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면 그리기

바닷마을 작은집 4

by 선주

대략적인 집의 형태를 생각해본 뒤에 나의 구상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려줄 사람을 찾았다.
사실 원래 집터를 몇 번 봐주던 건축가가 있었다. 집안사람들과 친분이 있고,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이었으나 몇 번 만나보니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성향뿐 아니라 건축 쪽으로도 경량 목구조에 대한 안전성을 의심하며 집은 곧 죽어도 콘크리트로 지어야 한다는 확고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내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관점에서 무엇이 옳은지를 말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옳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지만 이분에게 맡겨서는 내가 원하는 집을 짓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구상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철학과 마음이 맞는 건축가와 계약을 해서 구상 단계에서부터 긴밀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집 짓기에도 예산이 빠듯했다. 그래서 아름아름 물어물어 공간을 그려보기로 했다. 건축을 전공한 사촌언니와 독일 건축사무소에서 일한다는 언니의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 집의 대지 현황과 내가 원하는 공간을 정리한 파일(집의 세부 공간별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정리한 글과 그것과 가까운 공간의 사진을 찾아서 정리해 두었다.) 공유하고,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 스스로도 모순적인 것을 이야기하거나 건축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만 생각하여 한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고맙게도 나의 요구 사항을 잘 들어주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다시 물어주었다. 또 어떤 점은 어째서 어려운지, 어떤 부분이 우려되는지,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더 나은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해주었다. 의견과 지향을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의 대략적인 구조가 결정되었다. 나는 에너지 효율이 높다는 남향을 고수하였으나 남쪽으로 옆집 부속 건물이 놓여있어 생각보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았다. 반면 동향으로는 앞이 틔여 있고 동향 또한 에너지 효율이 나쁘지 않기에 동쪽으로 건물을 짓기로 했다. 전망도 좋았다. (이건 정말 잘한 일이다.) 그리고 내부 공간을 열린 공간과 닫힌 공간을 구분했다. 닫힌 공간은 내가 생활하는 사적인 공간으로 다른 곳과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어 있고, 개구부를 최소화하여 단열성을 높인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열린 공간은 방 외의 공간으로 주방과 거실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두었고, 거실 앞부분은 지붕까지 수직으로 공간을 틔웠다. 그리고 바다 방향으로 큰 창을 내었다. 이런 구성은 에너지 효율 면에서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너무 폐쇄적인 공간에서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강아지와 손님들과 공유하는 밝고 개방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20평 정도 크기의 단층 주택을 지으려 했는데 실외공간이 너무 작은 것 같아 16평 정도로 줄였다. 오랫동안 TV도, 큰 전자제품도 없이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 작은 공간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도 공간 배치가 쉽지 않았다. TV 자리나 빌트인 가전제품이 없는 공간을 구성했다. 다용도실은 아예 빼 버렸다. 이렇게 빼다 보니 손님이 왔을 때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다. 그래서 작은 2층 혹은 다락방을 만들고 계단실 아래를 수납공간으로 만들어 보았다.
필요를 최소로 줄이고, 작지만 실용적인 공간을 구성하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주택에 살면 짐이 많아지니까 혹시나 나중을 대비해서 놓을 자리를 마련해 두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과연 그럴까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화한 수납공간이 부족하지 않도록 필요를 점검하고 적은 짐을 안고 사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나에게 주는 숙제로 남겨두고 싶었다.

이렇게 공간을 대략적으로 정해놓고 경량 목조주택을 짓는 시공업체를 찾아보았다. 건너 건너 소개로 산청에서 목조주택 학교와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산청으로 귀촌하여 목조주택을 짓고 있고, 지역사회와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활동도 하고 있다고 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교적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가 만들고 싶은 작은 집이나 생태적인 주택에 대한 이해도 있는 것 같았다. 계약을 따기 위해 한 감정노동일 수 있겠지만 자신과 같은 건축업자들은 익숙한 대로, 보편적인 것을 기준으로 작업하는 경유가 많으니까 특별하게 원하는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표현해달라고 말한 점도 좋았다.
고민 끝에 그 분과 같이 도면을 그려 보았다. 내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설명과 미리 그려 놓은 도면을 전달해주었고, 대지와 예산에 맞게 현실화하는 작업을 했다. 2층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다락방을 만들기로 했다. 박공지붕 아래에 다락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 효율 면에서나 공간 활용 면에서나 괜찮은 선택이었다. 다용도실의 역할은 화장실과 계단실 아래 공간에 나누어 두기로 했다. 실외와 실내를 잇는 공간은 툇마루 같은 느낌의 데크로 정했다. 그렇게 두세 번 계획안을 수정했다. 주로 집을 더 심플하게 하는 쪽으로 수정이 되었다. 계획안에 맞게 견적도 다시 받았다. 예상보다는 높지만 해볼 만하다는 정도에 근접했을 때 최종적으로 계약을 했다.
확정된 공간안과 예산을 바탕으로 허가와 시공을 위한 도면을 그려줄 건축사를 찾아보았다. 지역의 건축사를 섭외할까 하다가 시공사 대표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적당한 사람이 있다며 추천을 해주었다. 최근 건축 부문에서 내진설계 기준이 강화되어 목조주택을 시공할 때도 내진에 대한 구조 계산이 필요한데 그런 부분도 가능한 전문가라고 했다. 추천을 믿고 설계사와도 계약을 했다.


이제 정말 집 짓기가 시작된 것 같다.


돌틈에 피어난 애기똥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공간 구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