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5일

by 꿈꾸는 앵두

아침에 캐빈 메이트가 일어나 샤워하는 소리에 깼다. 알람 울리기 전까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는데, 이렇게 깬다는 건 이미 몸이 숙면을 취했다는 뜻이다. 하긴 9시간이나 잤으니 그만 일어나 이 돼지야! 라고 내가 내게 말했다. 예전에 다른 크루즈 회사에 다닐 때는 9시간 자는 것을 상상도 못해봤는데. 6시간 자면 많이 자는 것. 행복하다. 여기선 너무 많이 자서 피곤해;; 매일 8시 45분에 미팅이 있는데 지난 크루즈 때는 정확히 8시 15분에 일어났다. 더 일찍 일어나는 법은 전혀 없다. 생활 습관 한 번 참 일관성 있다. 아침 따위를 먹는 건 내겐 잠에 대한 모욕이다. 지난 크루즈 4개월 간 단 한 번도 메스에 가서 아침을 챙겨 먹은 적이 없다. 그만큼 잠을 좋아한다. 이번 크루즈 때는 게을러지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에 5분 일찍 일어나기로 한다. 헤헤. 8시 10분에 일어나 준비를 다 마치면 8시 35분이다. 지금 가면 미팅때까지 쫌 너무 이른데? 하는 어이없는 생각을 매일 하며 사무실로 향한다.

오늘의 하루는 정말이지 너무나 여유로운 하루였다. 일에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승객들도 크루즈 생활에 적응이 되어 이제 요청할 거 다 요청하고 해서 더 이상 리셉션에 요청사항이 없는지도. 곧 다가올 태풍전야인지도. 아무렴 어때.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 밖에 없는데. 아 맞다. 그렇지. 요 며칠간 배가 쉴 세 없이 흔들리니 아마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로썬 다행인 일.

#만약은없다 를 다 읽고, #곤란한결혼 을 읽기 시작했다. 며칠이나 이 결심이 갈지는 모르지만 일단 어제 오늘 성공이다. 나의 작심 3일 방법은 3일마다 계획을 세워서 연명해 나간다. 3일마다 새로운 계획을 만나는 것처럼 3일 전에 했던 그 계획을 다시 결심하여 3일간 지속하는 방법이다. 부디 이번에는 가져온 책들을 다 읽기를. 나중에 하선 때 다시 가져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미련스럽게 가지고 왔냐고 묻는다면 뭐랄까. 한정된 정보로만 생활해야 하는 배 생활에 가능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오고 싶었다고 할까? 나 뭐라는 거니. 지난 번에 가져온 #지구쟁탈전 과 #자본론을읽다 도 다 안 읽은 마당에 거창한 말 그만하고, 이번엔 좀 다 읽고 하선해보자. 젠장. 오늘도 반성이다….ㅠ

며칠 간 1시간을 더 버는 날들이었다. 배를 타다 보면 시계를 조정해야 하는 날들이 있다. 1시간 앞당겨지기도 하고 1시간 늦춰지기도 하는데 지난 3일간은 1시간씩 늦추는 날이었다. 이 말인즉슨, 1시간을 더 잘 수 있다는 말이다!! 고로 기분 좋은 날. 우리 배는 세계일주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시간 조정하는 날이 많다. 더욱더 신기한 건 마지막 달에 태평양을 건널 때는 하루가 통째로 없어짐. 한국과의 시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과 후에 저녁 먹고 씻고나서 인터넷을 하면 본의 아니게 새벽에 카톡을 보내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 미안.

보통의 일과는 오후 7시에 리셉션 문을 닫고, 이래저래 정리를 하고 8시 전후로 미팅을 시작하면 보통 8시 반 정도에 마치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7시 25분부터 미팅을 해 7시 40분에 끝나는 경이로운 날이었다. 저녁도 먹고 샤워도 했는데 8시 반 밖에 되지 않았어…. 으흐흐… 밥을 참 빨리 먹는 편인데 급한 성격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보통 10분 내로 밥을 다 먹는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점심시간 1시간도 10분 밥 먹고 보통 50분 잔다는…;;

이상하게 자는 이야기만 했네. 그래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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