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터 닦기

바닷마을 작은집 9

by 선주

7월로 접어들자 본격적으로 공사가 진행되었다. 착공계를 접수한 것은 지난 달이었지만 그 사이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아직 장마철은 아닌데 날씨가 야속했다. 비가 그친 뒤 지반이 안정되기까지 다시 며칠 기다렸다가 터 닦기 작업을 시작했다.


공사 첫날, 포클레인 한 대와 세 명의 작업자가 집터에 도착했다. 우선 북쪽 경계에 남아있던 흙담을 허물었다. 아랫체의 벽체로 사용하던 부분은 허물어 내고 집터 뒷부분에 있던 흙담은 담장으로 쓰려고 남겨 두었다. 그런데 옆집에서 벽에 핀 담쟁이가 가을마다 자기 집 쪽으로 잎을 떨궈 보통 지저분한 게 아니라고 그 벽도 허물어 버리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해왔다. 단단하게 쌓은 담장이 아니어서 허물어 내었다. 집 뒤의 대나무 밭에서 집터로 넘어온 나무 가지들도 베어냈다. 그냥 두고 싶었는데 집이 드러설 자리까지 넘어와 있어서 꼭 잘라내야 했다. 땅 주인 어르신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전지 작업을 했다. 어르신은 잘 돌보지 않는 땅이니 집 짓는 사람 편할 대로 하라고 했다.

흙담 위의 덩굴식물들과 집터로 넘어온 나무의 가지를 베어낸다는 결정을 할 때 마음이 턱턱 걸렸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일을 처리하려면 빨리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떠밀리듯이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말했다.


다음으로 포클레인을 이용하여 땅을 평탄화 하는 작업을 했다. 집을 짓기 좋도록 큰 돌을 골라내고 땅을 다졌다. 고른 땅 위에는 집의 경계를 그려서 집이 드러설 위치와 대략적인 집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경계복원측량 점과 실시 도면을 비교해 가며 위치를 잡고 선을 었는데 그리고 보니 생각보다 집이 크고 빈 공간이 적었다. 텃밭도 좀 가꾸고 유실수도 몇 그루 심고, 수돗가도 만들고 강아지와 함께 야외 공간을 많이 이용하고 싶었는데 이대로라면 그럴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렇게 그려 놓은 경계 밖에 땅을 파고 관로 작업을 했다. 집으로 물이 들어오는 것은 상수도이다. 집에서 사용한 물이 빠져나가는 하수도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집터로 내린 빗물이 흘러 나가는 우수관이고, 나머지 하나는 집안에서 생긴 오폐수를 흘려보내는 오수관이다.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흘려보내는 생활하수는 오수로 나간다. 집 밖을 둘러서 우수관을 설치하고 마을 우수관으로 연결했다. 주변에 관로가 많아서 물을 흘려보내면서 마을 우수관을 찾았다. 오수관은 마을 오폐수처리장으로 가는 관으로 연결했다. 설계 상에는 정화조를 묻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마을 오폐수처리장이 내달 안에 준공될 것이라고 해서 해당 과에 문의 후 정화조를 묻지 않고 직관을 연결했다. 이미 집집마다 오수받이가 설치되어 있어 집 안에서 나오는 오수관과 연결만 하면 되었다.
예전에는 집에서 사용하는 물을 빗물을 받아서 활용한다든지 버려지는 물을 돌려쓰다가 퇴비로 만든다든지 하여 하였으나 이제는 상하수도관을 통해 처리장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나면 나와는 상관없다는 듯이 처리된다. 나는 그냥 조금의 돈만 지불하면 된다. 물론 하수도가 연결되지 전에 오폐수 처리로 인해 개인위생이 나빠지거나 하천이나 바다 등 주변 생태계가 오염되는 문제도 있었지만 이렇게 집약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 총체적으로 더 나은 것일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땅을 파고 터를 다지는 공사가 진행되자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는 길인지 일부러인지 한 번씩 둘러보고 갔다. 어떤 집을 짓는지, 누가 살 건지 등등을 묻는 끝에 꼭 평당 얼마냐는 말을 꺼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건축비는 주로 평당 얼마인지 퉁쳐서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집의 규모나 디자인, 사용하는 자재 등으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웃이 될 사람들이라지만 처음 나누는 대화에서 값을 묻는 게 불편했다.
그리고 보니 이렇게 시골 마을에 집을 지으면서 가장 걱정되는 점이 이웃과의 관계이다. 동네 사람 모두와 잘 지낼 수도 없고, 그리고 싶지도 않다. 담을 쌓고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잘 지내겠다고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다. 마주치면 인사 잘하고 멈춰 서서 안부 묻고 혹시 큰 일을 알려오면 도울 수도 있고 그렇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고 싶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텃새를 리는 사람 없다.


관로를 설치한 후 흙으로 다 덮는 되메우기 작업을 했다. 다시 평평한 땅이 되었다. 그 위에 집의 경계를 다시 잡았다. 꼼꼼하게 거리와 방향을 확인한 후 락카를 뿌려 표시하였다. 이 그림 위에 본격적으로 집을 짓기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그려놓으니 집의 대략적인 크기와 위치, 내부 구조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생각보다 집이 커서 놀랐다. 고작 16평 작은 집을 짓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넓은 땅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서 집을 짓고 그 집에 뿌리를 내리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무거웠다. 어찌 되었든 잘 지어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집터를 평탄화하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건축신고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