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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승인받기

바닷마을 작은집 29

by 선주

분할측량 성과도를 내면 사용승인이 바로 처리될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먼저 문제가 되었던 것은 건축물대장이었다. 철거한 건물의 건축물대장이 살아있는 것이다. 철거를 한 뒤 말소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공사 대표에서 확인하였더니 철거 업체에서 잊어버린 것 같다고 다시 확인하여 신청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당연히 처리해야 하는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 분통이 터졌지만 누구의 잘못인지 시비를 가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지금 당장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 짓기라는 이 지긋지긋한 퀘스트에서 빨리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건축사는 말소 신청은 건축주가 직접 할 수도 있고 그 편이 더 빠를 것 같으니 직접 시청에 가보라고 했다. 건축과 담당자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더니 건축물대장 말소 신청서 작성을 도와주었다. 신청서를 제출한 후 건축물대장이 말소되는 데까지는 다시 일주일이 걸렸다.

건축물대장이 말소된 걸 확인한 후 건축사는 사용승인을 신청했다. 사용승인이 접수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담당자와 처리기한이 명시되어 있었다. 이제 일주일 안에 마무리가 될 것이다. 건축법에 따르면 신고를 한 건축물을 공사를 끝낸 다음 그 건축물을 사용하려면 허가권자에게 사용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허가권자는 사용승인 신청을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사용승인을 위한 현장검사를 실시하여야 하며 현장검사에 합격한 건물에 대해서 사용승인서를 발급한다.
그런데 잠시 뒤 기타 사유로 보완처리가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건축사에게 확인해 보니 특별검사(특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은 사용승인을 위한 현장검사를 관내에 등록된 사용승인 검사원(건축사)에게 대행하여 처리하는 사용승인 검사원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공사가 완료된 뒤에 지역 건축사회에 검사원 지정을 요청하고, 사용검사를 실시한 후 검사원 조사서를 첨부하여 사용승인을 신청해야 한다고 한다. 이 서류가 빠져서 사용승인 신청이 보류된 것이다.
건축사는 소규모 주택인데 사용승인 절차가 너무 복잡하다며 쉰소리를 했다. 관행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는 지역의 절차에 대해서 미리 확인하는 것이 그렇게 큰 일인가 싶었지만 별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사가 급하면 이사를 해도 된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사용승인을 받기 전에 사용을 하면 이행강제금을 내지만 주택의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고 이사를 하고 싶어서 사용승인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렸다.

며칠 뒤 사용승인 검사원이 방문했다. 나는 출근할 시간이라 나가보지 못했지만 건축사와 함께 둘러보며 다락방의 난간 높이를 높여야 된다, 다락방의 소방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항을 지적했다고 한다. 다락방 소방시설은 설치되어 있던 것을 찾지 못해 설치 사실을 사진으로 증명했고, 난간대는 지적한 높이만큼 덧대었다. 사진으로 확인을 한 뒤 검사원 조사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고, 서류를 첨부하여 제출한 뒤 사용승인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시청 건축과를 방문하여 사용승인서를 받은 뒤 취득세를 납부하러 갔다. 농촌주택개량사업 대상자여서 취득세는 모두 감면되었다.
다음으로 소유권 보존을 위한 등기를 신청하러 법원으로 갔다. 등기는 보통 법무사 사무소에 대행을 맡기지만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 필요한 서류를 챙겨 직접 가서 신청했다. 별다른 연락이 없으면 4~5일 뒤에 등기 완료 통지서를 받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 별도의 안내 서비스는 없었다. 나흘 후 법원에 들러 등기 완료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집에 관한 행정적인 절차가 마무리된 것이다.

사실 계획대로 집을 지었으니 뒤에 남은 절차들은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 둘 문제가 생겼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또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이 안 좋은 쪽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걸려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넘기 버거운 바윗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예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그보다 작은 일이 일어나면 위안을 삼는 대인배들도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깜냥이 못된다.
이렇게 공들여 완성한 집이 사용 승인을 못 받을 수도 있겠다 싶을 때는 정말이지 세상 모든 것이 내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일이 안 풀리고, 나는 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문제들이 해결된 순간은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불안했다. 그렇지만 부러 마음을 고쳐먹으려 노력했다. 그런 기분에 갇히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시간은 지나갈 거라고,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될 거라고. 꼭 최선일 필요는 없다고. 그러니 좀 숨이 트였다.
만약 세상 사람들이 이런 기분을 느끼며 산다면, 이런 기분을 이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그게 누구든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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