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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 철거하기

바닷마을 작은집 6

by 선주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낡은 집을 부숴야 한다. 당연하고도 간단한 문제인데 나에게는 아주 크고 무거운 숙제같이 느껴진다. 철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거를 하겠다는 결정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한 일인데 그 결정을 애써 받아들이려 노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지만 무언가를 부수고 없앤다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고 내키지가 않아서 정말 그래야만 했다. 잘한 결정이라고 칭찬은 못해주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고 그래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마음을 먹고 나서도 일은 간단치 않았다. 낡고 오래된 집, 내 소유의 집이라고 해서 내 마음대로 부숴 버릴 수는 없었다. 우선 나 혼자 이 큰 집을 부수고 폐기물을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니 이 일을 대신해 줄 철거업체를 알아보아야 했다. 세 군 데 업체에 위치를 알려주고 견적을 의뢰했다. 그중 한 업체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 주었다. 나머지 두 업체는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그들은 골목이 좁고 집 규모에 비해 폐기물도 많이 나올 것 같다며 곤란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어찌어찌하여 두 군데서 견적을 받았다. 문제는 적극적이던 업체의 견적이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무언가 없애고 버리려면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다른 업체에 비해 두 배 정도나 높은 금액이었다.
고민하던 차에 시공사 대표가 철거는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물어왔다.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고민이라고 하였더니 자기가 보기에 그 업체가 제시한 금액의 3분의 1만 내에도 충분히 철거를 할 수 있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다른 업체에서 이야기한 어려움(골목이라서 큰 차가 들어올 수 없다 등)을 이야기하며 정말 그런 금액으로 철거가 가능할지 물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철거 비용을 추가로 내고 철거까지 시공사에서 해 주기로 했다. 시작도 전에 걱정이 많았는데 한시름을 덜었다. 먼저 연락을 주고받던 업체에게는 미안하지만 시공을 하는 곳에서 철거까지 같이 하기로 했다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철거를 진행하기 며칠 전, 전에 생각하던 가격으로는 도저히 일이 진행이 안 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유는 내가 우려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계산해보니 처음 이야기한 가격의 두 배 가까운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확인까지 했는데 이런 법이 어딨냐고 따지려다가 철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진행하기로 했다.


업체를 선정한 뒤 시청 건축과로 가서 건축물 철거 신청을 했다. 철거는 정해진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철거를 하기 사흘 전에 해당 부서를 찾아가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철거할 것인지를 미리 신고해야 한다. 업체에서 신고를 대행해 준다고 들었는데 건축주가 직접 하는 게 제일 빠르다고 해서 직접 신청해 보았다. 소규모 축물의 경우 건축주가 직접 신청하고 철거가 가능하다고 했다. 석면 같은 유해 물질이 없는지 보고하고(나는 주택 지붕 개량사업 대상자라 이 부분에 대한 서류는 필요 없었다.) 해체 방법과 폐기물 처리에 대한 내용이 기재된 해채공사계획서를 제출했다. 이틀 뒤 신고 필증이 등기로 왔다.


철거업체를 선정하고 철거 필증을 받기까지는 여러 가지로 속을 많이 끓였는데 막상 건축물을 철거하고 필지를 정리하는 것은 이틀이면 충분했다.
내가 허문 집은 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고, 집터 가운데는 오래된 감나무가 있었다. 철거 당일 아침까지 나는 그 감나무를 옮겨 심겠다 생각했다. 그렇지만 철거를 하러 온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말렸다. 너무 오래된 나무라 옮겨 심어도 살기 힘들다고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결국엔 죽게 더라도 옮겨보았어야 하는 그때는 부정적인 말들에 휘둘려 어영부영 나무를 뽑어내었다. 겨울에 나뭇잎 하나 없이 서 있어 죽었나 했는데 봄에 기어이 새 잎을 피워내던 나무였는데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었다.
감나무 말고도 나는 집을 짓기도 전에 많은 것들에 빚을 지게 되었다. 내가 살 작은 집을 짓는데 이렇게 한 그루의 나무를 베어냈고, 더 많은 나무가 베어질 것이다. 어떤 나무는 나의 집에 터를 비켜주고, 또 어떤 나무는 토대와 벽체가 되어 주겠지. 그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자신이 없지만 잊지 않고 잘 지켜보겠다 다짐했다.


정리된 빈 터에 서니 마치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곳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기억한다. 초록색 낡은 기와지붕과 그 위에서 햇빛을 즐기던 고양이 가족을. 또 집안을 지키던 감나무 한 그루와 시멘트 틈새를 뚫고 올라와 피어난 노랗고 작은 꽃들을. 그리고 내가 오늘 그들에게 빚을 살면서 꼭 갚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이유 없이 내어주어야 한다면 내가 그들에게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임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겠다.


철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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