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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대한 생각 정리하기

바닷마을 작은 집 2

by 선주

새로 집을 짓기로 했으니 어떤 집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당장 급할 것은 없다는 마음으로 집터를 묵히며 여러 번 가 보았다. 어떤 날은 오전에, 어떤 날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어떤 날은 해가 기울 때 갔다. 흐린 날에도 한번, 맑은 날에도 한번 갔다. 먹이를 찾는 길고양이 마냥 집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대지의 경계가 반듯하지 않고, 동쪽과 동북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제일 아름다우며 오후보다는 오전에 햇볕이 풍부하게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쪽과 북쪽으로 석축이 있고, 서쪽으로는 대나무밭이 접해 있으며 북쪽 방향으로 옆집 건물과 가까이 붙어 있으므로 공간을 구성할 때 이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집터에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우선 내가 원하는 공간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그동안 고민한 것을 쭉 써내려 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적어내려니 쉽지 않았다. 구체적인 공간을 생각하기에 앞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곳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돌아보기로 했다. 공간은 그곳을 구성한 존재를 닮고, 그곳에 머무는 존재는 공간의 영향을 받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아야 내가 원하는 공간을 그릴 수 있다. (물론 나와 함께 살 강아지도 고려해야 한다.)

먼저 우리 집의 가구 구성원(강아지와 인간)의 행동 특성과 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인간(나)은 혼자 살고,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니멀리스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는 데 필요한 물건이 적은 편이다. 단, 친구는 좀 있어서 더러 손님이 찾아오면 내어줄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짐 중에 책이 많아서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고 입식보다는 좌식 생활에 익숙하다. 추위에 취약하지만 나름 생태주의자라는 지향을 가지고 있어 난방을 펑펑 돌리는 데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애초에 단열이 잘 되는 공간이 필요하다. 춥지 않을 때는 밖에 있는 것, 이것 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과 밖이 이어지는 공간과 텃밭이 있어야 한다.

나와 함께 살 강아지는 여러 가지 냄새를 맡는다거나 물어뜯는다거나 땅을 파는 행동을 좋아해서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서는 집안 장식이나 가구를 최소화해야 한다. 먹이나 기타 용품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도 준비해 두어야 하고, 마당에는 강아지(대형견이다)가 뛸 수 있는 공간과 더위를 많이 타므로 여름에 햇볕을 피해 쉴 수 있는 반쯤 폐쇄된 공간이 필요하다. 또 오가는 사람들과 강아지를 위한 높고 튼튼한 담장도 있어야 한다.

이런 강아지와 인간이 주거할 곳이라면 꼭 필요한 공간만 넣은 구조적으로 심플하면서도 에너지 효율이 좋은 작은 집과 넓은 마당이 좋겠다 싶었다. 우리의 집에는 나의 철학과 가치관, 지향, 그리고 나의 현실이 담길 것이다. 나는 작고 소박하며 독립적인 삶, 생태계에 책임감 있는 삶을 지향하고 앞으로도 그런 지향을 가지고 살고 싶다.


그러나 꿈에 부풀어 이런 집을 짓고 싶다는 것을 주위에 이야기했을 때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나중을 생각해서 (그러니까 결혼을 해서 구성원이 많아지거나 되팔 때를 대비해서) 너무 개성 있는 공간을 설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집장사를 한다는 것도 아닌데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한국사회에서 집은 주거용이라기보다 투자용에 가까운 자산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회과학서적에서만 보던 문제적(!) 현상이 이렇게 일반 사람들의 생각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집은 상품이고, 그러니 상품을 생산할 때는 마땅히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도로를 돌아다니는 차 중 다수가 흰색인 이유가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이어서 흰색을 각별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되팔 때 중고차 값이 가장 높은 색, 그러니까 무난한 색이 흰색이기 때문인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이른바 '으른'의 논리였다. 그렇지만 나는 취향 없는 무난한 '으른'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충고를 하는 사람들은 내가 언젠가는 벗어나야 하는 임시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그들의 머릿속에서 나는 나중에 시집도 가야 하고, 아이도 낳아야 하고, 형편이 나아지면 이 집을 팔고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냥 지금 이대로가 좋다. 나는 누군가가, 혹은 사회가 마련해 놓은 이상적인 모델을 완성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아이가 없어도, 작은 집에 살아도 미치게 행복하지는 못하더라도 잘 살 수 있다.


그들은 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며 나중을 대비해야 한다고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래, 의도는 안다. 나중에 혼자 살다 큰 일을 당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적고, 그래서 도움을 받을 것은 배우자나 자식 혹은 자산밖에 없다는 사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일찍이 정신을 차리고 미래의 불행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은 지금을 살기도 어렵다. 그렇게 나중을 생각하다 보면 문제가 정말 끝이 없다. 그냥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에 가장 가까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내가 담긴, 내가 원하는 공간을 계속 구체화시켜 보기로 했다.


웃채 지붕 위에 고양이 가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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