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담 알 라 리콘느

클리니 박물관에서 la Dame à la licorne를 보다

by 다나 김선자



일주일 넘도록 파리 시내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어제 나가려다 몸 컨디션이 나빠 오늘로 미루었지요.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철도 공사로 파리 가는 열차가 주말 동안 중단되었다네요.

다행히도 햇살이 오후까지 너그럽게 머물려 주어서 어제보다 날씨가 밝고 상쾌합니다. 걷기에는 그지없이 좋은 날이지요.

우리는 RER D선을 타러 삐에흐피뜨(Pierrefitte) 역으로 갔습니다. 이 파리 근교 도시는 일찍이 이민자들 유입이 많은 지역으로써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위험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지만 난잡하게 설계된 도심의 건축물도 무질서한 주민들의 생활도 어느 한 곳 호감 드는 분위기가 아니랍니다. 우리는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 두세 바퀴 빙빙 돌다가 결국 되돌아섰지요. 토요일의 열차 운행 혼선과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까지 겹쳐 쇼핑 나온 사람들로 거리에는 많은 차량들이 얽히고설킵니다. 혼잡함이 싫어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생-드니(Saint-Denis) 역으로 갔습니다. 이 지역 또한 대표적인 위험한 곳이지만 주차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어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소모하여 우리는 클리니 박물관(Musée de cluny)이라고도 불리는 중세시대 박물관(Musée du moyen âge)에 도착했답니다. 박물관은 파리 중심지 라틴가(le quartier latin)에 있어요. 이 박물관은 몇 년의 보수공사를 끝내고 작년에 다시 개관하여 운영 중이랍니다. 예전에는 흔치 않으나 차량 통행과 주차된 자동차로 입구가 비좁아서 번잡했는데, 현재는 잘 정비되어 출입구 앞 공간이 넓고 쾌적합니다.

박물관에는 예상보다 제법 관람객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1층에 전시된 라 담 알 라 리콘느(la Dame à la licorne/리콘느에게서 귀부인)*를 보러 갔지요. 나는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참 평화스럽고도 아름다운 우아한 정경이구나'하는 감탄과 그 예술작품의 서정적인 분위기에 즉각 빠져 들었습니다.

*리콘느는 머리에 뿔이 달린 말의 형상을 한 신화 속의 동물과 그 곁에 있는 귀부인을 뜻함.

A 역시도 '음! 시적이다'라고 중얼거립니다.

라 담 알 라 리콘느(la Dame à la licorne)는 전시실 사면의 벽에 걸려있는 6장의 대형 타피스리(tapisserie) 입니다. 15세기 말경, 중세와 르네상스를 잇는 시점에 제작된 생 떼티에느(Saint Etienne)의 전설과 더불어 귀부인의 삶을 서술적인 이미지로 잘 구성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사실 그대로 짤막하게 묘사해서 옮겨보면, 타피스트리의 진홍과 분홍빛의 붉은 바탕에 작은 꽃들이 단아하게 흩어져 피어있답니다. 그 넓은 중앙 부분 꽃이 핀 파란 잔디 위에서 노랗고 분홍색 의상을 입은 귀부인과 하녀가 있어요. 귀부인의 오른쪽으로 사자와 왼쪽은 뿔이 달린 말의 형상을 한 신화 속의 동물 리콘느(licorne)가 순종적인 모습으로 의연하게 있지요. 귀부인의 유현한 모습은 단연 작품의 중심부 역할을 합니다. 그 가장자리 양쪽으로는 짙은 녹색의 과일나무들이 서있고 앵무새와 다른 동물들이 섬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그림처럼 잔잔히 수를 놓았답니다.

이처럼 붉은색과 녹색의 고상한 대비, 색색의 화려하나 은은한 조화로움은 부드러우면서 선명하여 강한 인상을 줍니다. 곧게 흘러내리거나 접히고 감긴 의상의 주름을 비롯한 사물의 윤곽에서 그 풍부한 입체감과 질감은 생생하고 리얼하여 마치 살아서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듯하답니다. 이처럼 매우 세심한 표현은 감각적이면서 사실적이고 환상적이며 우아하고 리얼하여 그야말로 예술의 극치를 나타내지요. 경이롭기도 합니다. 기품 있고 아름다운 귀부인의 자태와 리콘느를 비롯하여 자유로이 뛰노는 주변 동물들과 새, 식물들 이미지는 평온하면서도 고고한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가히 시적으로 마음의 평화를 주듯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작품에서는 냄새, 맛, 보기, 듣기, 만지기 등 다섯 감각을 차례차례 나타내고 있어요. 6번째 작품에서 감각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이것은 다섯 가지 감각을 포함하여 하나의 동질감으로 이루어, 차후 평론 해설가들의 가정적인 추론으로써 <à mon seul désir, 내 유일한 욕망으로>라고 설명합니다. 이 또한 찬양하지 않을 수 없지요.

당시 작품 제작자나 후원자의 의도적이거나 아니거나 그 어떤 연유를 불문하고 여기서 나는 각자가 즉흥적으로 느끼고 나타낼 수 있는 감각이나 갈망, 희망의 여백, 또는 신비로움을 상상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세계를 남겨 놓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하 전시실에는 목판화 작품들과 세공 조각품을 비롯한 가톨릭 의식에 사용되었던 자수가 놓인 사제의 예복과 많은 유품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작품이 많지만, 타피스트리 라 담 알 라 리콘느(la Dame à la Iicorne)를 보고 난 이후에는 그 어떤 것도 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고 비교가 되지도 않더군요. 이미 내 모든 감각은 라 담 알 라 리코느로 가득 채워져 버렸으니까요.

차라리 흥미로운 것은 가볍게 둘러볼 수 있는 박물관 지하 내부 건축물입니다. 중세시대 건축물이라는 것과 그 시대에 이렇게 큰 규모의 공중 온천 목욕탕이라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어요. 폭이 넓은 천정의 돔형 구조는 돌과 벽돌로 쌓아 올린 로마식 건축방식입니다.


후일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우리는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오늘은 라 담 알 라 리콘느(la Dame à la licorne)만으로도 충분히 내 삶의 자극제가 되었거든요. 더 이상의 것을 보아도 내 감성에 들어 올 공간이 없었어요.


잠시 서점에 들러도 되겠느냐고 A가 내게 묻습니다. 그가 시내에 나오면 꼭 들러는 곳입니다.

결혼초, A가 서점을 가면 나는 늘 피곤했었답니다. 불어로 된 책을 보는 것조차도 내게는 마치 큰 과제물이 도달한 것 같았거던요. 가끔 지루함을 내색하기는 했어도 곧 잘 따라다녔지요. 어차피 나도 적응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아직도 서점보다는 카페에 앉아서 도심의 풍경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걸 더 좋아합니다. 이런 내 마음을 읽은 A도 정도껏만 한답니다. 하하.


서점을 나오면서 카페에 가서 뭐라도 마시자는 내 제안에 A는 소로본 광장에 가자고 합니다. 이제는 거의 단골이 되어버린 레 빠시오(les Patios)에 갔습니다. A는 샨세르(sincère/백포도주 이름) 한잔과 나는 카시스 키르(Kir cassis) 한잔을 시키고 밤잼을 넣은 크랩(crêpe)을 주문했어요. 카페의 큰 유리창 너머로 반사된 전등불이 겹쳐진 이중 영상으로 바깥의 공중에서 둥둥 떠 있는 듯합니다. 그 환영은 거리마다 설치한 크리스마스 장식 불빛 못지않게 황홀합니다. 대각선으로 보이는 소로본 성당 정문에 서 있는 우아한 바로크식 기둥과도 멋진 대조적인 조화를 이루어 주는군요.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와르르 떨어져 버린 가로수 잎들이 길바닥에서 바람 따라 마구잡이로 휩쓸려 다닙니다. 갑자기 썰렁하니 이 도시에 겨울이 몰려옵니다. 기온이 많이 떨어져서 외투가 얇게도 느껴지네요. 12월의 첫날, 벌써 거리 곳곳에는 성탄 장식 불이 반짝이고, 겨울은 서서히 그러나 어김없이 다가옵니다.



거울에 비친 리콘느(licorne) : 다섯 감각 중 <보다>에 속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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