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자동차를 샀다

3. 푸투나

by 다나 김선자



2010년 이월 어느 날 이 섬에 첫 발을 디딘 지가 지금으로부터 어연 10년이 지났고 본국으로 돌아온지도 벌써 강산이 삼분의 이가 넘게 바꿨다. 그 머나먼 거리만큼 시간도 아득히 흘렀다. 지금 와서 지난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열악한 조건의 환경에서 어떻게 4년 동안을 살았나 싶다. 하지만 떠날 수 있었던 그 기회와 결정에는 지금도 후회 없이 감사하다.

강렬한 자연이 미치는 엄청난 힘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진솔한 삶에서 풍부하고도 특색을 지닌 참다운 경험이 있었다. 만약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내 지금의 삶은 고루하고 진부한 옷을 걸친 좁은 고량으로 더 볼품없는 감각과 사유와 의식 세계에서 초라하고도 비루한 삶을 마치 이상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리라.

그 장대한 태평양처럼 기나긴 거리만큼 넓은 시각과 우주가 내게로 들어왔었다. 나는 거기서 세상을 보았다.

이 작은 섬에서 바라본 세상은 좁지만 내 영묘한 감응은 너무나 컸었다. 페소아*의 말처럼.

' 그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의 의미를 노래한 문장들은 어떤 영감, 어떤 해방과도 같다. 그는 말한다. 그 마을이 너무 작으므로 그곳에서는 도시에서 보다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노라고.'

오늘날까지 내가 아무리 회상해도 지구 반대편 남태평양 절해 고도 푸투나는 지리적으로 말할 것도 없고 심적으로도 참 요요하다.


*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불안의 서>에서 인용


그 섬에서 내가 첫날밤 어떻게 잠들고 깨어나 아침을 맞았는지 도통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여독 때문인지 목적지에 도착한 안도감에서 그도 아님 특별히 인상적인 일이 없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푸투나 앞바다에서 잡은 생선과 식재료에 프랑스식 코코넛 소스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에어컨이 설치된 쾌적한 방에서 분명 잘 잤다는 것은 각루하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준비해야 할 우선적인 것들을 논의하고 계획도 세웠던 것 같다.


다음날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는 먼저 살림 집을 구하러 나섰다. 대중교통이 전혀 없는 섬에서 오직 우리의 두발만 믿고 나섰는데 몇백 미터도 못 가 더위에 지쳐 그만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 무섭게 내리쬐는 태양볕은 흡사 이글거리는 활화산 같았고 그 아래서 우리는 엿가래처럼 축축 늘어졌다.

얼마나 뜨거운지 목까지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 살갗은 불에 덴 듯 화끈거리며 플랑보와이양(le flamboyant) 꽃처럼 발갛게 피어올랐다. 금방 나올 때 갈아입었던 옷은 어느새 후덥지근한 땀에 젖어 몸에서 쩍쩍 달라붙어 불쾌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몇십 분 만에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적도에 근접한 지구 남반구 열대지방 푸투나 섬은 아직 한여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용광로 같은 이월이다. 너무 더워서인지 밖으로 나다니는 사람은커녕 개도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비탈진 산을 등지고 바다 따라 이어진 외 길 저만치에서 적묵 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아물아물 현기증을 일으킨다. 머리가 띵하니 어지럽다. 망망대해 앞으로는 썰물로 펼쳐 놓은 고원처럼 판판하게 드러난 돌바닥 위에서 틈마다 고인 바닷물이 생선 비늘 마냥 반짝거렸다. 먼 은빛바다도 고적하게 눈부시다. 묵상 중인 울울창창 열대림. 이 거대하고 순수한 초 자연. 아름답다.


정오의 작렬한 태양 아래 그늘 한점 없는 거리를 큰 보폭으로 걸었다. 푹푹 찌는 매서운 열기가 우리 머리털에 불을 지폈다. A 머리 위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우리는 묻고 물어서 겨우 세 놓는다는 집은 찾았으나 비어 있은지가 오래되었는지 퀴퀴한 곰팡내 가득 찬 벽에서 축축한 기운이 스멀스멀 회색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안팎이 모두 너절한 이 집은 도로변에 위치하여 어느 한 군데도 전연 우리가 원하고 찾는 쪽이 아니었다.

그러고 있는데 바닥에 앉아 돗자리를 짜고 있던 집주인의 늙은 노모께서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자상한 미소로 "우리 조상들도 원래 아시아에서 왔다"라고 강한 동질성을 표하여 특별하게 호감을 자아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폴리네시아인들은 몇만 년 전에 동남아시아 어느 곳으로부터 이주했었고 두 번째 대이동은 몇천 년 전에 있었다는 설이다. 푸투나인들은 더 가까운 역사로 폴리네시아 사모아 섬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 정착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서 크메르족 같이 강직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짙은 갈색 피부에 까만 머리 납작한 두상에서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아시아 사람을 연상하기도 했다. 더욱이 폴리네시아인들 특유의 단단하게 발달된 골격은 극단적 환경을 지탱해 오면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특히 이 작은 섬 푸투나인들은 험난하고 거센 환경으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전사들의 후예일 것이며 궁핍과 미개한 삶은 20세기까지 이어져 1945년인지 1946년에 마지막 식인을 했다는 풍설도 있다. 혼자 배회하는 백인을 잡아먹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항간에 떠도는 말이다.

이후 차츰 알게 된 사실로써 현대문명으로 인하여 이들의 굵직한 뼈대에 가중된 비만은 안타깝게도 지금의 거구를 만들어 놓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을 보면서 나는 서양인들에게서 느끼는 것보다 동향인에 대한 친근함으로 다가왔었다.


또다시 우리는 불같은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백 미터 가량 걷다가 왜소한 체구의 동양인 남성과 마주쳤다. 우리가 그에게로 다가가자 관심을 가지는 이 남성은 바로 앞의 슈퍼 마켓과 2층 건물주이며 이 관할 전 하원의원으로서 섬의 유지 가다. 셋집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다른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언제든지 자신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친히 자신의 이름자를 알려준다. 중국계로써 100여 년 전에 상인이었던 그의 할아버지께서 여기를 드나들다 정착했었다고 했다.

역시나 관광지도 아닌 이 좁은 섬에서 우리같이 새로운 이방객은 금방 눈에 뜨이는 법. 특히 나는 프랑스인도 폴리네시아인도 아닌 한국인으로서 푸투나 섬에 최초의 거주민이 될 더군다나 이곳에서 유일무이 프랑스-꼬레(한국) 커플 아닌가.

여전히 희미하지만 이처럼 섬의 상황과 내력을 조금씩 파악함으로써 그 윤곽도 천천히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미지의 섬 덮개를 서서히 벗기는 중이다.


너무나 덥고 지친 나머지 더 걷기를 포기하고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어느 더운 지방과 마찬가지로 푸투나인들도 새벽 5시경에 일어나 오전일을 마치고 11시쯤부터 오후 4시까지는 대체로 바깥 활동을 멈추어 실내에서 돗자리를 짜거나 수를 놓던지 아니면 쉰다. 낮잠도 잔다.

우리는 섬사람들의 이런 생활 리듬을 모르고 나갔으니 텅 빈 거리를 헉헉 거리며 더위만 잔뜩 마시고 돌아온 격이었다.

이 찌는듯한 더위에 걷기에는 한계가 있고 대중교통도 없으니 할 수 없이 우리는 계획을 바꾸어 자동차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자동차 없이 간편하게 옛사람처럼 살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우리의 아름다운 이상이었고 순진한 착각이었다.

A는 섬에 사는 동안만이라도 최소한의 문명생활로 자동차나 티브이 없이 간소하고 소박하게 평소 그가 꿈꾸었던 자유로운 삶을 경험하며 지내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자동차는 그홀레 집에 세워두고서 가져올 생각은 눈곱만큼도 가지지 않았다.

그는 나를 만나기 앞서 십수 년 전부터 약 십여 년 동안 매년 여름 바캉스 한 두 달씩 동남아시아에서 살다시피 두루 여행을 했었다. 그때 배와 오토바이를 즐겨 타고 다녔단다. 그 시원하게 달리던 낭만적인 시골 삶을 그가 우리의 섬 생활에서 해 보리라 옹골지고도 야심 차게 가졌었다.

그리고 생각하기로 외딴 작은 섬인 만큼 자동차는 물론 문명과 거리가 먼 조용하고 한적한 삶을 영위하는 곳이리라 여겼다. 우리뿐 아니라 섬사람들 역시 유사한 생각과 유형으로 그렇게 살고 있으리라 한 치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지나친 환상에 불과했고 현재 그 환영에서 차츰 깨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택시나 버스 대중교통은 전혀 없지만 도요타 지프차들이 집집마다 문명을 자랑하고 있으며 이 모습은 어제 공항에서 오던 길에 지나친 알로 왕국의 꼴리아(Kolia) 부락과는 전혀 다른 정경이었다.

이런 우리의 유아적 순박한 생각은 여기서도 완전히 빗나가 마치 초보 경험자의 민낯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특히 여기 싱가베 왕국은 이 섬의 전 상권이라 할 수 있는 세 개의 슈퍼마켓과 두 호텔, 유일한 주유소 그리고 공공시설, 우체국, 기동 현병대와 섬 행정관이 위치하는 중심지로 알로 왕국보다 역연히 현대화 물결이 잠입된 부유한 왕국이다.

나중에 깨달은 풍문이지만 경제 활성화 차원으로 프랑스 본국에서 푸투나섬에 내려보낸 지원금을 원주민들끼리 조작해서 목적은 택시 운영이라는 허위 증서를 꾸며 두 왕국의 각 가정마다 자가용을 마련한 것이란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나 오후 끝자락에 다시 나갔더니 한낮에 만난 중국계 푸투나인 슈퍼마켓 앞에 중고가 판매 광고를 붙인 빨간 피칸토(Picanto) 기아차가 세워져 있었다. 년수가 오래되지 않은 듯 매끈히 단장된 이 소형차 주인은 이층 항공여행사 업무를 보는 파파라니(본국에서 온 사람을 일컬음)였다. 우리는 한국 기아차라는 내 고국에 대한 애정도 한몫했지만 또 다른 매물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적절한 가격과 무엇보다 당장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더 미룰 수가 없어 곧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폴리네시아 프랑스 령 타이티와 뉴 칼리도니아를 포함하여 왈리스 및 푸투나 섬에서는 유로가 아닌 독립적으로 통용되는 태평양 프랑(Franc Pacifique)* 화폐다.

솔직히 나는 한국 돈처럼 소수점이 많은 그 숫자가 도무지 헷갈려 그 값에 대한 감 조차 없지만 아무튼 A 말에 의하자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했다.

원래부터 숫자나 셈에 약한 나는 산수도 수학 능력 또한 역력히 부족하여 언제나 값을 치를 때는 내가 아닌 그의 일이다. 이 섬에서도 내 무능력 무감각 수 개념은 고스란히 저 파도치는 앞바다에서 열심히 노를 저어 대는 꼴이지 않을까 넉넉히 예상되는 바이다.

내 관심은 오로지 티아레 꽃을 꽂은 폴리네시아 여인, 코코넛 나무, 초가집, 새와 열대 꽃무늬가 담긴 태평양 프랑 지폐에 새겨진 그 이색적인 디자인과 색상이 멋지다는 생각만 먼저 들었다.


* 태평양 프랑(Franc Pacifique) 화폐 : 1000 XPF(태평양 프랑) = 8,38 유로

1000 유로 = 119331,70 XPF(태평양 프랑)


그렇게 우리에게도 자동차가 생겼고 이제부터는 이글대는 태양볕을 온전히 몸소 짊어진 채 버둥거리며 두발로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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