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 집 1
(들어가며) 지난해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오랫동안 기다린 직장에 들어갔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내 퇴사를 하였다. 그리고 집을 지었다.
집을 지었다는 말이 아직도 어색하다. 그래도 가진 것도 적고 직장도 변변찮던 내가 어쩌다 보니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물론 앞으로 갚아야 할 돈도, 그만큼 빚진 마음도 많다.
나를 닮은 이 작은 집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어떻게 지었는지 기록해 보았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처음부터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10년 넘게 이어지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올 때는 그저 바닷가 마을에 작고 낡은 집을 얻어서 수리해서 살 작정이었다. 안정적인 임대주택과 직장이 있는 서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온 것은 큰 결심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긴 지가 언제인데 서울생활은 여전히 나에게 맞지 않는 속옷처럼 답답화고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서울은 내가 살기에는 크고 복잡하고, 사람도 물건도 너무나 많았다. 많다는 것은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것은 누군가의, 아니 10년 전의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그 많고 다양함을 내가 누리고 있나,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 사는 내내 미열처럼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진다거나 직장에서 잘렸다거나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계기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삶의 전환이 되는 계기를.
어디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지만 쉽게 생각하며 오히려 간단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 보니 그냥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천천히 늙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지도를 펴놓고 대략적인 위치와 지형을 살펴보았다. 바다는 집의 동쪽이나 남쪽으로 있으면 좋겠고 개발가능성이 적은, 조용한 곳이면 좋겠다. 원래 살던 면 지역은 익숙한 곳이지만 앞 바다를 매립하여 신도시가 드러서면서 개발되어고 땅값도 너무 많이 올라서 제외했고, 또 다른 면 지역과 지금은 섬이 된 읍 지역을 꼽아 보았다가 관광객이 너무 많이 다니는 곳은 싫어 제외하였다. 결국 지도에 남은 지역은 많지 않았다.
건너 건너 아는 부동산 중개사에게 원하는 지역과 조건을 이야기해 놓고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천천히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이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연락이 왔다. 바다와 접하는 땅끝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이라고 한다. 집이 많이 작고 낡아 소개할지 말지 고민이었는데 원하는 조건에 맞는 곳이라서 추천한다는데 느낌 나쁘지 않았다.
직접 방문해 보니 집터와 집의 기운이 좋았다. 집은 기와지붕의 웃채와 군불을 때는 아랫채로 나뉘어 있었고 본 건물에 달려 있는 화장실과 욕실이 있었다. 마당은 시멘트로 덮여 있었지만 감나무 한 그루가 가운데를 지키고 있어 상막하지 않았다. 집터는 바다가 동쪽으로 보이는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낡은 돌담이 집 아래를 받치고 있었다. 50평이 조금 못된다는 집터에 많은 것이 아기자기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른 곳을 더 알아보고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들었지만 이만한 풍경에 이만한 크기를 가진 집터를 구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격을 조금 낮추어 부르고 계약 의사를 밝혔다. 집주인이 조금 고민해 보더니 다시 가격을 제시했고, 그 사이 어디에선가 가격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막상 계약을 하고 두세 번 더 집을 방문을 해보니 원래 계획대로 이 집을 고쳐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근 2~3년 정도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하는데 웃채 지붕에서 물이 새는지 천정과 벽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었다. 바람을 막으려고 그런 건지 덧대어 지은 낮은 건축물 때문에 집 뒤편에는 햇볕이 들지 않았다. 건너 건너 아는 건축사와 목수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돈을 많이 들여 다시 짓다시피 고쳐서 살 수는 있지만 단열과 채광의 근본적인 문제는 고칠 수 없겠다는 답을 얻었다.
역시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해서 이런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고 자책을 하며 계약금을 날리더라도 이 곳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알아보아야 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지만 왠지 그러고 싶진 않았다. 통영 사람이라 바다 풍광에 의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나의 마음도 머물게 할 만큼 풍경이 좋았고, 이미 길과 기반시설이 닦아져 있는 작은 대지라는 점에 포기하기에는 아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터에 나만의 작은 집을 지어보기로 했다.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약속한 날짜에 맞게 고모-론(고모의 돈을 빌렸다.)으로 당긴 돈으로 잔금을 치렀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땅과 집을 소유하는 것은 남의 일 혹은 다음 생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덜컥 부동산의 소유주가 되어 있었다. 취득세를 납부하고 이름도 낯선 등기권리증을 받았을 때는 인생의 큰일이 이렇게 슬렁슬렁 쉬이도 일어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땅과 집은 온전한 나의 소유라고 하기에는 앞으로 갚아야 할 것도, 해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래도 왠지 매일매일 이 풍경을 보고 살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