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떠올리는 결혼식

르 껴흐 들 라 포헤

by 다나 김선자



우리의 열여섯 번째 맞는 결혼기념일, 케이크를 사러 갔다. 내친김에 비오(bio, 유기농) 식료품점에도 들러 쌀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주워 담아 서둘러 점심을 먹기 위해 돌아왔다.

코비 19로 인하여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 작년 남편과 약속했던 르 껴흐 들 라 포헤(Le coeur de la forêt, 식당 이름, 직역하면 '숲의 심장')에 가서 식사도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르 껴흐 들 라 포헷은 그러니까 16년 전 우리 부부의 결혼식 피로연으로 점심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이다. 그리고 이날 이곳은 내가 프랑스 와서 처음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은 날이기도 하다.

그 이후 우리는 결혼기념일마다 가자고 했던 약속을 십육 년 동안 겨우 두세 번밖에 지키지 못했다. 매번 오늘처럼 피치 못할 이유가 생겼었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허가상 숲 속에 음식점이 있다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우리 집에서 가까운 몽모홍시 숲 속, 보기 드문 장소에, 물론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꽤나 맛있고 품격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은근히 자랑스럽게도 여긴다.

사실인즉 결혼식날 르 께흐 들 라 포헷을 가게 된 연유는 결혼 전 남편과 숲 속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레스토랑을 발견하였고, 신기방기한 호기심에서 차후에 꼭 한번 와 봐야지 했었는데, 마침내 우리 결혼식날 가게 된 것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시부모님께서 우리 결혼식 축하 선물로, 결혼식에 참석한 모든 하객들을 이 레스토랑에 초대했던 것이다.

물론 양쪽 하객이라고 해봐야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시부모님과 남편의 형님, 남편 쪽 증인으로 친구 프레드와 내 증인이었던 혜윤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굳이 참석코자 원하던 윤경, 제롬 커플, 합산 아홉 명이 전부다. 솔직히 우리는 증인만 참석한 가운데 더 간소하고 조촐하게 치르고도 싶었었다.


프랑스에서 공식적 결혼식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신랑 신부 양쪽 증인이 참석하는 게 필수 불가결이다. 그리고 필히 시청에서 시장이나 부시장의 주례 하에 이루어져야 하며, 날짜 역시 시청과 조율하여 정하게 된다. 결혼식은 시장의 혼인 선언과 동시에 서명 날인, 마찬가지 양쪽 증인도 서명 함으로써 비로소 혼례는 법적 효력이 생긴다. 그리고 이 날 리브레 드 파미르(livret de famille)라는 가족 수첩을 받는다. 여기에 부부는 물론 자녀가 태어나면 출생 연도를 비롯한 신분을 기록하여, 여권이나 주민등록증과 같은 행정상 공식 가족관계 증명서로서 평생 잘 보관해야 한다.


결혼식날 일찍 감치 우리 집에 하객으로 모인 가족과 친구들은 그들이 선물로 가져온 꽃 향기 속에 묻혀서 우리의 화촉지전에 앞서 샴페인 잔을 들고 우선 간단하게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서는 자동차로 다 함께 5분도 걸리지 않는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예식장이라고 해봐야 꽃 한 송이 없는 작은 살롱에 이십여 명 앉을 수 있는 의자와 단상에 놓인 테이블이 고작이었다. 어슴푸레한 기억이지만 강단 중앙 벽면에 당시 프랑스 대통령 사진과 국기가 꽂혀 있었던 것도 같다.

우리는 부시장 앞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느냐'라는 의례적인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 후 준비한 동그란 얇은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고서는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바람 지나듯 휘익 얼떨결에 혼인식이 끝났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지금껏 결혼 앨범은커녕 변변한 사진도 없다.

그리고는 미리 예약해둔 르 께흐 들 라 포헤 레스토랑으로 갔었다.


숲 속 나무들 사이, 좁다랗게 난 길을 조금만 따라 들어가면 느닷없이 하늘이 뻥 뚫리면서 텅 빈 공간과 활짝 열려있는 대문 안 마당 주차장이 보인다. 주변은 온통 공중으로 뻗친 울창한 나무가 높은 성벽처럼 경계를 만든 가운데 마치 숲 속 동화에 나오는 집 굴뚝에서 겨울 운치를 더하는 뽀얀 연기가 풀풀 올라 따스한 온기를 느끼게 했다. 아마도 예전에 숲지기가 살던 곳이라 여겨지는 건물이다.

우리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우리의 외투를 하나하나 받아 걸어주는 친절한 안내인과 손님을 맞이하는 고상하고 품격 있는 여 주인장, 그들은 우리를 넓은 살롱 가장자리 창가 아홉 개 의자가 잘 배치된 긴 테이블로 안내했다. 빳빳하게 잘 다림질된 하얀 식탁보 위에 가지런히 배열된 고급스러운 레 꾸베흐(les couverts, 스푼, 나이프, 포크 등 식기), 그리고 세련되게 접힌 세흐비에트(serviettes, 냅킨)가 화사한 때깔로 우리들을 환영하며 우아하고 보기 좋게 놓여있었다.

무엇보다 한쪽 벽면의 커다란 쉬미네(cheminée, 벽난로)에서 굵고 마른 장작들이 진홍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이 세찬 불길의 훈훈한 열기가 내 몸을 사르륵 녹여주었다. 나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얇게 갖춰 입은 코르사주(corsage, 블라우스) 차림의 예복 탓에 온몸이 오싹하게 얼어 있었다. 털 망토를 몸에 두르고는 있었지만 겨울의 습한 추위까지 데워줄 만큼 충분치가 못했다. 그런데 이 온기와 더불어 조용하고 품위 있는 가족적인 정겨운 실내 분위기가 우리의 정식 부부 서약을 맺음에 있어 한껏 너그러이 반갑게 끌어안았다.

이렇게 우리의 늦깎이 결혼식은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전혀 초라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숲 속의 뜨거운 심장, 르 껴흐 들 라 포헷이 있어서 더욱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얼마 전 서울 사는 친구가 딸 결혼식 사진을 보내주었다. 신랑 신부들에게 일생 가장 아름다운 날이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선남선녀가 하늘에만 사는 게 아니라 그들은 지상의 아름다운 선남선녀들이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한국에서 속속 날아오는 결혼사진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모두가 한 편의 영화 속 장면처럼 화려하고 멋진 모습들, 어쩌면 한결같이 드라마 속 주인공 같았다. 따라서 나는 진정으로 바라컨데, 모두들 현실적인 삶에서도 사진 못지않게 아름다운 주인공이기를 그리고 거듭 거듭나기를!

나는 그러면서 구태여 비교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차이로 견주어 보는 혼례식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내 결혼식도 새삼 회상하게 되었다. 이곳 프랑스의 결혼식 관습도 함께 떠올리며.


프랑스에도 어느 나라와 다를 바 없이 천차만별 결혼식이 열리지만 대체적으로 친지끼리만 모여서 간소하게 올리는 경향이다. 시청 결혼식은 당연한 법적 절차로 거쳐야 하지만, 때로는 신앙 깊은 젊은 커플들이 추가로 성당에서 신부님 아래 식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이나 공공장소를 임대하거나 성 같은 넓은 공간 또는 센강의 배를 빌리기도, 아니면 자신의 넓은 정원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추어 당일, 또는 1박 2일 동안 피로연을 열기도 한다. 또한 결혼식이 끝나면 리본이나 풍선으로 장식한 자동차를 타고 친구들과 경적을 울리며 동네를 돌면서 결혼식을 알리는 것도 이들의 전통적 풍습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조용히 치르는 결혼식도 적지 않다.

프랑스에서는 많은 이들이 결혼 전 부부로써 동거생활을 하거나, 이미 나이가 지극이 든 이후에 식을 올리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약식으로 치르는 게 허다하다. 어떤 경우는 단출하고 은밀하게 신랑 신부와 양쪽 증인 네 사람만 참석하기도, 또 누구는 자신의 옷장에서 가장 단정한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나란히 두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시청으로 달려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들었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프랑스인들의 강한 개인주의적 사고방식과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에서 옛 전통이 변형되어 형식적, 의례적인 것보다는 이토록 새로운 관례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리라.


남편과 나는 둘 다 형식적인 의례나 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늦깎이 결혼에, 내 경우 세상을 벌써 떠나신 부모님도 참석치 못할 터인데, 멀리 있는 가족들에게까지 번거롭고 부담되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으므로 간소한 혼례는 우리에게 아주 적절하였다. 따라서 형식을 중요시하지 않는 프랑스 결혼식은 내 처지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렇지만 내 남편은 유학생 신분인 내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의 깊은 배려심으로 드레스까지는 아닐지언정 결혼식에 입을 세련되고 우아한 파티복과 구두와 반지를 장만해 주었고, 신혼살림 같은 것은 애당초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큼직한 가짜 진주 장식 귀걸이를 빌려 주셨고, 혜윤이가 결혼식날 아침 일찍 와서 머리손질까지 해 주었다. 보석 공부를 마치고 프랑스 보석회사 다니던 혜윤 덕분에 우리는 그녀가 직접 만든 18K 둥근 결혼반지를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 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필히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하게 했으나 기필코 하객들이 들고 온 백합과 수많은 송이의 큼직한 장미꽃들은 우리 집 살롱에서 화촉을 밝히듯 환히 피어나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은풍하여 활짝 미소 지었다. 그렇게 우리 결혼식을 풍요롭게도 빛냈었다.

그리고 아직도 내 심장에 깊이 새겨져 있는 그곳, 르 껴흐 들 라 포헷으로 우리 모두를 시부모님께서 초대해 주셨다.


결혼기념일인 오늘, 비록 숲 속의 심장에서 축배를 들지는 못하지만, 대신 포근하고 안락한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자축하며 케이크를 자르기로 했다. 우리의 삶에 희미하나 뚜렷한 빛을 밝히어서 언제나 화촉지전처럼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기를 살며시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내년 이날은 제발 르 껴흐 들 라 포헤 의 쉬미네가 뿜어내는 세찬 불꽃을 맞이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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