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에 육개장

by 다나 김선자



르 헤베이용(le réveillon, 성탄절 전날 밤), 결국은 육개장을 끓이기로 했다.

크리스마스이브와 육개장, 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의 단어, 한국이라면 우습거나 어색하지도 또한 끓이거나 말거나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겠지만, 여기는 다름 아닌 프랑스다.

성탄절은 우리의 추석이나 설날과 다를 바 없는 전통적인 명절이자 대축일이다. 그런데 이 한밤중에 난데없이 나 아닌 가족 누구도 먹지 못하는 고춧가루가 듬뿍 들어가는 육개장이라니... 그것도 내일 시댁 식구를 초대하여 처음으로 우리 집에서 성탄절 만찬을 하기로 되었잖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부랴부랴 육개장 레시피를 찾는 나, 참 어이없다 여기면서도 힘겹게 육개장을 끓이는 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러니하다.


얼마 전부터 나는 육개장이 무지 먹고 싶었다. 내 육체적 에너지가 서서히 고갈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햇볕을 거의 볼 수 없는 겨울철이면 몸에 양기가 부족해서인지 젊은 시절이나 어릴 적 먹던 한국음식을 더 찾게 된다. 특히 밤이 긴 이맘때에는 평소 잘 먹지도 못하고, 안 먹던 매콤한 요리가 유독 먹고 싶어 진다. 거기다 한국 드라마 속에서 육개장 먹는 모습을 본 후, 한층 더 당기는 구미를 애써 참느라 며칠간 무던히도 힘들었다.

그리고 또한 성탄절, 연말연시, 에피파니 등의 축일을 보내면서 프랑스 음식에 과식과 과음으로 지친 위장은 어김없이 한국음식을 요구해 올 터이다. 아니 이미 부르고 있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어떤 상황이던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해 두는 게 현명한 처사다. 그렇지 않고 내가 몸져눕기라도 하면 한국음식을 내내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눈물만 삼킬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음식, 이 향수가 담긴 고국의 맛은 내가 파란 눈 남편과 프랑스에 살면서 가장 힘든 장애물이며, 세월이 갈수록 점점 극복하기 어려운 경우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벌써 겪은 지가 오래되어 희미하나 그 윤곽만은 여전히 뚜렷한 에피소드를 꺼내어 보면, 지금, 성탄 전야에 굳이 내가 육개장을 끓이겠다고 수선을 떠는 이유가 조금은 설명되지 않을까 싶다.


결혼 초기의 어느 날, 나는 감기몸살로 인해 입맛이 가셔 당연히 먹지도 못한 채 기력마저 떨어져서 며칠 동안을 몸져누워 지냈다.

그런데 남편은 아픈 나를 보고서 고심 끝에, 아무런 기척도 없이 나가더니 겨우 사들고 온 것이 바로 쀼헤 드 뽐 드 떼흐(purée de pommes de terre, 으깬 감자)와 쀼헤 드 셀르리(purée de céleri, 으깬 셀르리) 그리고 잠봉(jambon, 훈제한 돼지 허벅지살)이었다.

그는 매우 자랑스럽게 이 음식들을 내 앞에다 높이 치켜들고 "이거 좀 볼래? 내가 금방 차려올게, 먹어야 기운도 차리겠지?" 이러지 않은가! 그것도 파란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생각해도 참 대견스럽고 만족한 결정이다는 듯이 아주 흡족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반면, 나는 반가움은커녕,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만 나왔다. 한편으로는 '아, 이럴 어쩌나, 여기가 프랑스였지!' 딱하게도 하물며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점 같은걸 느꼈었다.

"내가 언제 그걸 먹겠다고 말했었냐, 아휴 느끼한 게 비위 상해 보기도 싫은데"

이상스럽게도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장봉도 너무 낯설고 징그러운 게 보기조차 싫었다. 죽은커녕 찌개나 육개장도 아닌 것이 불고기는 더욱이 아니다는 아쉬움에 더 슬펐다. 그것은 미묘하게도 덮쳐오는 진한 외로움이었고, 절망의 심연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 같은 서글픔이었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 순간 그래었다.

삽시간 풀이 죽은 남편, "너도 알다시피 내가 한국음식 만들 줄을 모르잖아... 어떡하지? 어디 가서 사 오나?" 난감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는 게 더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나중에 그의 설명을 듣고서 비로소 알게 된 뿌레와 잠봉에 얽힌 구체적 사연인즉슨, 남편은 그가 어렸을 적 아플 때마다 부모님이 사다 주신 뿌레와 잠봉을 먹었던 즐거운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의 기뻤던 추억을 상기시켜 나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선사하고 싶었단다. 그 기쁨을 먹고 나면 거뜬히 내 기운이 솟아나리라 여겼던 것이다. 비단 남편뿐 아니라, 이것은 기름기가 적으면서 부드럽고 맛이 좋아 어린이들에게 잘 먹이는 음식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각종의 죽을 먹는 것처럼.


첫 번째 사연이 있은 직후 남편은 "한국음식 만드는 법을 좀 배워둬야겠다" 스스로를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내 건강이 회복되어 평상시 상태로 완연히 돌아오면 둘 다 그때의 긴요하고 절박함은 해소되고 소강되어 그 내용은 슬며시 꼬리도 없이 까마득히 서랍 속으로 기어든다.

나 역시 '배워줘도 복잡한 요리법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릴 텐데, 헛되이 웬 시간낭비!' 하기 좋은 핑계로 가르쳐주는걸 귀찮게 여겼다. 그러다가 또다시 아파 누우면, '귀찮더라도 그때 배우게 진즉 알려줄걸' 하고서 더할 나위 없는 후회를 반복했었다.


이어서 두 번째 이야기는 습한 겨울철마다 한 번씩은 영락없이 이와 유사한 형편으로 나는 몸을 추스르지 못하게 눕는다. 이날 역시 울렁거려 뒤집어질 듯 거북한 위장 탓에 입 밖으로 음식물을 게워내고, 매스꺼워 음식도 거부하며 힘없이 누워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은, 진득하니 끓인 얼큰한 국물이라도 먹고 나면 개운해서 위장이 잠잠해질 것만 같았다. 하다못해 멀건 미역국이라도... 그렇게 지나가는 투로 말했더니, 남편은 선뜻 말한다. "내가 한번 시도해 볼게, 요리법만 알려 줘"

그리고 부엌으로 들어간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온 남편, 그의 양손에는 국자와 간장병이 각각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들려 있었다. 그것들을 내가 누워있는 침대맡에까지 들고 와서 "어느 정도 량을 넣으면 될까?" 엉거주춤 묻지 않은가.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어찌나 한심하고 기가 차던지 웃지도 울지도 못할 난처한 상황이 되어서 쓴웃음만 지어 보낸 적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이제부터라도 한국 음식 문제만큼은 해결책을 미리 준비해 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문제도 아니니까. 내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컵라면은 물론 매일 먹지는 않아도 직접 김치를 담가 둔다던지 또한 냉장고에 한국음식 한 가지 정도는 저장시켜 놓게 되었다. 특히 요즘은 프랑스에도 한국음식에 대한 경제력이 있어서인지 서서히 영역이 확장되어 어디서나 예전보다 구하기가 수월해졌다.

하루는 남편이 유명한 전문 냉동 식품점 피까르(Picard)에 장을 보러 갔다가 한국 잡채와 불고기 즉석 냉동식품을 사들고 "이게 뭔 줄 아니?" 신이 나서 내 코앞에다 들이민다. 궁여지책으로 마침내 한국음식에 대한 문제가 약간 해소되었다는 듯이!

이처럼 내 여러 경험들이 쌓여 얻고 터득한 지혜가, 점점 높아지는 한국음식의 국제적 위상처럼, 따라서 내가 프랑스 삶에 적응해 나가는 만큼 삶도 그렇게 편리하게 변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인스턴트식품이 내가 직접 만든 음식에 비길 수야 있을까? 그리하여 내가 지금 이 밤중에 육개장을 끓이겠다고 마늘냄새를 푹푹 날리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느닷없이 고추기름과 고사리가 없다는 생각에 이른다. 인터넷에서 고추기름 쉽게 만드는 방법을 찾았지만, 번거롭다. 시간도 너무 늦었다. 서울 사는 동창 언니랑 카톡을 주고받다가 때마침 전해주는 조언에 따라, 없는 것은 빼고 있는 재료만 넣기로 했다. 작년 파리 시내 한국식당에서 먹은 고사리 없는 육개장도 역시 맛있었다는데 용기를 덧붙여, 무까지 넣고 보니 육개장인지 소고깃국인지 정체불명 나만의 육개장이 그럴싸하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다.

이 또한 무엇을 넣어도 한국음식만의 환상적인 조화의 비결이지 않은가! 비빔밥을 비롯한 탕 종류에서 두드려지게 나타나는 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특유의 깊은 맛, 버릴 것 없이, 남은 재료만으로도 멋지고 훌륭하게 범벅되는 서민적인 풍부함, 맛과 영양까지 골고루 들어있다는 이 지혜로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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