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17
방통 작업이 마무리된 지 이틀이 지난 후 단열 작업에 들어갔다. 벽체와 지붕의 기둥 사이사이에 단열재를 채워 넣고 그 위에 합판을 덮어서 내부 벽면을 만드는 작업이다. 에너지 효율이 좋은 집을 짓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단열 기준이 강화되어서 기준을 지켜 집을 지으면 옛날처럼 외풍이 드는 일은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단열에 대해서는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 설계기준’이 마련되어 있었다. 설계 단계에서 단열 성능이 높은 집을 계획하게 하여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하여 정한 규정이라고 한다. 우리 집도 당연히 이 기준에 맞추어서 설계를 했다.
이 기준은 전국을 네 개의 지역(중부 1, 중부 2, 남부, 제주)으로 나누는데 우리 동네는 경상남도, 남부 지역에 속했다. 지역별로 연평균 기온이 달라서 단열 기준도 다르게 마련되어 있다. 단열 기준 항목은 크게 벽체, 지붕, 바닥, 개구부(창과 문)로 나뉜다. 단독주택은 단열을 하지 않는 경우 외벽을 통해서 39%, 개구부를 통해서 24%, 지붕을 통해서 19%, 바닥을 통해서 9%의 열이 손실된다고 한다. (나머지 9%의 열기는 환기를 통해 사라진다. 겨울철에 집안 온도가 떨어질까 봐 환기를 꺼리게 되는데 환기로 사라지는 열은 생각보다 적다.) 따라서 열손실이 많이 일어나는 벽체, 개구부, 지붕에 단열을 단단히 하면 열이 손실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예전에는 따뜻한 집을 짓기 위해 효율이 좋은 보일러를 설치하였는데 요즘은 아예 단열이 잘 되는 집을 짓는다. ‘패시브하우스’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다. ‘패시브(Passive)’는 수동적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이다. 그러니 ‘패시브하우스’는 수동적인 집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인류는 화석 연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능동적인 집(액티브 하우스)에 살았다. 그 결과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만나게 된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여도 적절한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수동적인 집(패시브하우스)을 짓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패시브하우스는 기밀성과 단열성이 높은 집, 주변 환경과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집을 말한다. 최근에는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제로하우스’라는 개념까지 등장하였다.
생각해 보면 적극적, 능동적이라는 단어는 늘 긍정적으로 평가되어 왔다. 반면 소극적, 수동적이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쓰였다. “젊은 애가 왜 이렇게 소극적이야. 적극적으로 해 봐.”라는 말이나 “그렇게 수동적으로 일을 해서 되겠어?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야지.”라는 말은 아무런 의심 없이 충고로 받아들여진다. 그렇지만 능동적이라는 것이 꼭 좋은 것만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동적으로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든다. 가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사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는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비적극적인 사람으로서 수동성이 지향이 된다는 점이 참 고무적이다.
우리 집은 ‘패시브하우스’ 기준이나 ‘제로하우스’ 기준에는 많이 못 미치더라도 나름 소극적인 집이 되었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단열재를 무엇으로 할까 선택해야 했다. ‘건축물의 에너지 절약 설계기준’에 따르면 단열재는 소재의 열전도율에 따라 가, 나, 다, 라 네 등급으로 분류된다. 이중 가 등급의 단열재가 단위 면적당 단열성이 가장 뛰어나다. 높은 등급의 단열재를 사용하면 단열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단열층이 두꺼워진다.
설계 단계에서 임시적으로 결정한 단열재는 1순위가 셀룰로오스, 2순위가 유리섬유(글라스울)였다. 이중 내가 선택한 것은 유리섬유였다. 가장 큰 이유는 예산 때문이었다. 셀룰로오스가 2~3배 정도 더 비쌌다. 셀룰로오스가 화재에 취약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아무래도 목조주택을 짓다 보니 그 부분이 신경이 쓰였다.
유리섬유는 유리를 녹여 가늘고 길게 섬유 모양으로 만든 소재를 말하는데 단열성이 뛰어나고, 변형이 적어 단열재로 널리 쓰이고 있다. 또 유리의 주성분인 규사가 원료이므로 불이 붙지 않아 화재에 강한 소재이기도 하다. 다만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어 시공할 때 유의해야 하고, 인체에 유해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만지면 매우 따갑고, 직관적인 거부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여러모로 친환경적인 소재는 아닌 것 같아서 고민이 되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서 가장 일반적인 소재, 유리섬유를 선택하게 되었다.
유리섬유는 유해물질인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인증을 받은 JM(존스맨빌) 사에서 생산한 자재를 사용하였다. 유리섬유의 성능은 열저항(열전도를 방해하는 성질) 정도로 구분하는데 이 값은 R-00(두 자리 숫자)으로 표기된다. R 다음에 붙는 숫자가 높을수록 열저항이 강하다. 우리 집은 벽체에는 R-21, 지붕에는 R-32의 유리섬유가 사용되었다. 두 가지 모두 나 등급에 해당하는 단열재이다.
집을 지으면서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차선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취향과 지향에 맞는 집을 짓기 위해서는, 그것은 보통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특별한 대가라고 하면 나의 에너지(diy의 경우), 기술이나 지식, 혹은 기술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을 아는 인맥, 혹은 그런 사람을 부릴 줄 아는 뻔뻔스러움이나 애살 등이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부족한 나에게는 주로 돈이었다. 그러나 가진 돈마저 부족한 나는 결국 차선의 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리섬유는 석면을 대체하는 단열재로 주택 건축에 널리 쓰이고 있다. 몇십 년 후에 이 소재는 위험 물질로 사용이 전면 금지될지도 모른다. 석면이 그랬듯이. 그건 정말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을 차선으로 선택하였다. 이 글을 통해 공유되는 경험이, 나의 임상실험이 다음에 집을 짓는 사람의 차선의 수준을 높이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