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셋집이 생겼다

4. 푸투나 섬

by 다나 김선자



호텔 피아 피아에서 지낸지도 며칠이 지났다.

셋집은 여전히 구하지 못했고 조건 좋은 집들은 발 빠른 사람들로 벌써 안착되었으며 우리가 본 두세 채는 두 사람이 작업하면서 살기에는 턱없이 협소한 공간에다 볼품없게 초라하여 번번이 허탕만 치고 돌아왔다. 꾸준히 애를 쓰고는 있으나 아예 세를 놓는 집 자체가 귀하다 보니 이러다 영영 못 구하는 건 아닌가 하는 비관적 생각과 회의적인 마음까지 스멀스멀 기어들면서 서서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호텔 생활이란 나그네 같은 신세인지라 점차 지겹기 시작했고 식당의 정해진 차림표는 우리가 먹고 싶은 대로 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불편함과 만만찮은 호텔비 또한 부담으로 와 닿았다.

오롯이 여행객의 마음가짐 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이었나 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층 테라스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곱게 단장한 남녀노소 어른 아이들이 미사를 끝내고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얀 전통옷을 맵시 있게 차려 입고 잘 빗어 내렸거나 땋아 올려 곱게 단장한 귓등 머리로 한송이 티아레 꽃을 꽂은 자태와 큼직한 생화 목걸이를 목에 두른 모습은 과연 우아하다. 손에는 말린 식물 잎으로 엮은 전통 부채를 들고서 삼삼 오오 나란히 걸어가는 정결스러운 광경이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치 폴리네시아 여행 광고 사진에서나 보았던 것이 실제로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 희고 청초한 티아레 꽃 향기가 온 섬을 환하게 기쁨으로 뒤덮는다.

푸투나인들은 본국의 프랑스인들보다도 가톨릭 종교에 대한 믿음이 두드러지게 강하다. 이 삼십여 가구로 형성된 각 촌락의 입구마다 마을 공동체 성당을 갖추어 그 중심으로 부락의 위상과 권위를 경쟁하듯 내세운다. 젊은 여인들은 성가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성당 내부를 꾸미고 단장하는데 열정과 정성을 쏟아 그들의 소일거리나 취미생활로 삼는다. 무려 도시 사람들이 백화점을 가거나 취미활동 모임에 가듯이 그들은 성당으로 간다. 미사가 있는 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고운 차림새에 온갖 장식으로 뽐을 낸다. 어린이나 젊은 남녀 머리에는 코코넛 기름을 발라 빛이 나고 향수를 뿌리거나 티아레 꽃 향기로 한껏 멋 부린다.


f.jpg 성당 미사를 보러 가는 소녀들


성당 옆에는 어김없이 남성 전용 공간인 전통 초가 팔레가 있어 뜨거운 한낮이나 저녁마다 마을회관 휴식 공간으로 애용된다. 특별한 모의가 있는 날은 마을 수장을 중심으로 어른부터 청소년까지 계급적으로 둥글게 원을 그린 듯 모여 앉아 회담을 하거나 까바(kava)*를 마시는 관례적인 의식도 치른다.

전통 팔레 옆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장소로 함석지붕을 이은 현대식 건물이 있다. 이렇게 원시적이듯 전통적 공동체 사회가 어쨌든 외향적으로는 체계적이고 동등하게 민주적인 모습을 두루 갖추었다.

따라서 일요일은 철칙처럼 성당 미사와 휴식만으로 그들의 축일을 지킨다.


* kava : 까바라는 식물 뿌리를 채취하여 절구통에 찧어서 천으로 즙을 짜 마시는 일종의 술.


한낮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 기승부리는 무더위 때문에 우리는 호텔 테라스에서 성염으로 몽롱한 상태가 되어 우두커니 오가는 길가 사람들과 경치를 바라다보며 무용한 공상을 펼치고 있었다.

그때 호텔 주인 P가 인터넷 경매에서 샀다는 고미술품을 보여주면서 우리 의견을 물어 왔다. 평론가도 비평가도 아니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생각과 느낀 바를 함께 얘기하며 대화시간을 가졌다. 용케도 서로의 무료함을 달래는 좋은 시간이었는지 통하는 구석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P가 우리에게 아뻬로*를 대접하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우리들은 그렇게 서서히 친숙해졌다. 신뢰를 쌓으면서 차츰 분위기가 무르익자 P는 내친김에 자신의 수집품들이 진열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큰 방에는 각종 하찮은 골동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한가한 낙도에서 여유작작할 수 있는 고상한 취미 생활이지만 섬의 형편과는 어딘지 모순되게도 보였다. 우리는 새삼스레 이 섬 생활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 아뻬로 apéro : apéritif 아페리티프를 흔히 줄어서 부름, 식사 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


셋집에 대한 고민이 깊어짐과 동시에 조급증이 생기던 가운데 점심식사를 하러 아래층 식당에 들어섰을 때 세 놓는 사람이 있다고 주인장 P가 전해 준다. 마침 뉴 칼리도니아 사는 집주인이 푸투나에 와 있다며 전화 연결을 해 주었다. 우리는 오후에 집주인과 만나서 셋집을 둘러보기로 했다.

세 놓는 여주인 M은 호텔을 다녀갔고 햇살이 한풀 꺾인 오후 나절 호텔 여주인의 인도를 받아 우리는 그녀의 차를 타고 세가를 방문했다.

이 셋집은 알로 왕국의 푸갈로(Fugalo) 마을 언덕 위에 새로 지은 전통식 현대 가옥이다. 말라에(Malae) 부락에서 움푹움푹 시멘트 포장이 험하게 파인 경사길을 비틀거리며 올라 앞마당에 도착하니 확 트인 공간 너머 180도 각으로 펼쳐진 인디언 블루 망망한 바다가 하늘과 닿아있다. 왼쪽 귀퉁이로는 터부 섬 알로피가 보이고 아래 푸갈로 마을 듬성듬성 함석지붕 사이로 열대림이 시야를 꽉 채운다.

마치 나는 세상 밖에 와 있음을 느낀다.


DSCF2890-2.jpg 셋집 뒷산에서 내려다본 풍경
DSCF4679.jpg 셋집에서 내려다본 푸갈로 마을 풍경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집 외향은 전통 팔레의 구조를 갖추었지만 내부는 완전 현대식 복층 구조다. 아주 넓은 거실에 아메리카식 부엌과 세 개의 큰 방이 있고 실내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이층에는 하나의 널따란 공간만으로 이루어져 작업실로 사용하기 그지없이 좋았다. 흡사 우리를 위해 지은 집 같았다. 새집이라 깨끗함은 말할 것도 없지만 아름다운 전망과 조용한 위치 넓고 멋진 볼륨의 내부 공간은 우리들 기호까지 사로잡았다. 망설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니 기대치보다 높았다. 우리는 당장 계약금을 치르고 공사가 끝남과 동시에 이사하기로 했다.

여주인 역시 새 집을 비워두는 것보다 세입자를 만나게 되어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리하여 빠른 시일 내에 자질구레 남은 세부적 공사를 서둘러 마무리해 줄 것을 약속했고 집 앞 진흙길도 자갈을 깔아 진입에 장애가 없도록 할 것이며 비탈길에 파인 곳도 메워 줄 것을 거듭 약속했다.

여주인 M은 푸투나 태생으로 아래 옆동네 오노(Ono) 부락에 친정어머니가 계신다. M은 공사 동안 그녀 어머니 댁에서 머무는 중이었다. 남편은 동 아프리카 인도양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île de la Réunion)에서 온 간호사였다. 그가 푸투나 섬 근무 시절에 M과 결혼하여 자신들이 살 집을 짓기 시작했지만 뉴 칼리도니아 섬으로 근무지를 옮겨 현재 여기서 살지 않았다.

이 집터는 M에게 무료로 제공된 것이었다. 말라에 부락에서 태어나 오노 부족에게 시집간 그녀 어머니 친족들의 땅으로 그녀의 딸인 M에게도 배분된 사유 권한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푸투나 섬은 토지 매매가 금지되어 각 친족끼리 분배하거나 필요에 따라 무료 할당된다. 현대 도시국가에서 온 우리로서는 이 조차 흥미로운 사실이었다. 푸투나섬도 마찬가지 프랑스 국가인데.


안도감에서 편안한 밤을 보냈다.

생활하는데 가장 중요한 살림집이 해결되자 우리의 앞날은 확 트인 태평양처럼 푸르고 찬란히 빛나는 흥겨움만 기다릴 것이며 더 이상의 어려움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 오전 우리의 새로운 동료 부부 E와 F가 지나던 길에 우리를 보러 들렀다며 호텔에 왔다. 이들은 우리 세가에 관한 반가운 소식을 듣고서 시골같이 인정 넘치는 제안까지 해 주었다.(그들은 프랑스 시골마을에서 왔다) 집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자기들의 큰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한다. 때마침 호텔 생활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우리는 고마운 마음으로 앞뒤 생각 않고 덥석 받아들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대로 다음날 당장 우리는 프랑스에서 들고 왔던 여행가방을 그대로 친구 댁으로 옮겼다. E와 F의 집은 싱가베 왕국에서도 끝 지점인 똘로케(Toloke) 부락 한적한 도로 옆 넓은 마당을 가진 현대식 집이었다. 마당을 가로지르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닷가에 두세 사람 드러누울 수 있게 깔린 모래가 있어 거의 개인 수영장 같았다. 바다를 접하여 낚시가 취미인 F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우리가 사용할 방은 욕실과 화장실이 달려 있는 손님용으로 현관 테라스 옆에 독립적으로 있었다. 주인이 사용하는 방들과는 별도 현관문을 거쳐야 하니 친구 부부에게 최대한도의 방해를 주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우리는 친구 부부와 입주 기념 겸 전입 신고식으로 작은 축배의 잔을 들었다. 부채처럼 펼쳐진 늦은 오후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오래된 키 큰 나무에 덩그러니 매달린 해먹 사이로 파도치는 바다가 있다. 밀물 시간이다.

하늘에는 석양이 이불을 깔듯이 붉게 물들어가는데 동동 얼음 띄운 백색 마티니를 홀짝홀짝 마신다. 대화가 주절이 주절이 이어지는 동안에 우리의 얼굴에도 분홍빛 저녁놀이 내려앉았다. 바닷물도 붉은 이불을 뒤집어썼다.

오랜만에 우리는 길 위에서 떠도는 방랑자가 아닌 제대로의 안착은 아닐지라도 비로소 이 섬에 정착한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이 있어 더 좋았다.

아뻬로에 무르익은 분위기는 가볍게 저녁식사까지 이어졌고 차 오르는 달을 보고 별들이 총총 마실 나올 때 즈음 아침형 친구들은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야행성 우리 부부는 하늘의 별들을 마중하러 밖으로 나간다. 잠잠한 밤길을 사뿐사뿐 걸었다. 처음으로 푸투나 섬 밤하늘 별들을 마음 놓고 한정 없이 쳐다보았다. 아름답구나.



DSCF3399.jpg 전면에 보이는 말라에 성당과 끝에는 따오아 성당 그리고 말라에와 따오아 부락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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