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푸갈로, 우주 공간을 경험하다

6. 푸투나 섬

by 다나 김선자



E와 F 댁에서 보낸지도 꽤 많은 날들이 지났다. 아무리 각별한 친구사이라도 오랜 시간 한 지붕 아래서 지낸다는 것은 서로 간 많은 배려와 인내심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성인일수록 그 세월만큼 굳어진 개별적 관습 또한 크기 때문에 더욱이 그렇다. 하물며 고락을 같이해 온 가족도 아닐뿐더러 예부터 친숙 관계도 아닌데... 친구 부부의 너그러운 마음씨와 따뜻한 아량, 인간적인 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우리가 어쩌면 그들에게 말할 수 없는 부담으로 느껴질 즈음 내 안에서도 이제 유숙을 끝낼 때가 되었다는 빨간 신호가 왔다. 영원히 같이 살 수는 없는 법. 자유롭고 싶었다. 특히 밤의 고통에서도.

아무튼 그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은 소중하고 값지며 무한히 감사한다. 앞으로도...


마침내 우리는 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동안 지체되었던 공사가 결국은 날림으로 서두른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쓰다 남은 자질구레한 도구들이 무성의하게 흩어져 나뒹굴고 서툴고 초보적인 페인트칠은 바닥에서 요란스럽게 얼룩을 그려 놓았다. 도무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을 물방울무늬에서 점묘법까지. 진입로 역시 자갈을 깔았다지만 시늉만 한 정도다. 우리에게 당당했던 그때의 약속은 막간극처럼 순간적인 권약으로 막을 내렸다.

이것이 푸투나인들의 기질이고 문화임을 진즉에 알지는 못했다. 요령부득하고 책임감은 미미하다. 도덕적 관념 따윈 아예 등한시된다. 태고적부터 살아온 야생적인 삶에서 기술적 노동, 청결, 정리, 정돈 같이 현대문명의 질서나 체계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과 대치되어 교차점을 이루고 있다.

집주인 M은 자녀들 바캉스가 끝났다고 이미 뉴 칼리도니아로 떠났으며 나머지 사소한 일들은 친정어머니댁에 사는 남동생에게 일임해 놓았다지만 어떻게 주인을 대신하겠는가!

M이 비치했다는 침대를 비롯한 낡은 옷장과 가구들은 모두 묶은 때가 덕지덕지 앉아 구차하고 곰팡내마저 풍긴다. 앞으로 한 달간은 족히 씻고 닦고를 거듭해야 될 일거리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남겨졌다. 모든 것이 섬에서는 부족하고 아쉬운 처지라 이 정도의 노동은 감안하며 감수도 해야 한다. 우선 침대 매트부터 밖으로 끌어내어 햇볕에 일광욕을 시켰다.


하루가 우리의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 속에서 저물어간다. 우리는 보금자리에 안착한 기념으로 둘이서 간단하게 축배를 들었다.

해가 빠르게 기울어짐과 동시에 눈 앞에서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화려한 무대의 막이 열리듯 온통 하늘은 불타고 있다. 거대한 뭉게구름이 붉은 산봉우리를 만들어 뭉실뭉실 부풀어 오른다.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자연의 예술 조각품! 가히 장관이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다.

넋을 놓고 있는 동안 낙조의 불똥이 튀어 풍덩 술잔에 빠지더니 우리에게로 옮겨 불붙는가 했는데 어느새 태양은 바다 밑으로 떨어졌나 보다. 세상이 금세 잿더미로 변한다. 새들도 수다스럽게 재재대던 소리를 멈추었다. 석양에 사위어 까맣게 뒤덮인 지상. 침묵. 우리도 시나브로 어둠 속에서 사위어 간다.


DSCF5805.jpg 셋집에서 바라본 저녁놀
soir.jpg 사위어 가는 석양
DSCF5816.jpg 사위어진 지상


푸투나 섬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적도가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문명의 불빛이 현저히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집에서 맞이하는 첫날 친구들이 빠진 저녁 밤 오롯이 둘만의 시간, 만감이 교차한다. 해방감도 든다.

티브이도 없는 긴 저녁시간 어스름이 무위를 암시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에 빠져든다. 초록의 야자수 나무가 꼼짝없이 검게 변해가는 걸 신비롭게 바라도 본다. 정지된 사물들을!

무엇을 할까? 여행 가방 속에 넣어 온 카드를 꺼냈다. 맨 탁자 위에 카드를 돌린다. 시간이 후다닥 지난다. 카드놀이도 끝나고 밤도 깊었다. 긴 밤 자리에 일찍 거니 들 마음도 없고 굳이 빨리 자야 할 이유는 더구나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다. 밖으로 나갔다. 멀리 적막하게 개 짖는 소리, 우리는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간다.

바닷가 똘로케 친구 집보다 더위의 기세는 한결 약하다. 태양볕에 데워진 바닷물보다 숲이 있고 고도가 높아 더 시원한 산 공기다. 나는 긴 호흡으로 폐부 그 아래까지 깊숙이 들어마시며 음미한다. 깜깜한 마당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하얀 탁자 위에 둘이서 나란히 하늘을 보고 반듯하게 누웠다. 두 사람이 눕기에 딱 적당한 크기다.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거기에 엄청난 우주 세계가 펼쳐져 있다. 거대한 우주 공간! 그 한가운데 내가 있고 우리가 있었다.

보옥같이 빛나는 은하수가 남북 자오면으로 뚜렷이 길을 만들었다. 오작교라 하던가! 은하 철도라고 했던가! 이토록 맑고도 밝게 빛나는 수없이 많은 총총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내게로 우르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우박처럼. 마치 함박꽃 같은 보석들이 은총과 축복으로 우리를 덮어 버릴 것만 같다.

그동안 무수히 보아온 하늘 중에 이처럼 명확하고도 신비롭고 아름다운 은하수 별밤은 또 처음이다.


오랜만에 단잠을 잤다. 비걱거리던 허술한 침대라도 좋고 빗물 젖은 얼룩으로 누추한 매트라도 괜찮았다. 벼룩은 없으니 다행이다. 딱딱한 방바닥보다 폭신해서 편안했다.

똘로케 친구 댁 방보다 족히 두배가 더 넓은 공간에 산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바람이 탁 트인 양쪽 창으로 풀렁 풀렁 막힘없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복층이 있어 함석지붕이 뿜어내는 더운 열기를 우리가 온전히 몸소 감당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

일어나서 유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더니 아침의 상쾌한 공기와 드넓은 바다가 거침새 없이 우리를 맞이 한다. 나도 두 팔을 활짝 펴고 그를 안았다. 바다를 보듬고 자연을 품었다. 내 가슴이 그와 같이 커지는 기분, 이 자유로움!


섬에서는 도시에 있는 많은 것들이 없어 불편하고 부족하고 빈약하지만 생생한 자연만큼은 풍족하다. 도시에서 즐기는 흥취나 쾌락 같은 것은 없지만 황홀한 시공의 자유를 향유한다.

나는 날개가 없어도 날 수 있고 나는 것 같다. 적어도 이 푸갈로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내 가슴 아래로 펼쳐져 있으니까. 마을도 바다도 알로피 섬도.

페소아가 말한 "문명은 우리에게 자연을 교육한다. 인공은 자연의 존엄을 가르친다"

"고도로 진화한 인간 영혼의 자연성은 자연과 인공 사이의 조화에 있다"* 이 글처럼 나는 이곳에서 원대한 자연의 존엄을 배운다. 또한 그 조화를 깨달아 이루고자 한다. 그리하여 내 작업에서 거듭나고 싶다.

* 페르난두 페소아 - 불안의 서


우리는 아침식사 후 집 안팎으로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으고, 버리고, 씻고, 닦고를 반복하였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박소한 살림이나 나름대로 우리들 기호에 알맞도록 자리 배치도 했다. 가장 넓은 동쪽 방과 복층은 각각 우리의 작업실로 사용하게 비워 두었다. 배편으로 보낸 우리의 이삿짐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태평양 어디쯤에 정박해 있던지 바다 위에서 파도를 휩쓸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은 별수 없이 소꿉놀이 같지만 캠핑 같은 생활을 낭만으로 여기고 계속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이상으로만 생각하고 꿈길 같던 폴리네시아 섬 생활은 지금부터 비로소 우리의 새로운 인생 여정으로 시작되었다.

알로 왕국의 말라에 부락 푸갈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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