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존재와 정체성 : 사춘기가 아닌 갱년기의 작은 반란이었다!

by 다나 김선자


밤새 내린 비로 청명하고 고결한 아침 공기에 은은한 가을의 황금빛 햇살이 정원으로 내려앉는 날, 크고 무성한 무화과 나뭇잎들이 투명하고도 노랗게 풍부한 색조를 발하는 날,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오복하게 둘만이 맞는 내 생일이자 내 생애 처음으로 11월 8일 양력 생일밥을 챙겨 먹는 날이다.

알랑과 place de la Sorbonne (소로본 광장)에 있는 Patios (빠시오, 카페 겸 레스토랑의 이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본의든 타의든 그동안 내 생일을 알랑 생일과 늘 같은 날 챙겨 왔다. 10월 1일, 내 여권상 생일과 알랑 생일이 고작 12일 간격을 두고 있어, 한 달에 두 번의 생일파티를 하기에는 너무 번잡스레 여겼으므로, 그 두 날짜의 중간일이나 두 날짜 중 근접한 매년 일요일에 두 생일을 한 번으로 묶어서, 점심식사에 시부모님과 그의 형 다니엘을 초대하여 우리 부부 생일파티를 다 같이 모여서 했다. 여기에는 일요일마다 정찬을 즐기는 프랑스 전통문화도 다소 내포되었다.

처음에는 일석이조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념일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니의 축하인사에 보답한다는 마음에서, 또한 결혼초 남편 생일을 무심하게 지나치기에는 너무 건조하고 야박하다는 생각과 어차피 생일과는 무관하게 시부모님을 초대한다는 좋은 핑계도 되었었다.


이체동심이라 사실 우리 부부는 기념일이나 어떠한 행사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거나 잘 기억하는 성향이 아니다. 의식이나 관습을 아주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하고 얽매이는 성격도 아니다. 이러한 일은 번거로운 절차로 여겨 거창한 격식 따위는 무시하고 우리의 기념일에는 간단한 애정 표시만 주고받는 정도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우리와 달리 기념일을 기억하고 가족과 다 함께 나누기를 좋아하신다. 본인 기념일은 물론이고, 매해 우리 부부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축하 전화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Bon anniversaire!" (봉 아니 벨 세르! 생일 축하해!) 또는 "Bon anniversaire de mariage!" (봉 아니 벨 세르 드 마리아쥬! 결혼기념일 축하해!) 하고 시어머니의 축하인사를 받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아! 오늘이구나 하고 떠올리는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사실 시어머니께서 챙기는 10월 1일은 내 생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단지 여권상의 숫자일 뿐이다. 10월 1일은 나의 음력 생일이고, 내가 태어난 해의 양력 날짜는 11월 8일이라는 걸 나 역시도 몇 년 전에 알았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모두가 공인된 여권상 10월 1일을 내 생일로 인정한다. 물론 정확한 생일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랑을 비롯한 가족들이 알고는 있지만, 아무리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알려주어도 시댁 가족들에게는 낯설고 먼 나라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마다 날짜가 바뀌는 내 실질적 생일을 미리 공표하는 것도 유치하게 느껴 내 체질에 맞지가 않다.

나 역시도 해마다 음력 달력을 구하지 못하기에 굳이 인터넷에서 찾아보아야만 알 수 있는, 이러한 번거로움은 애초에 내 몫이 아니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여태 껏처럼 양력 10월 1일, 내 생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안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올해부터는 제대로 내 생일을 찾아서 축하를 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고, 알랑에게도 11월 8일을 꼭 기억해 주기를 선포했다. 그리고 앞으로 가짜 날이 아닌, 내 생일 11월 8일에 애정 표시뿐만 아니라 어떠한 물리적 제스처가 따라오기를 권고했다.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해마다 똑같은 반복과 과정에서 희석된 존재감에 의문이 생겼고, 관습적인 행사에 지겨움을 느껴, 그동안의 의식이나 관례를 깨고 싶다는 강한 충동과 반감, 내 존재를 더 부각하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자리와 날이 되기를 원하는 <존재>를 위한, <정체성>에 대한 하나의 반항이었다.

이전에는 사소하고 무의미하게 느꼈던 것들을 이제부터는 나에게도 특별함으로 강요하고 싶었다. 사춘기가 아닌 갱년기의 절정이다.


가볍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가을 햇살도 오랜만에 화사한 외출이다.

비가 그치자 기온이 갑자기 떨어져 쌀쌀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의 두툼한 외투에서 마치 초겨울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내게는 이 신선한 공기가 주는 상쾌함이 어쩐지 내 축일을 환영하는 듯하다.

Patios (빠시오) 실내는 점심식사 손님들로 꽉 찼다. 추위가 실외 테라스 손님들조차 실내로 밀어 넣었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garçon (갸르숑)이 우리를 안쪽 자리로 안내한다. 창가는 아니지만 친절하게도 밖을 바라보고 앉을 수 있도록 두 개의 테이블을 나란히 붙어 준다. 우리는 마치 연극을 보는 듯 바깥뿐만 아니라 안과 밖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이러한 배려와 관용으로 우리는 Patios (빠시오)를 좋아한다. 물론 조용하고 운치 있는 소로본 광장에 자리한다는 환경적 요인도 있지만, 편안하고 자유롭고 정겨움과 친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내 비단 같이 섬세하고 민감한 위장이, 나이가 들면서 더욱 쇠약해져 식단에 신중한 나는 외식하는걸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또한 내가 유쾌하게 즐기는 포도주도 자주 마시지 못한다. 그러나 오늘은 모든 염려를 떨쳐버리고 맘껏 먹기로 했다.

우리 부부가 좋아하지만 밀가루 음식이라 자주 먹지 않는, jambon(일종의 햄, 훈제 돼지 허벅지)과 fromage(치즈)가 듬뿍 든 피자도 côtes du Rhône (꼬뜨 혼느 산 포도주)도 50cl를 주저 없이 시켰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하며 두 개의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동시에 흠뻑 띤 미소와 함께 나의 작은 축제는 시작되었다. 맛이 훌륭하지는 않지만 알맞게 기분을 돋우게 하는 적색 포도주와 적절하게 푸짐한 음식들은 내 까다로운 입맛에도 거슬리지 않아, 그 큰 접시들을 다 비울 정도로 신이 나도록 맛있게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예정된 목록대로 걸어서 Degas (드가) 특별전이 열리는 Musée d'Orsay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한다.

우선 가까운 오르세 미술관을 목적으로 하고, 관람객이 너무 많으면 조금 더 걸어서 Musée d' orangerie (오랑쥬리 미술관)에서 열리는 Felix Fénéon의 소장품전을 보기로 했다.


살구빛으로 황홀하게 드리워진 jardin du Luxembourg (룩셈부르크 공원)을 가로지른다. 무수히 떨어져 우리의 발치에서 나뒹구는 마로니에 잎들이 갈색에 은밀한 슬픔을 띄우고 웅크린 모습이다. 봄이면 가장 먼저 뛰어나와 새싹을 틔우던 마로니에는 앞다투어 가을을 저물게 한다. 잘 다듬질된 석회 암석의 Palais du Luxembourg (룩셈부르크 성)은 풍부한 색조를 뛴 나무들과 근사한 조화를 이루어 고적하고 멋스럽다.

산책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은 공원의 한적한 분위기에 빠져 고요함을 음미하며 깊은 사색에 젖어들기도 한다. 알랑과 나란히 걷는 걸음마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소리는 내 마음을 타오르는 불같이 뜨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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