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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기

바닷마을 작은집 28

by 선주

이제 집을 다 지었으니 이사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집을 잘 지었는지 확인을 받는 절차가 남았다고 한다. 건축 신고를 할 때 제출했던 계획대로, 또 건축법에 맞게 집을 지었는지(만약 변경된 것이 있다면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이 절차를 사용승인(준공 검사라고도 불렸고 지금도 이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이라고 한다.

사용승인은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서 설계를 담당한 건축사가 일괄 취합해서 제출한다. 감리신청서, 현장조사서와 함께 집안의 시설물과 사용한 자재의 등급을 확인하기 위한 세부 서류들이 들어간다. 설계할 때와 비교하여 변경된 것은 정화조를 묻지 않은 것 이외에 없었다. 건축사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는데 건축선을 잘 지켰는지 정확한 확인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기했다. 현행 건축법상 도로와 대지가 만나는 부분은 사람과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하여 도로 중심선에서 2m를 들여서 집을 지어야 한다. 내 땅이 도로 쪽으로 들어가 있어도 그 부분은 도로를 확보하기 위해 집을 짓거나 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다.
문제는 대지의 남쪽 면이었다. 지금은 도로로 사용하지 않고 이웃에서 점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곳인데 지적도상으로는 도로로 남아있다. 실제 사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적도에 도로로 되어있으면 도로 중심에서 2m를 들여서 건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실제 사용하고 있고 지적도상에도 도로로 되어 있는 동쪽 길과 만나는 코너 부분은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추가로 땅을 비워두어야 한다. (도로가 만나는 점에서 각각 2m씩 물린 점에서 대각선을 그어 가각전제 한다. ) 현행 도로가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부분을 들여 짓는 것이 석연치 않아 건축과에 문의하였으나 사정은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 건축선을 지켜 집이 들어서도록 조정했다.

그런데 건축사 말이 사용승인을 받으려고 하니 이 부분에 대한 지목 변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축선 밖의 대지를 도로로 변경하라는 것이었다. 먼저 번에 시청에 문의를 하였을 때 지목 변경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안내받지 못해서 (이 부분은 내가 정확하게 이해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당황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건축선을 지켜 건물을 짓고, 혹시 지목이 변경되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면 (도로를 정비한다든지 하는) 그때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 지목을 변경하면 될 것 같은데 현행 도로의 폭이 4m가 넘어 통행에 지장이 없고, 또 한쪽은 이웃이 점용하여 도로의 기능도 하지 못하는데 지목을 변경하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직접 건축과 담당자에게 다시 문의를 했다. 담당자의 답변은 만약 그 부분을 지목 변경 없이 대지로 남겨 놓으면 우리 집은 도로와 면하지 않은 맹지가 되니 사용승인이 불가하다고 했다. 남쪽 도로와 면하는 부분이 있는데 왜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따져 물으니 건축사를 통해 답변을 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건축사는 담당자에게 회신이 왔는데 다른 방법이 없으니 사용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분할측량을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이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사용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분할측량을 신청했다. 한국국토정보공사에 방문하여 신청하였다. 측량비가 적지 않았으나 그나마 농가주택개량사업 대상자라 30% 감면을 받을 수 있었다.
측량 당일 현장에 나가보니 측량사가 도로로 분할해야 하는 부분에 석축이 쌓여 있어서 분할이 안 된다고 했다. 도로로 지목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건물뿐만 아니라 다른 구조물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석축에 면한 현행 도로의 폭이 4m가 넘고 오래전부터 쌓여 있던 것이니 다른 방법은 없냐고 물어도 측량사들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다만 이 부분의 도로분할이 꼭 필요한지 허가 부서에 다시 문의를 하라고 했다. 건축사를 통해 건축과에 다시 문의를 했지만 답변은 똑같았다. 결국 분할은 안 되는 상황이니 현황 측량으로 진행하고 구조물을 허물고 난 다음 분할 신청을 하면 다시 분할측량 성과도를 발행해주겠다고 했다.
측량기사들이 떠난 뒤 시공사 대표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의 석축을 들여쌓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른 바쁜 일이 있는지 부탁을 한 뒤 열흘 후에야 석축을 다시 쌓을 수 있었다. 석축을 수정한 뒤 분할 신청을 하였고, 측량기사가 현장을 확인한 후 분할측량 성과도를 발급해 주었다.

이제 집 짓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던 차에 이런 문제가 생겨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이 정도까지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처음부터 분할측량을 진행했을 것인데 그런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건축사와 시공사 대표는 다른 지역은 이 정도는 양해가 되는데 내가 사는 지역이 너무 까다롭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내 집이 다른 지역이 아니라 여기에 있으니까 그 이야기는 아무런 위로도, 설명도 되지 않았다. 행정은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 예외 없는 법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사용하지도 않는, 못하는 길을 위해 오래된 석축을 허물고 땅을 뒤엎어야 했다. 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땅 이름을 바꿔놓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그게 어떤 길이든 아무도 터를 비켜주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가 없다. 이름뿐인 길이라지만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길을 터주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집은 나의 집이지만 나만의 집은 아니니까.

내 땅이지만 모두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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