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삶과 고향 같은 그곳

8. 푸투나 섬

by 다나 김선자



양서의 책갈피가 흥미롭게 넘어가듯 하루하루는 가볍게 삽시간에 지나가고 어떤 날은 섬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지루하며 느리게도 흘렸다. 우리의 일상은 땀 흘리며 모기와 씨름하다 햇살이 한풀 꺾이면 섬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산책을 한다. 그리고 바다로 나간다. 하루 종일 흘린 땀으로 지치고 해진 피부를 말끔히 바닷물에 해독하듯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수영을 한다. 땅거미가 지는 공항 활주로를 소금기 젖은 머리가 뻣뻣해질 때까지 사색적으로 걷기도 한다. 우연히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체로 바다에서 돌아오는 길에 벨레의 친구 집에서 아페리티프(apéritif:식욕을 돋우는, 식전에 마시는 술)를 마시면서 잡다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가끔은 어스름이 지는 바닷가에 종종 남편 A와 둘만이 남을 때가 많다. 바닷물에서 먼저 빠져나가 젖은 몸을 말리는 A, 나 홀로 막막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 위에서 동동 몸을 띄우고 있노라면, 광활한 태평양 한가운데서 유일한 생존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또한 세상에 마치 홀로 남겨진 고독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세상이 오로지 내 것인 것만 같아 가슴 벅차게 오르는 감정을 무어라 표현할 수조차 없기도 했다. 이 고적하고 심오한 감정이 너무나 아름답고 절묘해서 흐뭇했다. 나는 이렇게 우수 어린 느낌이 좋아 그 분위기에 매혹되어 언제나 오랫동안 헤엄치며 바다에 혼자 떠 있기도 했었다.

그러다 A가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서 평생 단 한번 목격했다는 녹색 섬광을 혹시나 이 바닷가에서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해가 바다 밑으로 떨어지는 걸 기다렸다 오기도 했다.


저녁놀과 수평선


어느 저녁에는 책 읽기에도 신물이 날 때면 둘이서 나란히 거실 소파에 앉아 우두커니 맞은편 하얀 벽에 찰싹 붙어 있는 도마뱀들의 삶을 관찰하기도 한다. 사냥에 나서거나 영역 싸움을 벌이는 그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보면서 무료함을 달랜다. 인터넷도 티브이도 없으니 그것은 우리에게 드라마틱한 한 편의 연극 무대와 같았다.

집 마무리 공사가 미흡하여 창문마다 방충망이 없다. 밤마다 거실의 불빛을 향하여 달려드는 벌레들은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자유로이 집안으로 안으로만 날아든다. 온통 그들의 세상이 된다. 그렇다고 전등불을 모두 끄고 있을 수도 없고 이 열대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문을 마냥 닫고 있을 수만은 더구나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들 모두와 한 지붕 아래서 공생해야만 했다.

누런 도마뱀들은 날아든 벌레들을 잡으려고 높은 거실 벽에서 저녁마다 마라톤을 벌인다. 흰 내벽은 온전히 그들의 사냥터다. 아님 식당인가?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밤마다 군단을 지어 몰려온다. 저녁의 성찬으로 살집도 좋다.

그들은 얌전히 끈기 있게 벽에 붙어 먹이가 접근해 오기만을 기다리다 먹거리가 도달하면 거침없이 쪼르륵 달려간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으로 겨냥한 먹이를 자주 놓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소침해지는 법은 없다. 하지만 어쩌다 멍하니 넋 놓고 있거나 동작이 느린 나방을 만날 때는 도마뱀의 위력이 거세지고 잡은 전리품으로 충족히 배 불리기도 한다.

먹이를 쫒아 달려가다 때마침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경쟁자를 만나면, 즉각 세력 다툼으로 맹렬하게 대항을 한다. 또는 양쪽에서 진지한 경계 태세가 되기도, 기회를 노려 가차 없이 돌진하여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때때로 싸움을 포기하고 비굴하게 또는 현명하게 쪼르르 도망가는 녀석도 있다.

이렇게 도마뱀의 생존경쟁을 보면서 A와 나도 편을 갈라 각자 도마뱀을 지지하고 나서던지, 아니면 마음이 동하여 같은 놈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자 얼른 쫒아 가, 더 밀어 붙어, 오! 잘한다, 계속 해, 더 빨리 달려!"

경우에 따라 미세한 움직임조차 않고 서로가 탐색전에 돌입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은 가히 정적 속에서 긴장감이 흐를 정도다. 그러다 한 도마뱀이 재빠르게 먹거리를 낚아채는 걸 목격하면 우리는 노획된 벌레에게 애처로운 동정심도 없지 않으나 비로소 안도감이 들어 그들의 명량한 용태에 더 감탄하기도 한다. 낭떠러지 같은 벽에서도 그 유연한 몸을 잽싸고 민첩하게 놀리어 사정없이 먹이를 낚아채는 모습은 가히 황홀할 지경이다. 그리고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노획물을 씹어 삼켜 울렁울렁 뱃속으로 넘어가는 용자가 마치 유리 속을 들어다 보는 것 같이 훤한 형상이라 우리는 신기하게 쳐다본다.

가끔은 어쩌다가 꼬리 잘린 도마뱀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 뭉툭한 생김새가 하도 어이없이 우습고 괴상해서 우리는 조롱 섞은 농을 일삼을 때도 있지만 안쓰러운 마음에서 용기를 주기도 한다.


날이 밝아 일어나서 보면 밤사이 도마뱀이 싸 놓은 배설물로 바닥에는 별 그림을 그려 놓았고 또한 불빛으로 뛰어들어 처절하게 불 사른 나방과 벌레들의 사체가 모래알처럼 깔려있다. 야행성의 세계가 끝나면 아침부터 송장을 치우려는 주행성 도마뱀들이 몰려든다. 이 작고 새까만 도마뱀들은 벽을 타는 누런 도마뱀과는 다른 종류로 땅 위를 기어 다니며 밤새 죽은 벌레들의 시체를 주워 먹고 산다. 그러나 내게는 전혀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쉴 새 없이 집 안팎을 드나드는 꼴이 싫다. 구태여 덧붙이자면 시체 청소를 한다지만 양껏 배불리 먹고 가림새 없이 아무 데나 배설을 남겨 놓으니 오히려 더 골칫거리다. 어느 날은 차곡차곡 포개어 놓은 책과 스케치 북 사이에서 우르르 마른 배설물이 한 움큼이나 쏟아지기도 했다. 이 육식 도마뱀들이 싸 놓는 배설물은 그 냄새가 어찌나 역겹고도 강해서 불쾌할 정도다. 이 무더운 날씨에 내 불평불만이 끊어질 사이가 없다.


내친김에 도마뱀에 관한 이야기를 좀 길게 이어 보면, 이놈들은 야행성 벌레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달달하게 잘 익은 바나나도 무척 좋아한다. 우리는 아랫집 다정다감한 기아리끼 댁에서 선사한 그들의 바나나를 수확해 왔다. 한 송이 바나나는 수량이 너무 많아 모두 일시적으로 익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한꺼번에 다 먹지를 못한다. 우리는 선선한 그늘진 천정에 매달아 놓고 익어가는 순서대로 따서 먹는다.

하루는 대낮부터 잠도 자지 않고 나타난 도마뱀들이 천장에 매달린 줄을 타고 내려와 우리가 미처 따 먹지 못한 잘 익은 바나나를 오물오물 열심히 먹고 있다. 이놈들은 바나나를 통째로 먹지도 않고 여러 개를 슬쩍슬쩍 핥아 놓지 않는가. 우리는 할 수 없이 바나나 송이를 마누((manou:푸투나 인들이 치마처럼 두르는 천)로 돌돌 싸 매어 놓았다. 그런데도 이 요사스러운 것들이 어떻게 우리 허점을 용케도 찾아 마누의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는 잘 익은 것만 골라서 혀로 핥아 놓지 않은가. 나원참, 이제 이것들은 아주 자기들 냉장고 문을 여닫듯이 수시로 자연스럽게 들락거린다. 겁도 없는 요놈들이 아예 우리 양식까지 침략하는 것이 괘씸하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 어느 때에는 모른 척 두고 함께 나눠 먹기도 때로는 모조리 따서 바나나 케이크도 만들고 잼을 왕창 만들었다.

만약 내가 도마뱀에 대한 선 경험이 없었더라면 내 성격상 이 스트레스는 말로도 글로써도 그 표현을 다 못 했을 것이다. 푸투나 섬으로 가기 몇 년 전, 열대지방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전연 없었던 때에 나는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미얀마 양곤(또는 랑군)에서 남편 A가 결혼 전에 묵었다는 전망 좋고 공간이 아파트처럼 넓은 호텔에서 묵은 적이 있다. 이 호텔은 넓고 전망이 그지없이 훌륭하나 오래되어 낡아 고급도 아니었다. 그 첫날밤 잠을 자는데 갑자기 "째꼬" "재꼬"하는 소리를 듣고 잠을 깬 후 천정에 붙어 있는 도마뱀을 보고서는 무섭고 징그러워 밤잠을 설쳤었다. 아무렴 A가 곁에서 "괜찮다" "위험한 동물이 전혀 아니다" "벌레를 잡아먹는 이로운 동물이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도무지 괜찮지가 않았다. 그리고서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와 캄퐁참을 다니면서 여러 식당 등지에서 또다시 많은 도마뱀을 목격하고부터는 조금씩 그들에게 익숙되어 갔다.

다행히 그때의 경험 덕분에 푸투나에서는 도마뱀 때문에 무섭거나 두려움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었다. 단지 나의 성가신 이웃과 같은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흥밋거리가 되기도 심심풀이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이것이 경험에서 얻은 익숙함에 대한 내 삶의 지혜였다.


download-2.jpg
download.jpg
불 지피는 우무와 바나나 잎에 싸여 익힌 음식들


기아리끼 댁에서는 일요일 점심마다 우리에게 전통음식을 보내 준다. 그 속에는 태평양 같이 드넓은 여주인의 아량과 너그러운 인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도 받고서 그냥 있을 수 없으니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나 과일 등 있는 대로 우리가 가진 것으로 답례를 한다. 따라서 스스럼없이 자연스럽게도 물물 교환 형태가 시작되었다.

내가 어릴 적 먹었던 맛이 담겨있다고 느꼈던 푸투나 전통음식은 다름 아닌 온전한 자연의 맛이고 불 맛이었다. 오늘날 산업화로 대량 생산되는 식재료와는 다르게 화학성 물질이 전혀 내포되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토양에서 많은 수분과 풍부한 햇살만으로 얻은 순순하고 참다운 맛이다.

푸투나에서 축제나 특별한 날은 우무(umu)라는 전통 방식으로 음식을 만든다. 굳이 비유하자면 현대식으로 오븐에서 굽는 방식과 비슷하겠으나 어찌 감히 견주 되겠는가? 이 우무는 음식의 부피나 량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서너 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이틀 동안 불을 지피기도 한다.

설명을 좀 더 붙이자면, 우무(umu)란 움푹 파인 땅 안에 자갈을 고르게 깐다. 이어서 돼지고기나 생선을 위시한 프리 아 빵(fruit à pain:열대나무 열매), 마니오크(manioc:카사바 속의 뿌리식물), 토란, 마 등 익힐 음식물들은 넙적한 바나나 잎에 곱게 싸서 묶는다. 그리고 자갈 위에 가지런히 올린다. 그 위에 우산 같은 코코넛 잎으로 촘촘히 덮어 씌우고 다시 자갈을 살짝 여미어 흙으로 얇게 덮는다. 그다음 코코넛 껍질 및 장작 개비를 위에다 놓고 오랜 시간 불을 지펴서 자갈까지 천천히 데운다.

따라서 코코넛 껍질로 지핀 불맛은 코코넛 향기와 더불어 자갈과 흙의 미네랄 향이 묻어나 일품이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두고서 불을 지피면 바나나 잎으로 싸인 음식물은 고온에서도 쉽게 타지 않는 반면 바나나 생 잎에서 나온 향이 골고루 음식물에 배어 더한층 재료들의 맛과 조화를 이루고 게다가 풍미까지 돋우게 된다. 특히 고온에서 뜨겁게 잘 데우진 자갈의 열기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재료의 깊은 맛을 내며 음식을 고루 익히게도 한다. 그러므로 코코넛 껍질의 불 맛과 자갈, 흙 그리고 바나나와 코코넛 잎을 비롯하여 순수한 식재료의 조화로운 맛이다.

이렇게 만든 귀한 음식을 이웃 기아리끼 댁 덕분에 우리는 일요일마다 먹게 되었다. 그 맛은 내 어린 시절 불을 지펴 가마솥에서 만든 내 어머니의 음식 맛이었고, 잔칫날이나 제삿날에 이웃집으로 돌려서 나눠 먹던 우리들의 풍습이었다. 나는 푸투나에서 그 맛과 관습을 처음 보고 느꼈을 때 타임머신을 타고 유년시절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기아리끼 댁 여주인에게서는 내 어머니 같은 그윽한 온정과 자연의 품처럼 그득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나는 추억 속 고향의 따뜻한 정과 향취를 품었다.



DvoNaVuVYAIxFkF.jpg 우무를 여는 모습
DSCF5381.jpg 푸투나 원주민의 부엌






keyword
이전 07화이웃 기아리끼 댁은 이 섬의 상류층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