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푸투나 섬
오후 나절에 이웃집을 찾았다. 이사했다는 소식도 알릴 겸 인사를 하러 우선 어른이 계신다는 아랫집으로 향했다. 위쪽으로는 우리보다 젊은 원주민 한가족만 살고 있다. 위 아랫집 모두 집주인 M과는 친척이다. 물론 말라에 부락민 대부분이 가까운 친척에서 멀리는 사돈의 팔촌은 된다. M은 뉴 칼리도니아로 떠나기 전에 위아래 양쪽 집에다 우리의 존재를 미리 알려 두었다고 했다.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거나 말썽이 생길 경우 어른이 사는 아랫집에 도움을 청하라고도 했었다.
아랫집 마당에 들어섰지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길을 잃었다. 담도 대문도 없는 넓은 마당에 함석지붕이 건너편까지 포함해서 세 채나 된다. 사람이라도 보여야 물어볼 텐데. 고요하고 괴괴하다. 뜨거운 흰 햇살만이 우리를 적나라게 내리 비춘다. 마치 처음으로 무대 위에서 집중된 조명을 받고 서 있는 기분, 어색하다.
낮잠이라도 자는 것인가?
땡볕 아래 이대로 한없이 서 있을 수는 없다. 먼저 가까이 있는 녹색 함석지붕 앞으로 다가서 인기척이라도 들리려나 두리번거리며 동정을 살폈다. 달콤한 한낮 누군가의 단잠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 티브이를 켜 놓았는지 따듬 따듬 바느질 같은 일률적인 음이 들린다. 일단 사람은 있다는 것이니 용기를 내서 불러 보았다.
"실례합니다" "누구 계세요" 서너 번 부른 끝에 안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컴컴한 실내에서 깜깜한 사람이 석룡자같이 쑥 나온다. 또는 원시인처럼.
눈부신 바깥 햇살과 대비된 우리의 착시 현상이었나? 하지만 완전히 착각만도 아니었다. 마누만 걸친 짙은 갈색 피부에 쩍 벌어진 탄탄한 근육질의 어깨, 숱이 많은 새까만 눈썹,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온통 그림자 같은 젊은 남성이 우리 앞에 선다. 균형 잡힌 강인한 육체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이다.
젊은이는 우리의 뜬금없는 방문에도 놀라는 기색은커녕 호기심 조차 없이 졸음에 밴 눈으로 만사 귀찮은 표정을 지어 아무 말없이 우리를 빤히 내려다본다. 짙고 긴 속눈썹이 우수에 젖어 덧입힌 신비로움까지. 미지의 개척자와 원시부족 폴리네시아 청년이 뜻밖에 만나는 마치 전설적인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우리가 방문한 이유를 말하자 그때사 젊은이는 자기를 따라오라며 시커먼 발가락을 주섬주섬 샌들 끈에 끼워 넣더니 마당같이 넓은 어깨와 등을 앞세우고 슬렁슬렁 태양볕으로 뒤덮인 뜨락을 가로지른다.
우리는 언뜻 한낮의 평화로운 모습이 보이던 함석지붕 테라스식 팔레로 안내되었다. 자갈이 깔린 팔레 안에서 옆으로 몸을 뉘인 채 오후의 휴식을 취하던 그의 부친은 일어나 자세를 곧추 앉고, 그 곁에 앉아서 돗자리를 짜던 그의 모친도 움직이던 손을 놓고 우리를 맞이한다. 그들의 젊은 아들은 그의 부모님께 우리가 온 이유를 푸투나 말로 알린다.
여주인은 서툰 불어로 우리를 팔레 안으로 들어오라고 친절하게 말했다. 바닥이 자갈이라 불편할 테니 신은 신발 그대로 들어오라며 너그럽게 호의도 베푼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거실이나 다름없는 공간, 푸투나에서는 푸투나식을 따르는 게 원칙상 예의이며 도리라 우리는 그들처럼 맨발로 들어섰다.
하지만 여주인이 던진 이 단순한 한마디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에게 큰 의미로 와 닿았다. 그녀의 품성과 격조를 잘 드러내 주는 말이기도 했지만 배려하는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는 외지인을 받아들이고 환영한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소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이 낯선 작은 섬 좁은 마을 원주민들 속에서 외톨이나 외계인처럼 살지 않으려면 적어도 그들의 눈총을 받거나 맞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제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사실상 본국에서 온 파파라니나 다른 프랑스 령에서 온 외부인들끼리 집약적 모여 사는 동네도 있다. 이런저런 예측 불가 어려움이나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여 아니면 이방인이라는 동질감으로 서로 기대는 마음과 그 외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그 또한 여러 방면 편리하고 이로운 점도 분명 있겠지만 천편일률적인 동네를 벗어나 다소 모험적이고 독립적 삶을 원하기도 했었던 우리로서는 조용한 푸갈로 마을이 좋다. 인간 세상이란 정 붙여 살기 나름이지 온전히 만족도 완벽한 곳도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우리가 팔레안으로 들어서자 여주인은 우리를 의자에 앉히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면서 우리의 무릎을 걱정하여 자갈이라 불편하더라도 편히 앉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부는 나란히 우리를 마주하여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그들 아들은 부모님과 우리의 중간쯤에서 양쪽 의견을 경청하고 전달하기 편하게 비스듬히 옆으로 비껴 앉았다. 그리고 푸투나어로 말하는 부모님의 말을 우리에게 불어로 우리가 말하는 불어는 푸투나 원주민 언어로 자연스레 통역자의 역할을 한다. 무려 수장 부부를 영접하는 외국 사절단의 말을 전하는 통역관처럼.
망고나무와 프리 아 빵(fruit à pain) 그리고 코코넛 나무로 둘러싸인 이 검소한 팔레 안에서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격식을 갖추어 주고받는 분위기와 형태는 이국적인 주변 환경과 더불어 능히 흥미로운 풍경이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우리와의 첫 대면에서 보듯이 권위와 품격을 갖춘 가문으로써 푸투나 섬 관례에 따라 위계질서를 비롯한 전통 양식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었다.
기아리끼 성을 가진 우리 이웃은 한울타리 안에서 삼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다.
바깥주인은 불어를 전혀 못했고 여주인은 어림잡아 아주 간단한 생활 불어는 가능했지만 소통은 지극히 미흡한 수준이다. 여주인 왈 "나는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고 학업을 중단해서 프랑스 말을 잘 못한다" "그동안 사용도 안 하여 다 잊었다"
그렇지만 우리 이웃은 자신들의 가족관계와 집안 내력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 주었다.
바깥어른 기아리끼 씨는 퇴임한 전년도까지 7년 동안 마을 수장이었고, 안주인은 알로 왕족의 혈통이다. 그들에게는 1녀 6남을 두고 있다. 푸투나에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두 아들과 가톨릭 사제로 외지 섬에 재직하는 둘째 아들, 나무에서 떨어져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아들과 집안일을 돌보는 넷째 그리고 지금 통역하는 아들이 막내다. 첫째이자 외동딸은 결혼하여 건너편에 보이는 흰 함석지붕 밑에서 산다고 한다. 그들은 싱가베 왕국에 사는 큰아들과 신부가 된 둘째를 제외한 손자 손녀를 포함하여 모두가 세 지붕 아래 총 13명의 식구가 이 팔레에서 다 함께 식사를 하는 대 가족임을 흐뭇하게 여겼다.
이 풍요로운 터전은 마치 기아리끼 왕국 같다.
가톨릭 신앙을 신성시하는 푸투나 섬에서는 가족 중 가톨릭 사제를 배출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고 자랑이다. 우리의 이웃은 그 임무를 수행하여 사제가 된 아들을 두었고 덧붙어 말라에 성당 사제에 머무는 신부님 음식 바라지를 수년 동안 하고 있었다.
또한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정기적 급료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푸투나 섬에서 상류층에 속한다. 하물며 공무원이 있다는 것은 그 집안 전체의 권위와 사는데 경제적 어려움 없이 풍요롭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장 경제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생산력도 없는 이 섬에서 현금 융통이 귀한 만큼 매월 수입이 있다는 것은 삶을 여유롭게 하는 것은 물론 윤택하고 권위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도 한다. 따라서 우리 이웃은 아들이 두 명이나 그것도 안정적인 공무원이지 않은가. 게다가 기아리끼 어른 역시 마을 수장으로 퇴임한 연금을 많지는 않으나 매달 받는다며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여주인의 풋풋한 설명도 있었다.
푸투나 섬에서는 학교와 병원은 모두 국가의 지원 아래 운영된다. 진료도 교육도 일체 무료다. 가령 푸투나 섬에서 치료가 불가능할 경우 큰 병원이 있는 다른 프랑스 령으로 가는 왕복 항공권까지 지원된다.
학생들은 연필, 공책부터 거의 대부분의 비품은 무료로 제공받으며 섬 밖으로 견학을 가거나 큰 섬 또는 본국으로 진학할 경우 왕복 항공권은 물론 생활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도 장학제도로 손쉽게 혜택 받는다.
그들에게는 조세 규정도 없다. 부가 가치세만 적용된다. 하지만 크게 소비생활 방식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통적인 삶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땅도 토지도 원주민들 소유이니 집을 지을 최저 경비만 지출하면 나머지는 친인척끼리 두레식으로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 주식은 토란과 프리 아 빵(fruit à pain), 마니오크(manioc), 바나나 그리고 돼지고기와 생선이다. 주로 현지에서 야생으로 자라고 극히 일부는 재배하거나 키운다. 대체로 자급자족의 형식이다. 따라서 사적인 기호나 사치비로 사용되는 경비를 제외하면 푸투나인들의 기본생활에 드는 비용은 크지 않다.
이렇게 기본적 생활이 가능하므로 굳이 익숙된 그들의 오랜 관습을 바꾸어 낯선 외부 문화를 애써 받아들이려는 수고도 원치 않는다. 폐쇄성이 강하다. 그들 역시 현대문명의 물질적 욕망이야 없지는 않겠지만 노력하거나 추구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 국가 지원금에 기대거나 차라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갈구한다.
따라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보다는 주어진 숙명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예부터 살아온 방식을 보전하고 차라리 안주하는 방향으로. 그들에게 전통은 힘이고 의지이며 자랑이고 자존심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좋다 나쁘다로 간단히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치열한 도시의 삶보다 정신적으로는 편할지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모두가 서로 다른 관점과 개인적 취향이고 또는 익숙된 습관에서 이룩되는 개인차로 간파되고 간과될 상황이기에. 단지 내 짧은 인생철학으로는 '인생이란 얻는 것도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는 아주 통속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현대문명에 대한 동경과 자못 억제하지 못한 취향으로 섬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특히 오늘날 젊은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진학 또는 일자리를 찾아 아니면 도시에 대한 환상으로 뉴 칼리도니아나 프랑스로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거나 않는다. 그곳에서 또 다른 삶의 토대를 마련하여 운명처럼 살아간다. 거리상 멀지 않은 뉴 칼리도니아는 자주 왕래도 가능하지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쉽사리 오고 갈 수가 없는 머나먼 본국 프랑스와는 없는 듯 잊지 못하고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그리하여 푸투나 부모들은 자식들이 그들 곁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자녀의 출발을 두 팔 들고 환영하지도 않는다. 푸투나인들의 애착심은 삶 곳곳에서 도시인들 보다도 아주 강하게 흔히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의 끝 작은 섬에서는 육지와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어떤 커다란 간극이 생긴 것도 같다. 그만큼 현대 문명이 도착되는 속도가 느리기도 하지만 그동안 원시적 강렬한 자연환경에서 단단하게 만들어지고 굳어진 그들만의 강인한 자존심과 기질은 스스로 외부 영향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 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개방적이기보다는 쇄폐적인 경향이 매우 강하다. 아마도 긴긴 세월 이어져 온 친숙한 관습을 정화하고 바꾸는 데에는 몸에 잘 맞는 옷을 벗어 버리고 내 것이 아닌듯한 불편한 옷을 입어야만 하는 어떤 특별한 계기나 절실함 또는 용기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새 옷을 꼭 입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헤진 곳을 깁어 입으면 더 따뜻하고 빛이 나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쉼표 같고 휴일처럼 그 막간이 주는 틈새가 이 섬의 커다란 매력이기도 하다. 폐쇄적이고 옹고집 같은 그들의 성질이 지금까지 고유한 성격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만든 동기이기도 하다. 적어도 박한 물질문명을 경험한 우리에게. 때론 낯설지만 새롭고 느긋한 자유를 추구하고 갈망하는 누구에게는.
우리는 기아리끼 댁과 첫 조우를 끝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위엄과 격식을 갖추어 예의 있고 고결한 품격을 가진 좋은 이웃을 둔 것에 안도감을 느끼며. 마치 유년시절 내 가족을 만난 것처럼.
우리에게 이웃이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말과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할 때 찾아오라는 친절함과 감사함을 소중이 가슴에 안고서.
아주 특별하고 인상적인 원주민과의 첫 공식적 대면이었다.
그 이후 일요일 점심에 기아리끼 댁 손자가 들고 온 푸투나 전통음식 돼지고기와 프리 아 빵(fruit à pain) 그리고 마니오크(manioc) 등에서 내 어린 시절에 먹었던 돼지고기와 시골 맛이 고스란히 흠뻑 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