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5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나서 내가 원하는 공간을 구체화하는 것과 동시에 농어촌지역에 집을 짓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 사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 집은 읍면동 중 면 지역에 속해 있어서 농어촌 지역으로 분류되었고, 나 또한 서울에서 고향으로 주소지를 옮긴 터라 귀촌자에 해당되었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이 많을 것 같았다.
급격한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지방의 소도시, 농어촌지역에서는 여러 지원책을 펴고 있다. 내가 사는 지자체도 인구 12만 명의 지방 소도시이자 인구 노령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지역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조선업 경기가 침체되어 노동이 가능한 인구(사실 노동은 모든 연령이 가능하다. 이것은 무엇을 노동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집약적인 노동이 가능한 사람들만 노동 가능한 인구라셈한다.)의 실업과 타 지역으로의 전출이 큰 지역 문제로 떠올랐다. 아직까지는 인구 5만 이하의 군 지역처럼 현금을 준다거나 집을 알아봐 준다거나 하는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정책은 아니더라도 나름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신청한 것은 농어촌주택개량사업이었다. 농어촌 지역의 낡은 주택을 고치거나 허물고 새로 짓는, 다른 주택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건축주를 위해 시중 금리보다 낮은 2%의 이율로 건축 자금을 대출해주는 지원책이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필요와 절차에 따라 지정 은행(농협)에 대출 신청을 하여 돈을 빌리게 되는데 정부는 시중 금리와 지원 금리의 이자 차액을 보전해 준다고 했다. 대출 한도는 신축의 경우 2억 원이지만 집의 가치와 신청자의 여신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고 한다.
건축 자금이 부족한 나에게는 단비 같은 사업이었다. 사실 나는 좀 보수적인 경제관을 가지고 있어 빚을 내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집도 절도 신용카드도 없는 내가 대출이 없다면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거저나 다름없는 이율로 돈을 빌릴 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하고 신청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자가 저렴하고, 상환 기간이 길다는 점(1년 거치 (최대) 19년 상환 또는 3년 거치 (최대) 17년 상환) 때문에 이 사업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선정이 될 수 있을지 하는 것이었다. 통영의 경우 경쟁률이 1을 넘을 때도 있다고 해서 내가 그 1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까 싶었다.
2월 경에 시청 홈페이지에 대상자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올라온다고 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가 공고를 확인한 후 시청 건축과로 가서 신청 서류를 작성하였다. 다행히 3월 중순경 대상자로 확정되었다는 공문을 등기로 받아볼 수 있었다. 확정 통보 공문과 동봉된 사업시행 지침을 꼼꼼히 읽어 보니 신청 절차가 까다롭고 대부분의 대출금은 준공 후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중도금은 3,000만 원 이하로 대출이 가능하지만 별도의 절차가 있다.) 그래도 믿을 만한 구석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신청한 것은 농어촌주택 지붕개량사업이었다. 오래된 지붕을 수리하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정책인데 윗채와 아랫채에 딸린 부속 건물 지붕에 놓인 슬레이트를 철거하기 위해 신청하였다. 시청 홈페이지에 난 공지를 확인하고 면사무소에 찾아갔다. 신분증과 철거 대상이 되는 슬레이트 지붕 사진을 가져가니 담당 공무원이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렇지만 실제 철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시청 담당과에 문의를 하였더니 경상남도에서 업체를 선정하고, 시청(환경과)에서 위탁계약을 처리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붕을 철거하고 터를 정리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지만 급할 것은 없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5월 말 경에 본격적으로 사업을 진행된다는 연락을 받았고, 6월 5일, 드디어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었다. 우리 집은 본채 건물에 석면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건축물을 증축하고 비를 가리기 위해 지붕을 덮은 부분에 석면이 있어 그 부분을 덜어냈다. 작업은 2~3시간 정도 걸렸다.
지붕에서 걷어낸 슬레이트는 시멘트에 석면을 개어 만든 것으로 화기에 강하고 가벼워 한때 건축 자재로 각광을 받아온 소재였다. 특히 1960~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농어촌지역을 현대화하는 방안 중 하나로 전통적 지붕을 개량화는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이때 값이 싼 슬레이트가 신식 지붕 자재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석면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지고, 최근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되면서 건설 부문에서 전면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한때는 널리 쓰이도록 장려되던 소재가 다른 이유로 금지된 것이다. 이 것은 한 시대의 지식은 완전한 것이 아니고, 환경이나 인체에 대한 영향력은 최대한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정부는 석면을 새롭게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더불어 그동안 사용된 석면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구제하고 기존에 사용된 석면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지원책도 마련하였다. 주택개량사업도 그런 지원책의 일환이다. 덕분에 나도 옛시대의 유물을 비용 없이 덜어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다른 복은 몰라도 살 곳을 마련하는 복은 있는 것 같다. 서울 살 때에도 단열과 방음이 되지 않는 낡은 빌라에 산 날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6년간 임대주택에 살았고, 고향에 내려와서도 또 이렇게 지원을 받으며 집을 짓게 되었다. 임대주택을 계약하던 날, 이제 드디어 국가공인 거렁뱅이가 되었다며 자조하던 게 생각난다. 또 재계약 때가 되면 아직도 조금 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래도 나를 위한 저렴하고 쾌적한 한 칸의 집이 있다는 것이 서울에서 적게 벌어먹고사는 데 물심양면으로 큰 위로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더 많은 지원과 연대가 생겨 더 많은 사람들이 쾌적한 곳에 주거하며 삶의 비참함을 조금이나마 비껴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