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12
벽체를 세운 뒤 한 일은 지붕을 올리는 것이었다. 우리 집의 지붕은 박공이다. 박공지붕은 보 양쪽으로 경사면을 붙인 것으로 책을 엎어놓은 것 같은 'ㅅ' 자 모양이다. 영어로는 게이블(Gable), 그러니까 빨간 머리 앤이 살던 그린 게이블은 초록색 박공지붕 집을 말한다. 박공지붕은 생김새가 단순하고, 솟은 부분을 다락이나 창고로 활용할 수 있어 공간 활용도가 높다. 또 지붕에 단열층을 형성하여 집안의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우리 집의 박공은 비대칭으로 남쪽의 경사면은 1층의 벽체에서, 북쪽의 경사면은 다락의 벽체에서 시작하여 중앙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지점에서 만난다. 남쪽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남쪽 경사면을 길고 완만하게 뺐다. 당장은 건축비가 빠듯해서 태양광 설치는 견적만 확인하고(태양광 보급 사업의 보조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다음으로 미루었지만 나중에라도 설치할 수 있도록 환경은 미리 만들어 두었다.
지붕의 구조를 올리기 위해 집 정면과 후면에 지지대를 세우고 동서로 길게 마룻대(Ridge board)를 걸었다. 마룻대를 올릴 때 집을 큰 탈 없이 잘 지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과 이 집에 사는 사람들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상량식을 하기도 한다는데 마룻대에 뭐라도 써 볼까 하다가 마음으로만 빌고 별다른 의식 없이 마룻대를 올렸다. 마룻대를 만드는 데는 가장 크고 두꺼운 구조재가 쓰였다.
마룻대 양쪽으로 착착 서까래(Rafter)가 걸렸다. 서까래는 지붕의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지붕 구조재이다. 서까래에도 벽체에 쓰인 것보다 넓은 목재가 사용되었다. 서까래는 갈빗대 같은 모양이었다. 마룻대와 서까래, 그리고 그 외의 부수적인 지붕 구조목을 설치하고, 남은 벽체를 마저 세우니 집의 뼈대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구조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예품 같이 아름다웠다. 이 구조재는 집안의 뼈대와 같이 중요한 것이지만 안팎으로 마감을 하기 때문에 지금 이 공정이 지나면 다시 보기 어렵다. 괜히 아쉬워서 가만히 냄새도 맡아보고, 쓰다듬어도 보았다. 좋은 향이 났다.
이렇게 구조를 완성하며 경량 목구조에 대해 한 가지 기록해두고 싶은 것이 생겼다. 집의 구조가 되는 목재는 섬유질로 구성되어 있어 주변의 습도와 온도에 따라서 수축과 팽창을 하는 가변적인 소재이다. 이 점은 어느 정도의 습도를 자연적으로 유지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한계점을 넘어가면 변형이나 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 목재가 습기에 취약한 소재라는 인식은 이런 특성에서 나온다. 경량 목조 주택을 짓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보완책을 마련했다.
우선 건축에 사용되는 목재를 함수율(재료가 함유하고 있는 수분의 비율) 19% 이하로 건조하여 유통시킨다. 보통 함수율이 25%가 넘어가면 여러 가지 균이 발생하여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28% 이상이 되면 자체적으로 수분을 배출하지 못해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고 한다. 건조된 목재는 강도가 높아지고 수축과 팽창이 적게 일어나고 균도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기준 이하로 건조된 목재를 사용하면 구조의 변형과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구조재 밖으로 OBS 합판 마감을 하고, 그 표면을 타이벡이라는 소재로 감싼다. OBS 합판은 나무 조각을 방수성 접착재로 버무린 후 넓게 펴서 가공한 판 형식의 자재이고, 타이벡은 고밀도 폴리에틸론으로 만들어진 시트지로 습기를 통과하면서도 방수 기능을 가진 소재이다. 이런 부자재를 이용하여 외부의 환경에 대한 변형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사실 7월에 공사를 시작할 때 장마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시공사에서는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구조를 완성하고 방수처리를 하면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지만 장마 전에도 간간히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릴 때마다 자재를 잘 씌워두고 단단히 대비를 한다고 했지만(나도 꼼꼼하게 확인하였다.) 그렇다고 아예 습기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마음이 쓰였지만 이 정도는 목재의 자연 조정 능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붕 마감재를 덮기로 한 날, 새벽에 비가 내렸다. 제법 많은 양이 내려 집이 걱정되었다. 가도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뭐라도 덮어놓을까 해서 가 보았더니 목수 한 분이 새벽같이 내려와 계셨다. 나만큼 우리 집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마웠다.
그날 다행히 비가 그쳐 지붕을 마감했다. 꼼꼼하게 타이백을 시공한 뒤 목수들이 "이제는 비가 와도 괜찮다." 하는 말 끝에 "그런데 이렇게 마감을 해 놓으면 오던 비도 안 온다." 농담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장 큰 걱정거리였는데 오늘은 이렇게 시시껄렁한 농담거리가 되었다는 것에 피식 웃음이 나고 마음이 놓였다. 남은 공정도 이렇게 큰 문제없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