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3
나는 작고 생태적인 집을 짓고 싶었다.
작은 집은 말 그대로 평수가 넓지 않은 집을 말한다. 서울에서 살던 임대주택 아파트가 대략 13평이었는데 혼자 살기에 충분하다, 오히려 좀 과하다 하고 느꼈다. 그 집은 거실 겸 큰 방 하나, 작은 주방 하나, 화장실 하나, 작은 방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작은 방 공간은 항상 놀았다. 다만 주방은 좀 넓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단독주택에는 공용주택에 있는 공용 공간과 베란다가 없을 테니 공용주택보다 조금 넓게 잡아 대략 20평 내외의 집을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의 크기는 그 정도면 적당하고, 집의 형태도 복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소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편인 데다 외벽에 굴곡이 많으면 마감이 어렵고 단열도 해치기 때문에 네모나고 깔끔한 외관의 집을 짓고 싶었다. 지붕도 나눠지지 않고 그냥 하나로 딱 떨어지는 박공지붕이면 좋겠다. 크기나 형태가 내가 원하는 공간에 가까운 집들의 사진을 찾아서 폴더로 정리해두었다.
문제는 생태적인 집이었다. 어쩌면 오래된 집을 부수고 생태적인 새 집을 짓는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노력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추위를 많이 타서 추운 집에서 살 엄두를 못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단열이 잘 되지 않는데 기름 값이 무서워 난방도 잘 못하는 낡은 주택에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 살 때 큰 마음먹고 난방을 해도 (그나마 도시가스였다.) 외풍이 드는 빌라에 살았던 기억 때문인지 추운 집에 살아야 한다는 것은 큰 형벌 같이 느껴졌다. 전셋집도 아니고 평생 살 집을 짓는 것인데 그럼 종신형을 사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지낼만한 후끈후끈한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가 바라는 수준이라는 것은 겨울에 난방을 좀 하면 18~19도 정도는 유지되는 공간이었다.
하나를 더 보태자면 적당히 환기를 하면 벽에 습기가 차지 않는 집이다. 바닷가 마을에 짓는 집이라서 습기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었다. 그래서 에너지 효율이 좋고 통풍이 잘 되며 습기에 강한 집을 짓기로 했다.
이런 집을 짓기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은 구조재였다. 어떤 재료로 집의 뼈대를 세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처음 생각한 것은 철근 콘크리트였다. 철근으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시공되는 일반적인 구조이다. 또한 비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많은 시공자를 구할 수 있는 공법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철근 콘크리트 구조는 그 집에 사는 사람에게나 지구 환경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지였다. 이건 지금껏 평생을 철근과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집에 살아보고 내린 결정이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그 외의 구조재로는 철재와 경량가 있다. 자원의 순환 면에서는 철재가 더 효율이 좋다고 하지만 열전도율이 높고,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반면 나무는 단열성도 높고 스스로 습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고 했다. 건축 비용도 철재보다 목재가 합리적이었다. 목재로 짓는 집 중에서 한옥이나 팀버 같은 중목 구조는 예산관계상 제외하고 경량 목구조의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다음으로는 단열재를 알아보았다. 경량 목구조를 이용한 집은 얇은 나무로 골조를 세운 뒤 골조 사이에 단열재를 채우고 벽체를 마감하는 방식으로 짓는다. 내가 선택할 수 단열재로는 스트로베일, ALC 블록, 셀룰로오스, 유리섬유 등이 있었다. 유리섬유가 가장 대중적인 재료이지만 일부 유리섬유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고, 시공해 보니 건강에 좋지 않은 것 같다는 목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꺼리게 되었다. ALC 블록은 습기에 약하다고 해서 재외 하였다.
두 가지를 제외하고 처음에 관심을 가진 것은 스트로베일이었다. 스트로베일은 볏짚을 가공한 것을 말하는데 논농사를 갈무리한 뒤 남은 부산물을 이용하여 만든다. 한국은 논농사가 아주 흔하므로 스트로베일은 탄소발자국이 작고 자연 회수율도 높은 친환경 소재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단위 면적당 열단열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 정도 이상의 단열 수치에 다다르기 위해서 벽체가 두꺼워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집을 짓기로 했으니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벽체를 면적으로 계산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잘 마른 볏단을 구하고 벽체에 맞게 가공하는 것도 문제였다.
그다음으로 생각해 본 것은 셀룰로오스였다. 종이를 재활용해서 만든 섬유질 단열재로 친환경 건축이 보편화된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 많이 쓰이는 단열재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소재이지만 최근 국내에서도 패시브하우스나 에너지 주택이 주목을 받으면서 시공 사례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재료비와 시공비가 비싸고, 시공을 할 수 있는 기술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유리섬유에 대해 조사해 보았더니 기존의 우려를 보완하는 친환경 제품들이 나왔다고 한다. 우선은 셀룰로오스 단열재를 시공하는 것을 일 순위로 고려해 보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유리섬유로 단열층을 채우기로 했다.
이렇게 대략적인 공간의 크기와 외관, 구조재와 단열재를 정해 보았다. 자료를 찾아보고, 책을 읽고, 문의를 하고 그러면서 결국 문제는 자본과 정보라는 생각을 했다. 취향이 반영된 공간, 일반적이지 않은 집, 친환경적인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어떤 대가(주로 돈이다.)가 필요했다. 나름 알아본다고 알아보고 내린 결정들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충분히 정보를 찾아보았나? 시공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두루 알아보았나? 혹시 또 다른 대안은 없었나? 하는 질문에 분명히 그렇다고 대답을 하기 어렵다. 다만 그때 집을 짓는 것도 삶의 모든 결정이 그러하듯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어쩌면 자기변명 같고, 또 조금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환경을 위해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는 멸종이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결국 모두 차선책이다. 잘난 인류께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차선이라는 것은 매우 치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런 치욕을 견디며 그나마 최선에 가까운 차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죄 많은 인류가 견뎌내야 할 형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이 차선의 공간은 이상이자 현실이고 앞으로 내가 짊어지고 살아내야 할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