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푸투나 섬
지구 남반구 여름이 막 떠날 채비를 하던 중 난데없는 불청객을 맞았다. 사이클론 토마(cyclone Tomas)다.
우리는 푸갈로 마을 세든 현대식 팔레에서 보금자리를 꾸리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낮에는 바닥에 들어붙은 페이트를 긁어내면서 땀 흘리고, 어떤 날은 임대인이 두고 간 곰팡내 나는 옷장 서랍들을 밖으로 꺼내 쨍쨍한 햇살에 살균도, 또 하루는 도마뱀과 모기들 극성에 방어 지혜를 짜 내어 어떻게 구했는지 값싼 모기망을 창틀에 고정시켜, 우리의 단잠과 꿈꾸는 밤을 설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 이삿짐이 도착할 날을 손꼽아 세고 있었다.
그렇게 이웃과 친분을 나누며 섬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가운데 크나큰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열대성 장맛비가 쏟아진다고 이상할 것 없이 생각했다. 열대지방 자연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힘차고 강렬하다는 것을 우리 몸소 경험해가던 참이다.
함석지붕이 뚫어져라 내리치는 비를 보고 '거참 빗방울조차도 강하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서서히 바람까지 몰아치기 시작했다. '거세고 맹렬한 바람이다' 여기는데, 어느새 바람은 센 정도를 넘어서 인간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덜커덩 덜커덩 무자비하게 흔들어 대며 야단법석 아우성치는 창문. 미친 듯이 펄렁대는 코코넛 나무들, 그 징조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억수같이 쏟아지는군, 바람을 동반한 장대비?, 이러다 곧 지나가겠지?' 낙천적이게도 생각했다. 위이 잉 윙윙 위이 잉 우우 우웅 마치 늑대 떼들이 우르르 몰려오듯 거칠고 요란스러운 야성적 외침. 나는 점점 불안의 늪으로 빠져든다.
우리 집은 섬에서도 헐벗은 언덕 위에 덩그러니 자리하여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전히 맞닥칠 수밖에 없다. 바람막이라고는 집 앞의 코코넛 몇 그루가 전부인데, 바람은 집 왼쪽 동남쪽에서 불어왔다. 거기는 집 짓을 때 조망을 위해 코코넛 나무를 모두 잘라내어 가름 막이가 전혀 없다.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은 시원해서 좋으나 비바람을 그대로 견뎌야만 했다.
약간은 다행스럽게도 살롱의 큰 유리문은 남쪽으로 약간 비껴 나 있어 바람을 정면으로 맞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덜컹거리는 소리만큼은 금방이라도 난리가 날듯이 소름 돋게 만든다. 빗물이 들이치는 정도야 닦으면 그만이지만 요란한 소음까지는 피할 수가 없었다. 심상찮은 바람의 위력에 유리창이 걱정된 남편은 테이프를 찾아 X자형으로 붙였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고 오도 가도 못하는 상항에서 비바람과 물안개로 시계까지 가려져 우리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기분마저 들었다. 마당은 뒷산에서 흘러내린 흙탕물로 넘치는 강이 되었다. 남편은 새로운 경험 앞에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는지 비바람의 위력을 사진에 담기도, 낯선 바깥 풍경에 탄복하며 관찰하기도 했다. 퍼붓는 비바람에 그도 덩달아 들떴다.
다음날. 더 거칠고 억세진 바람의 기세는 우리 집 둘레를 빙빙 돌면서 괴기스럽게 외쳐댄다. 우우 우웅 우웅, 위이잉 윙, 우우 우웅 윙 윙 윙.
어느 순간부터는 지붕에서 이상한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탁탁 탁탁 타탁 탁탁, 그 소리는 자그마치 지붕을 두들겨 부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우레 같은 굉음이 듣기 괴로워 안절부절 마음 조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남편 역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그는 바깥 사정을 살펴가며 지붕에서 나는 소리를 예의 주시하여 귀 기울이기도, 확인차 수시로 집안 여기저기 왔다 갔다 분주히 움직인다.
바람이 잠시 소강되었을 때, 그는 얼른 창문을 열고 상태를 대략 확인한 후, 내 불안과 걱정에 위로를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의외로 튼튼하게 잘 지어진 집이다, 요란한 소리에 비해 지붕이 크게 뜯기지는 않았으니 아직은 괜찮아"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렸지만 비바람은 도무지 멈추거나 떠날 기미가 없다. 가까이 왔다가 살짝 멀어졌다 금세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맴돌면서 위협한다.
시간이 가면서 우리의 고민도 깊어진다. 이렇게 깜깜한 상태로 한정 없이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있어도 괜찮을지? 이러다 더 큰 곤경을 맞이하는 게 아닐까? 피신처를 찾아 떠나야 하는 건 아닌가? 차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막상 생각은 들지만, 이 비바람에 어떻게 나갈 수 있으며, 또 나간 들 어디로 간다 말인가?
이웃과 떨어져 평소도 조용하나 오늘따라 이 잠잠함은 무인도 같다.
우리에게는 뉴스를 들을 수 있는 아무런 도구나 수단이 없다. 이삿짐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티브이 없는 생활을 원했었고, 대신 인터넷은 신청했지만 아직 개설이 안된 상태다. 사람들과는 물론 현대 문명과도 동떨어진 감감무소식, 오직 바람이 그치기만 기다리는 그 자체가 더 고통스러웠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이 막막함,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외로웠다.
나는 살롱에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가구가 없어 넓고 헐렁한 살롱은 마치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는듯하여 당장 바람에 날려갈 것만 같아 더 무서웠다. 하는 수 없이 작은 방 한쪽 구석에 콕 박혀 양쪽 귀를 막고, 두 눈은 감은채 안쪽 벽을 향하여 새우처럼 쪼그려 누웠다. 안 보고 안 듣고 생각조차도 안 하고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러나 이 가당찮은 상황이 자는 동안 어떤 위험에 닥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잠은커녕 진정되지 않는 마음으로 가만히 누워 있을 수조차 없었다. 나는 누웠다 일어났다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모른다. 겁에 질린 몸도, 집안 공기도 무거운 정적만이 흐른다.
제발 이 위협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남편과 내 고민을 나누고도 싶었지만, 혹시 내가 말을 내뱉는 순간, 내 말소리가 지붕을 통째 날릴 것만 같아 그마저 숨을 죽인 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심난한 속사정을 터 놓지도 못하고 자폐성 경향처럼 자꾸자꾸 구석으로만 기어든다.
두려움이나 공포심이 클수록 말이나 외침은 오히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슬픔이 너무 크고 깊으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 더 흘러 지붕 두드리는 소리가 멈추고 펄렁대던 나무들도 살랑거리더니 바람은 서서히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완전히 떠났는지 삽시간 잠잠해졌다.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긴 호흡과 동시에 서둘러 밖으로 나가 지붕부터 살펴보았다. 모서리 함석 부분이 바람을 정면으로 맞아 구겨진 종이처럼 찌그려진 채 들고일어났다. 이 나사 빠진 함석이 바람에 덜컹거리며 지붕을 내리쳤던 그 몹쓸 소리의 원인이었다. 지붕이 날아갈 듯 안에서 들리던 소리에 비하면 파손의 범위는 크지가 않았다.
활짝 펼친 날개가 늘 생기 찼던 코코넛 나무, 바람에 찢긴 이파리가 헤진 헝겊처럼 축 쳐져 볼품없고, 이미 잎이 다 문드러진 다른 나무들도 북반구 겨울나무처럼 민둥머리 처참한 형세다.
한숨을 돌린 우리는 마당을 한 바퀴 돌아 집안팎의 사정을 살펴보았다. 집 모퉁이에 쌓여있던 함석들은 바람에 날려 아래 언덕에서 처박혀 있고, 길가 서 있던 망고나무가 뿌리째 뽑혀 길을 막고 엎어져 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온 윗집 마그리뜨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안전함에 격려와 위안을 나눈다. 그동안의 두려움도 달래어 본다.
푸투나 원주민 역시 우리 같은 심정으로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연대의식을 느낀 나는 아까의 외로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긴장된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또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아 떠나지를 못했는지 가다가 되돌아왔다. 우리도 각자의 유일한 피신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바람의 격렬한 작용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침묵은 깊어지고, 저항력도 떨어지면서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전 우리가 처음 보는 사이클론 위력 앞에서 형언할 수 없이 자연의 장엄함에 반해 인간의 무력감을 느끼다가 잠이 들었다.
그제 오후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했던 바람은 간밤에는 더욱이 맹렬했다. 사이클론은 만 24시간을 고스란히 이 섬에 머물다 오후 중반 무렵 되어서야 수많은 재해를 남기고는 어디론가 홀연히 떠났다. 섬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붉은색으로 물든 가까운 바다, 바닥에 늘어져 나뒹구는 전신줄, 전통가옥 초가지붕들은 너덜너덜한 넝마 같았다. 서까래가 내려앉아 헐겁게 숭숭 구멍 뚫린 가옥들이 곳곳에 보이고, 우리 집 지붕도 어제보다 더 많은 나사못이 달아났고, 윗집 마그리뜨네 지붕 한쪽 귀퉁이도 내려앉았다.
찢기고 쓰러진 나무들 가운데서 가장 잔인한 모습은 코코넛 나무와 망고나무다. 짙고 무성한 숲을 자랑하던 망고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지고, 코코넛 나무도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도로 곳곳이 푹푹 파여 침몰된 포장 위로 붉은 진흙더미와 상처 받은 나무들이 길을 막고 나뒹군다. 이 비참한 형국에서 공기만큼은 신선하고 언제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 잔인하도록 맑고 고요했다.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장도 볼 겸 슈퍼가 있는 중심가로 나갔다. 굳이 친구 집을 찾지 않아도 슈퍼마켓에 나온 파파라니 친구들이 같은 마음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한결같이 이런 바람의 위력은 본 적이 없다는 말과, 원주민들 또한 몇십 년 동안 보지 못한 강한 사이클론이라고도 말한다. 풍속이 240킬로 미터라고도 누군가 말하고, 누구는 사이클론이 너무 오래 머문 탓에 더 큰 재앙을 낳았다고도 했다.
그렇게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데, 원주민 남녀들이 지프차 뒷칸에 올라 공중으로 해맑은 미소를 날리며 행진하듯 천천히 달리고 있다. 사이클론이 머문 동안 그들은 집안에서 지루함과 두려움을 달래며 만든 생화 목걸이를 두르고, 하얀 티아레 한송이를 귓등에 꽂고서는 거리로 나왔다. 젊은 여성들은 까만 긴 머리를 뒤로 풀어헤쳐 가볍게 바람에 날리며, 미소 짓는 환한 자태가 마치 하늘의 선물 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웠다. 악몽 같았던 사이클론도 그들에게는 이미 과거이며, 오직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환희의 미소였다. 따라서 자신의 안전함과, 존재함을 알리는 동시에 신의 은총에 감사하는 생명의 향기이고 충만된 기쁨이다. 이 풍경은 사이클론 토마와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또한 도시인들처럼 피해에 대한 불평불만, 무의미한 투정보다는 고통마저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그들, 지금 자신의 존재에 만족하고 충실했다. 이것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인간의 의지와 사이클론보다도 더 강렬한 생명의 아름다움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힘든 고난을 겪고 일어선 인간이나 자연은 더 강해진다. 그리고 더 숭고한 아름다운 내면의 향기가 풍겨 난다. 푸투나 섬, 그리고 푸투나 사람들처럼.
에필로그 : 우리가 푸투나 섬에 도착해서 얼마 되지 않아 사이클론을 맞았다. 그리고 거주 마지막 해, 사이클론 소식을 듣고, 서둘러 섬을 떠났다. 결국 우리는 남태평양을 벗어나지 못하고 피지섬에서 사이클론을 만났다. 이틀 동안 꼼짝없이 발이 묶여 호텔에서 사이클론의 재앙을 다시 목격했다. 이 두 번째 마주친 사이클론은 이미 한 번의 익숙된 경험,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있어서 무섭다거나 공포심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