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푸투나 섬
지상의 모든 것이 잠들었다. 바람마저 삼켜버린 어둠은 침묵한다. 무거운 밤이다.
별들 따라 길을 나섰다가 달빛 아래 깨어난 밤이슬을 만났다. 촉촉하게 사부작 거리며 스며드는 선득한 감촉을 피해 그만 방으로 들어왔다.
열대 지방 밤이슬은 위력적이고 기운차다. 무릇 빗방울이 떨어지듯, 샤워를 한 듯이. 새벽녘에는 흡사 서리가 내린 것처럼 풀잎이 뿌옇다.
방 안 공기가 바깥과는 다르게 지독히도 탁하고 후덥지근하다. 설마 찜질방에 들어온 것도 아닐진대.
숨 막히게 탁탁하고 무거운 공기를 한대의 선풍기로 식히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에어컨은 없다.
긴긴 낮동안 뜨겁고 작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열을 온전히 받던 함석지붕이 어둠과 동시에 훅훅 뿜어 낸 열기가 이 좁은 공간에 고스란히 갇혔다. 크지도 작지도 않지만 하나뿐인 창문으로 감히 환기를 식히기에는 어림없다. 창은 활짝 열어 두었지만 옆집 담이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신선한 공기가 와르르 들어올 수도 없는 막막 궁산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잠잠한 밤.
혹시나 희소한 공기라도 통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욕실문과 안쪽 작은 창을 모두 열었다. 미관상은 고사하고 제발 하수 통 냄새만은 없기를 바라면서.
더욱 심각한 것은 프랑스에서 배로 부친 이삿짐이 도착하지 않아 침대도 매트도 없을뿐더러 그를 대용할 만한 것이라고는 오직 우리 여행가방에 넣어 온 캠핑용 돗자리뿐이다. 별다른 방도가 없는지라 그거라도 바닥에 깔고 누워 보았지만 언감생심 역부족이다. 오랜 시간 침대 생활에 익숙된 우리 몸은 딱딱한 방바닥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어깨, 옆구리, 골반, 무릎, 등 하다못해 발목 복숭아뼈까지 돌출된 모든 부분이 바닥과 충돌하여 배겨서 도저히 잠들 수가 없다.
방바닥에 등짝을 붙이고 똑바로 누우면 배김은 덜하나 바닥에 맞닿는 면적이 넓은 만큼 공기 소통 또한 어렵사리 그곳에서 불이 난다.
그리고 피부가 숨을 쉬고 등도 식힐 겸 몸을 자주 움직여 주어야 하는데 옆으로 돌아 누울 때마다 살갗에 쩍 들어붙은 플라스틱 돗자리가 덩달아서 쫒아온다. 성가시게 따라오는 돗자리를 매번 떼어 내느라 오던 잠도 되돌아간다. 지지 직하며 그 뜯어내는 소리까지 몹시도 요설 하다.
마치 군불 지핀 온돌방에라도 누은 듯 등짝에서 열이 솟구쳐 푹푹 찌른다. 견디다 못해 일어나 돗자리 위에다 수건을 깔고 누었지만 뒤척일 때마다 얇은 수건이 밀리어 그 접혀 주름진 부분까지 내 몸을 압박한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잠은 달아났고 온통 땀으로 미끈거린다. 결국 우리는 일어나 교대로 찬물에 샤워를 하고 다시 누웠다. 시원함도 잠시 뿐 금세 땀은 또 솟는다. 움직임의 횟수나 범위에 따라 나오는 땀도 다르니 뒤척이는 것조차 두려워 억지로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는 진퇴양난이다.
매사에 긍정적인 A는 캠핑하던 소년 시절 추억을 떠올렸지만 현실에 민감한 나는 에어컨과 침대가 있던 호텔이 그리워지면서 그 안락함을 두고 떠나온 것에 막심한 후회가 들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충분히 불평불만 늘어놓았겠지만 곤하고 지치니 짜증 낼 기운도 없었다. 그런들 이 상황이 해결될 것도 아니며 누구의 책임도 아니잖는가!
다시 잠을 청해 보았으나 쉽사리 들지 않는다. 누운 채로 다문다문 주고받던 말조차 힘이 들어 단답형으로 '응' '맞아'로 짤막하게 대꾸하다 언제인지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긴 하게 내려온 밤이슬은 대기를 식히고 더위는 한풀 꺾였다. 겨우 한숨을 잤나 했는데 새벽부터 짓어대는 개들과 수탉 우는 소리가 매정하게 내 여윈잠을 깨운다. 선잠에 노곤한 몸으로 축 늘어져 공허하게 누워있는데 내 얼굴 위로 환한 햇살까지 가득히 쏟아져 내린다. 야속하게도 동쪽 창은 너무나 일찍이 아침햇살을 받아들였다. 따가운 햇살은 내 닫힌 눈꺼풀을 자꾸자꾸 찔러대며 파고든다. 빛을 가릴 커튼은 없다. 벌써부터 야단법석인 더위 때문에 더 이상 누워 있을 수도 없다. 선선한 공기가 마시고 싶어 그만 더위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밖으로 나왔다.
자는 둥 마는 둥 첫날밤을 새우잠으로 힘겹게 지내고 맞는 아침이다.
'좋은 아침' '잘 잤나' 친구 부부의 아침인사에 'oui'('응' 또는 '예'의 뜻) 'et vous'(당신들도)라는 간밤의 고통은 예의상 감추고 거짓 아닌 지극히 형식적이며 위선적인 목소리로 짧게 답한다.
우리들은 아침 식탁에서 또다시 긴 수다가 시작되었고 지난밤의 일들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프랑스인들의 수다는 세계적이다.
우리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보편적 생활에서 친구 댁 식사초대라도 받아 방문한 듯 지난밤 악몽은 단꿈으로 바뀌어 오로지 평화만 있었다. 비로소 친구들과 바캉스를 즐기는 기분도 들었다.
밤으로 점차 다가가는 오후 나절 조금씩 지난밤의 고통이 되살아 온다. 우리는 선풍기를 한대 샀다. 두대의 선풍기를 돌린다면 끔찍한 지옥실에서 조금은 벗어나리라. 넓게 펼친 마누(manou)로 임시방편 창문 커튼도 만들었다.
본국에서 같은 컨테이너로 함께 이삿짐을 부친 친구 부부도 제대로 된 가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 집을 구할 때 먼저 살았던 세입자가 두고 간 보잘것없는 몇몇 가구와 나일론 담요 매트를 바닥에 깔아 그나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방에는 에어컨이 작동되어 우리 방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스펀지를 속에 넣어 만든 이 나일론 제품의 요는 가난했던 우리나라 60, 70년대 살림살이에서 흔히 사용했었던 것으로 공기가 통하지 않아 땀띠를 생성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무서운 혹서 열대 지방 에어컨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이 매트를 깔고 잔다는 건 땀과 불쾌감은커녕 건강상으로도 해로울 것이 분명하다. 나는 구입을 완강히 거부했다. 비록 전날 밤 같은 고통을 재현할지언정...
이처럼 여기서 내 어린 시절에 보고 겪었던 모습을 다시 경험하며, 그동안 잊어버린 아득한 그때 우리들의 힘들었던 생활상을 몸소, 본의 아니게 다시 체험하는 중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임에 틀림없다. 이 힘겨운 생활도 그럭저럭 응화 되어 첫날밤 같은 고투를 벌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남녀 동료가 찾아왔다. 서로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그들의 사회성과 친화력에 우리는 금방 가까워졌다. 프랑스 남쪽 도시 마르세이유에서 온 M 여성과 소 앤틸리스 제도(petites Antilles) 프랑스령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에서 온 남자 동료 B다.
"자 내 차에 오르시오. 섬 한 바퀴 돌아봐야지, 난 이미 두 바퀴 돌았다오." B의 제안에 얼떨결 우리는 그의 차에 올랐다. 무엇이 그리도 바빴기에 왜 이 생각을 미처 못했었지? 하는 마음으로.
그동안 꽤 많은 날들이 지나도록 구체적 형태는 없었지만 우리의 내면에 잠재했던 섬에 대한 궁금증이 바로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허리띠 같이 섬 언저리 유일하게 난 길을 따라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일주한다.
섬의 북서쪽에 닿았다. 이 고적함,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 야성적이다. 한 폭의 훌륭한 대가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섬 거주민 대부분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남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부락이라고 하기에는 드문드문 몇 채의 소박한 함석지붕과 초가 가옥은 공소하고 슬프게도 호젓하다.
테라스 바닥에 퍼지르고 앉은 원주민 여인은 하염없이 창망한 바다를 바라보다가 낯선 이방객 우리에게로 시선을 던진다. 나는 그녀의 망연한 모습을 보면서 한적하니 평화롭게만 보이는 정경과 거칠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원망스럽다. 저무는 햇살의 정적 속에서 파도소리만 줄기차게 밀려온다.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 뽀이(Poi) 부락이다.
그 이후 나에게 뭔지 모를 공허함과 막연한 그리움이 밀려오던 날이면 뽀이(Poi) 부락의 야생적인 바닷가를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