이 분명할지라, 감히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워 짙은 안갯속에 갇힌 듯 꼼짝 않고 집안에만 있었더니,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가 나타났다. 온몸이 저리며 쑤시고 스트레스가 빈틈없이 머릿속을 꽉 채워 그 열로 화상을 입을 정도다. 그제부터는 그림을 비롯한 글쓰기, 책 읽기에 집중은커녕, 더구나 집안일마저 손 놓고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박완서 작가처럼 몸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어제 점심식사 자리에서 짜증 섞은 고음으로 변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심각한 단계임을 감지한 남편은 "내일 아미앵 대성당을 보러 갈까?"라며 제안했다.


아미앵은 파리에서 북쪽으로 130킬로 떨어진 소도시다. 13세기 고딕식 대성당과 중세 때 건설된 까노(canaux:운하들)를 끼고 형성된 옛 도시가 볼거리다. 내가 아는 아미앵은 릴과 벨기에, 네덜란드를 갈 때마다 고속도로 이정표에서 매번 보았고, 프랑스 현 대통령 마뉴엘 마크롱이 자란 곳이라는 정도. 그리고 초기 파리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친 후, 야심 차게 계획한 영국 여행을 저렴한 관광버스로 이동하여 북쪽 칼레(Calais:도시 이름)에서 대형 페리를 탔다가, 여권 불 소지로 영국 땅을 밟기는커녕 배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포효하는 대서양 높은 파도만 무심히 바라보면서 되돌아왔었다. 지금은 어처구니없는 그때 실수에 부끄러움이 정제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말할 수 없이 창피하고 또한 학생 신분에 쾌 큰 경비를 낭비한 속상함과 내 신중하지 못한 어리석음에 화도 났었다. 그때 어떻게 아미앵까지 왔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허허벌판 아미앵 역에서 파리행 테제베(TGV:고속열차)를 탔던 기억은 뚜렷하다. 내 최초이자 여태껏 유일하게 탄 테제베였다. 그 시절에는 프랑스 지리에 어두워 몰랐지만 차후에 거기가 아미앵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하필이면 아미앵인지? 아미앵 시에 대한 A의 자세한 설명이 이어지고 우리는 내일 아침식사 후 출발할 것을 계획했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국도 1번 선을 타고 몇 년째 대대적인 순환 구도 공사 중이며 내가 이용하는 투뤼포(Truffaut:식물원 이름)가 있는 근처에서 A16(고속도로 16) 선으로 진입하여 달린다. 이 도로는 릴이나 벨기에를 가는 A1(고속도로 1번) 선 보다도 훨씬 더 한적하다. A가 아미앵을 선택한 이유를 나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 운전자는 도로 사정에 아주 예민하다.

출퇴근 시간도 아닐뿐더러, 북쪽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라 여행자가 드문 한 탓으로 차량은 우리 앞, 뒤에서 한 두대만 보인다. 짙은 회색 하늘 아래, 파릇파릇 이끼 옷을 껴입은 겨울 숲 나무들 모습에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는지를 잘 보여준다. 간간이 귀족처럼 하얀 자태를 드러낸 자작나무만이 이끼 무리에서 비껴 나 격조 있게 서 있다.


우리는 와즈(Oise) 강을 지났다. 여기서부터는 북쪽 오뜨-드-프랑스(Hauts-de-France) 지방에 속하는 솜(Somme) 지역이다.


아름다운 프랑스라도 파리 이북 지방은 밋밋한 평지에 온통 회색빛 우울한 참 지루한 곳이다. 특히 겨울에는 드넓은 산업형 베트라브(betterave:순무우 또는 비트) 생산지, 녹색잎들이 열병식 하듯 펼쳐있고, 검게 젖은 빈 땅에서 거의 부동 상태로 우악스럽게 서있는 에오리엔느(éolienne:풍력 발전기)와 볼품없는 산업단지 건물들, 벌판 가운데 겨울나무들 사이로 듬성듬성 작은 마을들이 보인다. 나지막한 집들은 땅에 붙은 듯, 알함브라 무어인의 마법에 걸린 듯 모두가 정지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나는 충분히 분위기 전환이 될 만큼은 즐겁다.


아미앵 시 어귀에 다 달았다.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초입의 산업지역 현대식 건물과 간판들은 멋과는 전혀 거리가 멀고 비인간적인 설계로 어지러운 도시의 미관과 이미지.

소도시지만 주차난은 파리나 그홀레와 다를 바 없고, 두 바퀴를 막 돌았을 때 그나마 운이 좋았는지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대로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밑 무료 주차장에다 차를 세웠다.


북쪽이라 역시 바람도 차고 으스스 춥다. 외투와 목도리로 몸을 단단히 감싸고 걸었다.


신시가지의 현대식 벽돌 건물은 북쪽 지역 특유의 산업혁명 이후 건축되었으며 일부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 이후에 지은 듯하다. 파리 북쪽 지방은 1차 세계대전으로 거의 대부분의 도시가 파괴되었지만 아미앵 시는 며칠을 제외하고 프랑스군 주둔 하에 천만다행 독일군 포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에서 안타깝게도 <아미앙의 전투>라 일컫는 수많은 폭격이 있어 북쪽의 대부분 도시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손실을 비껴 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신의 은총인지 대성당만큼은 원형 그대로 보존이 가능했다.


우리는 멀리 대성당의 종탑과 그 뒤 불쑥 더 높게 서있는 뻬렛(Perret) 탑을 이정표로 삼아 시내 중심지를 가로지른다.

페렛 탑은 세계 2차 대전으로 파손된 도시의 재건사업에 따라 프랑스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에 의해서 104m 높이의 26층(증축된 현재 110m에 27층) 건축물이다. 주거지와 사무실로 이루어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당시 혁신적인 건축기술로 지어져 서유럽의 마천루라 일컫지만, 대성당 종탑에 대항하듯 거만하게 솟아 오른 부조화가 왠지 내 취향과는 동떨어지고 시선에도 거슬린다. 아마도 이 침울한 날씨 탓일까?


시청 광장에는 온통 사팡 드 노엘(sapin de Noël: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활기차다.


중앙 도로를 따라 크리스마스 시장이 들어섰다. 살레(chalet:나무로 지은 오두막)들과 상점마다 장식한 성탄 분위기가 그야말로 북쪽 겨울 정취를 물씬 풍긴다. 추운 북쪽 지방의 문화는 개인주의적인 파리지앵이나 남 프랑스의 폐쇄적인 문화와는 차이가 있다.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하는 단체 문화를 중요시 여긴다. 북쪽 사람들은 언뜻 보아서는 표정 없이 차갑게도 느껴지지만 그 내면을 들어가 보면 남쪽 지방의 형식적인 호의나 표면적인 환영과는 다르게 가족애가 강하다. 따라서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같은 가족 축제도 대단하게 치른다.


북쪽 릴 근방에 남편의 오랜 친구로서 내 친구가 된 이자벨과 이브 부부가 살고 있다. 오래전 우리는 이자벨의 모친 칠순과 이브의 50세 생일잔치에 초대받아 참석한 적이 있다. 그 가족들은 처음 보는 내게 진심을 담아 반갑게 환영하였다. 그 따뜻함이 남쪽이나 파리에서 겪는 어색한 이방인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냥 과도한 호기심이나 의도된 친절도 아닌, 어제 보았던 가족처럼 자연스럽고도 친숙하게 대하는 그들의 열린 마음에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아서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이자벨과 이브 부부를 고작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정도지만, 내 남편 A가 그들의 첫아들 대부(영세받을 때)라는 그 깊은 인연을 잊지 않고, 그들은 특별히 남다른 심성으로 우리에게 한결같다. 나도 그들을 만나면 온돌같이 정답고 포근하다. 나는 북쪽 도시를 오거나 지날 때면 언제나 그들을 떠올리고 생각한다.


어디에선가 성탄 분위기를 한층 앞당기는 캐럴 음악이 흐르고 추위가 잠시 물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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