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18
어찌어찌하여 집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튼튼하고 단열이 잘 되는 구조가 완성되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공간을 구상하고 기초를 닦고, 구조를 세우고, 벽체를 채울 때 그대그때 드는 생각을 정리하고 의문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스스로 시공하거나 감리를 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아보고 시공사 대표에게 문의도 많이 했다. 혹시나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시공이 되는 것 같으면 꼭 물어보고 확인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집은 더디게 완성되고 있었고 아직도 두 달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아 있다. 의욕적으로 집 짓기에 개입하다가도 가끔은 그냥 이 모든 것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으로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옛날에는 자기가 살 집은 자기가 짓고 고치며 살았다고 하는데 사회가 분업화되면서 집 짓기는 집 짓는 사람의 고유 영역이 되었다. (물론 요즘에도 자기 스스로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주변의 시선과 불안을 이겨내고 자기만의 집을 짓는 그런 분들 진짜 존경한다.) 돈을 주고 기술과 사람을 사서 내가 살 집을 짓는 것도 일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어떤 일이 내 손을 떠나 전문적인 영역으로 가면 의심과 불안이 생긴다. 집을 짓는 일에도 잘 모르면 당한다라는 말이 상식처럼 퍼지고 있는데 그것은 시공자에 대한 불신에 기반한다. 집을 짓는 사람들이 사기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드물지 않게 그런 경우도 있긴 하다.) 내 손을 떠나 누군가에게 맡겨진 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한몫하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도 집 지을 때는 건축업자를 너무 믿지 말고 스스로 잘 챙기고 잘 알아보고 잘 확인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진심으로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충고인 줄 안다. 그런데 가끔은 그런 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런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합리적인 건축주라면 시공하는 사람을 믿지 말고 일일이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강박적 사고를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근거 없는 의심이나 불안감도 가지게 되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 결국 지식이 부족한, 경험이 부족한, 혹은 알고도 지적하지 않은 나의 책임이라는 걱정도 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럴 것까지는 없었는데 내가 원래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과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강박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실은 이론보다 더 복잡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었고 모든 집은 나름의 상황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공법과 경험에서 나오는 대응법들이 존재했다. 책처럼 완전한 사례는 없었고 나에게 충분하게 설명되는 것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설사 옳다고 해도 그게 맞다는 사실만으로 그대로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고 이해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결정하고,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요구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무례하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 기술과 현장의 상황을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만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나는 원래 성격이 싹싹하지 못해서 이런 점이 참 어려웠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나는 내 집을 지어주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존중한다.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존중하며 기계처럼 내가 입력한 대로 출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또 나의 요구를 건축주의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합리적인 의문과 정중한 부탁으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어주는 대로 네네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언가 정중하게 요구하고 부탁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다고 또 너무 우회적으로 표현하면 내 의견은 요구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들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내가 원하는 대로 집을 짓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서성거렸는지 모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데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렇지만 또 생각해보면 그런 유연함, 애씀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내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부과되는 역할이었다. 내가 살 집을 집을 지을 때에도 이런 눈치를 보고 있다니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원한 것은 건축주와 시공자가 일방적인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호기심을 존중해주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돈과 시간을 놓고 계약을 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계약서 속의 딱딱한 말들이 이 관계의 전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건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빈 말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