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문명에서 얻은 향기와 낭만

10. 푸투나 섬

by 다나 김선자



사이클론 토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크고 작은 여러 장, 단점이 다분하게 생겨났다. 우리를 포함한 섬사람들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섬에서는 우선 그가 두고 간 흔적들을 지우고 복원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공공설비나 가옥은 복구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누메아나 본국에서 와야 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따라서 전기나 수돗물이 단절되어 섬사람들 모두가 옛 원시적인 삶으로 되돌아 갔다. 토마가 섬 원주민들의 주식인 프리 아 빵, 토란, 바나나, 코코넛을 절단 내거나 삼켜버려 식량부족 현상까지 나타났다. 쌀과 캔 종류가 본국에서 지원되어 오기도 했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아랫집 마그리따가 우리 몫으로 배분되었다며 들고 온 쌀에서는 묵은 냄새가 났고, 내 까다로운 입으로 도저히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 다음날 살며시 되돌려 주었다. 어차피 우리가 식량을 피해 입은 것도 아니며, 사실 우리보다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는 게 옳은 일이었다.


하루는 남편과 뒷산에 산책을 나갔다가 망고나무 아래서 박쥐 사냥하는 열두세 살 남짓한 두 소년과 원주민 여성을 만났다. 그들은 사이클론에 다행히 버틴 키 작은 망고나무에서 잠자는 박쥐를 잡고 있었다. 박쥐는 숲이 많은 조용한 망고나무를 좋아한다. 그리고 박쥐들은 망고가 채 익기도 전에 잽싸게 이빨로 갈아놓는 바람에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맛보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도 그들의 박쥐 사냥에 호기심이 잔뜩 생겨나 가던 길을 멈춰 서서 함께 지켜보았다.

소년이 던진 돌팔매질에 박쥐가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가벼운 그러나 날렵한 제스처로 정조준된, 그의 능숙한 돌팔매질 기술에 감탄하면서 우리는 응원과 더불어 성공에 찬사를 보냈다.


잡은 박쥐를 들고 가는 그들과 언덕길을 뒤따라 내려오면서, "구워서 드실 거예요, 맛이 어때요?"하고 내가 묻자, 소년의 어머니는 "예, 맛은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사이클론으로 먹을 것이 부족한 현실을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며 터벅터벅 걷는데, 갑자기 소년의 어머니가 우리에게 "박쥐 먹어 봤어요?"하고 묻는다.

우리는 "아뇨, 아직은..." 하고 답하자, "이거 드릴 테니 드실래요?"라고 한다.

"감사하지만, 다음에요"라고 우리가 정중히 거절하니, 굽기 외 다른 요리방법까지 알려준다.

우리는 그들이 애써 양식으로 잡은 박쥐를 낚아채는 것도 미안할뿐더러, 솔직히 아직은 박쥐를 먹어 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씨에 깊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집마다 식수는커녕 씻을 물도 없다. 섬에는 원래도 육지나 문명사회처럼 소독된 수돗물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바로 파이프에 연결해서 사용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은 수돗물에서 누런 흙탕물이 나오는 건 예사며, 그 물마저 자주 끊겼다. 왜냐하면 나뭇잎들이 떠내려와 계곡에 설치된 파이프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막히면 즉각 처리를 하지 않아 이틀 삼일을 그냥 수돗물 없이 지낸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영문도 모른 채 기다렸으나, 나중에 그 사실이 절박함 없는 푸투나인들의 익숙된 태만임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놀랄 것도, 이상할 것도 없고, 따라서 아쉬움도, 불편함도 크게 못 느끼는 듯했다.

수돗물은 우리만 필요하고 급할 뿐이지, 그들에게는 나오면 좋고 아니래도 불평불만은 없었다. 우리처럼 물을 많이 사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샤워 정도는 계곡에 직접 가서 하기도, 음식물을 위한 물은 집집마다 지프차가 있어 샘터에서 물통에 받아와 쓰기도 했다. 반면, 우리는 지프차도 아니고, 하루 적어도 두세 번 많게는 서너 번 샤워를 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절실했다. 수시로 샤워를 하지 않으면 땀냄새를 맡은 모기들이 마치 내 몸을 사냥감으로 여겨 극성을 부린다.

평소도 이런 상황인데, 사이클론 토마가 파이프까지 완전히 훼손해 놓았으니, 단수는 물론, 복구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만다행, 토마가 모기유충까지 데리고 떠났는지 모기들의 활동도 월등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사이클론이 지나간 직후, 아랫집 기아리끼 댁에서 바닷가 곳곳에 있는 원천수를 알려주었다. 그 원천수에서 식수를 떠 오기도, 밤마다 목욕을 하러 다니기도, 낮에는 빨랫감을 들고 흐르는 원천수 빨래터로 나갔다. 이곳은 푸투나 원주민들만이 살아오면서 터득한 관찰의 장이다.

우리가 수시로 원천수를 퍼다 오르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덕길이 빗물에 야무지게 씻기고 찢겨 움푹움푹 파헤쳐진 바닥에서 시멘트나 흙은 보이지 않고 불쑥불쑥 돌덩이만 솟아나 있다. 그래서 우리 소형 기아차가 비틀비틀거리며 덜커덩 돌에 부딪칠 때마다 우리는 이러다 차가 주저앉을까 끔찍끔찍 놀랄 정도였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땀내 나는 세탁물을 들고 빨래터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물이 흘러가는 양쪽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며 빨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도착해서 자리 나오기를 엉거주춤 기다리며 서 있는데, 원주민 누군가가 "여기 앉아서 씻어요"라며 자신의 엉덩이를 움직여 틈을 내어준다. 나는 고맙다며 끼어 앉아 비누질을 하고, 남편은 멀찍이서 헹굼질을 했다.

열심히 빨래를 하고 있는데, 물을 길어 나온 파파라니 중년 여성이 이미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 친근하게 말을 건다. 역시 이 작은 섬에서 소문만큼 빠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친구가 되었고, 그녀는 식사자리에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다.

이렇게 빨래터는 푸투나의 소식을 듣기도 인정을 나누기도 사교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다.

내 어릴 적, 시골집 뒤 냇가 빨래터에서 재잘거리던 아낙네들 틈 사이에 끼어 방망이질하던 생각까지 나면서, 비록 수돗물로 샤워도 못하고 세탁기를 돌릴 수는 없지만, 섬사람들 삶의 분위기만큼은 온정이 넘치고 따뜻했다.

모두가 같은 처지에 놓인 연대의식과 진정한 마음으로 현실적 고통을 함께 나누는 모습은 사이클론이 두고 간 좋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일부 설비 재료가 도착해서 중심가부터 섬 좌우측 동시에 차례대로 인터넷 설치 작업이 시작됐다. 우리 집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여러 날이 걸릴 것이다.

모두가 섬 외부와 단절된 소식을 전하기에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중심가 아파트 사는 미리암이 자신의 집에 인터넷 설치가 되었다며 와서 사용하라고 한다. 미리암은 자신의 아파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인터넷이 필요한 사람들 누구나 와서 사용하게끔 했다. 그녀가 외출할 때는 필요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아예 특정 장소에 아파트 열쇠를 두고 갔다. 이 또한 프랑스 본국이나 어느 큰 도시에서 찾아보기 드문, 사이클론이 남겨 놓은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기불 없는 섬 깜깜한 저녁 밤은 심오한 아름다움이 있다. 파도소리는 더 맑고, 하늘의 별들이 얼마나 황홀하게 빛나는지 말로써 형언할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총총한 별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이 없기에 가능했다. 문명사회가 안겨줄 수 없는 값진 자연의 보배였다.

우리의 긴 저녁 밤도 전기불 대신 달빛을 받아 마당을 어슬렁대기도, 은하수 길 따라 침묵으로 밤하늘을 관찰하며 사색에 빠지기도 했었다. 이 아름다운 밤하늘은 초라한 한낮의 모습과 힘들고 불편했던 하루를 진정시켜 모두 덮어버렸다.

그런 하루 저녁 밤, 미처 양초를 구하지 못해 서로의 윤곽마저 암흑 속으로 빠져갈 때, 우리의 대화가 공중에 날아올랐다. 순간, 남편은 좋은 아이디어를 찾았다며 작은 용기에다 식용유를 붓고서는 거기다 실을 꼬아 담가서 불을 붙였다. 그야말로 호롱불이 되었다.

그 호롱불은 그 어떤 전깃불보다 우리를 또렷하게 드러냈고,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선사해 주었다.

나는 신기해서 어떻게 이 생각을 했냐고 했더니, 남편은 어린 시절 보이 스카우트 단체에서 캠핑할 때 배운 것이란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동안 호롱불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잠기는데, 갑자기 젊은 시절 모닥불 옆에서 듣던 음악 생각이 떠오른다. 이심전심이었던지, 남편도 순간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하고 밖으로 나가더니, 자동차를 창문 앞에 세우고서 음악을 낮게 튼다. 호롱불만큼이나 잔잔히 어둠 속 흐르는 팝송과 클래식!

아, 이 얼마나 멋지고 훌륭한 분위기인가?, 이 세련된 감각과 낭만! 나는 감탄을 아니할 수 없었다. 행복한 시간, 평화롭고 아름다운 저녁! 낭만이 흐르는 향기로운 밤!


몇 날 후, 전기가 들어오고, 또 며칠이 지나 우리 집에도 인터넷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또 몇몇 날이 흐르자 우리의 이삿짐 선박이 도착했다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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