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작은집 16
방통 작업 중에 사고가 있었다. 콘크리트 관이 터져서 골목과 윗집 마당에 콘크리트가 튀었다고 한다. 나는 출근을 해서 현장에는 없었고, 오후에 시공사 대표와 다른 일로 통화를 하다가 통화 끝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시공사 대표의 설명은 이랬다. 집 앞 골목이 좁아 큰 골목에 레미콘 차를 대고 관을 길게 뽑아서 우리 집으로 콘크리트를 내렸단다. 그 골목은 내리막 길이다. 문제없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관이 터져서 골목과 윗집으로 콘크리트가 튀었다고 한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날씨가 더워서 그런 건지 정말 이상하다며 여기저기 튄 것은 잘 청소하고 관을 다시 연결해서 방통 작업도 마무리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관이 한 번만 터진 것이 아니었다. 노후된 관 때문인지 더운 날씨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4~5번 터짐이 반복되었고, 무엇 때문인지 작업을 중단하지 않고(그날 안에 공정을 마무리하려고 무리해서 작업을 진행한 것 같다) 계속하다가 피해가 커진 것 같았다. 윗집에는 벽과 마당뿐만 아니라 여름이라 열어 놓은 거실 창을 통해 내부에까지 콘크리트 물이 튀었다고 했다. 작업자들이 닦아내고 청소를 하였다고 했지만 실내의 소파나 벽면까지 오염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다친 사람은 없는지, 이웃 분들은 괜찮으신지 그런 생각보다 솔직히 ‘아, 잘 좀 하지. 괜히 이웃에 피해를 끼쳤네.’, ‘이런 문제가 생기면 왜 바로 이야기해주지 않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도 없고, 윗집 청소도 마무리하고 그 집에 계신 어르신과도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추후에 변상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명함도 남기고 왔다고 했다.
‘다행히다. 그럼 이제 마무리된 건가.’ 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계속 무거웠다. 윗집에 제대로 된 관계도 맺기 전에 큰 폐를 끼쳤다는 생각과 내가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또 작업자들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살 집을 짓다가 생긴 일이니 내 책임의 영역이었다. 무언가 하려면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고 그에 대한 대가는 그 일을 벌인 사람, 그러니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적당히 외면하고도 싶었다. 그동안 집 짓는 과정에서 마음이 좀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세상 모든 것이 돈으로 해결된다면 그만큼 상막한 세상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돈 주고 맡긴 일은 돈을 낸 만큼 수고로움 없이 마무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식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그런 사고가 생긴 다음에는,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윗집에 찾아가서 사과드리는 것이 맞는데 그날은 마음이 힘들고 핑계를 되자면 이런저런 일로 퇴근도 늦어 가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
퇴근하고 집에 있는데 마음이 괴로웠다. 핑계를 대며 이렇게 집에 들어와 있는 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일부러 몰아세우지는 않기로 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이러나 윗집에 들리기로 했다. 혼자 술을 한 잔 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출근길에 음료수 한 병을 사 들고 윗집에 인사를 갔다.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집에 계신 할머니, 할머니의 밥을 챙겨 주러 온 한동네 사는 며느리 아주머니 모두 집을 지으면서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하며 좋게 받아들여 주셨다. 혹시 불편한 것 있으면 말씀해 주시라고 이야기고 나오는데 찾아오길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하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나의 생각과 말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라는 점이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행동도 적당히 해서 주변을 속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안다고 매사에 그렇게 살지는 못한다. 나는 매일 실패한다. 그래서 가끔 부끄럽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하면 그 순간의 내가 좋아진다.
그렇게 사건이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옆집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네 집 담벼락에도 콘크리트 물이 튀었으니 당장 닦아놓지 않으면 시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하고 시공사 대표에게 연락을 했더니 그 집은 크게 피해를 끼친 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원하는 대로 청소를 해주기로 했다. 나도 가서 거들었다. 물걸레로 콘크리트 방울들을 닦아내는데 완전히 굳기 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잘 닦였다.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
집을 지으며 생기는 갈등과 사고들을 겪으며 어떨 때는 세상 모두가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 같고 또 어떤 때는 세상 모두가 다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싫어한다. 나쁜 상황을 애써 긍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상황은 최악일 수 있어도 그 상황에 있는 나는 최악이 아닐 수 있다. 나를 잘 지키고 있으면 상황이 호전되는 순간이 있겠지. 문제는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