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 일기

9월 9일

by 꿈꾸는 앵두

새벽(나에게 새벽은 일어나기 전 까지를 말한다. 참고로 8시 10분에 일어난다.)에 전화벨이 울렸다. 비몽사몽으로 전화를 받았다. 별 일 없는 전화면 욕을 한바가지 해 주겠어 하고 말이지. 헐. 치프 세큐리티다. 랜덤 알코올 검사 대상자로 선정 되었으니 진료실로 오라는 얘기. 시계를 보니 6시 50분이다. 짜증 반, 어제 수퍼 마리오 게임에 너무 열중하느라 피곤해서 크루바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캐빈으로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 반. 날씨가 덥다는 이유로 매일 크루바로 출근하는 나로써는 정말 다행인 일이다. 한달에 한 번 무작위로 선정된 크루들이 랜덤 알코올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거 왠지…. 며칠 전 교육 빠졌다고 나한테 이러는 거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긴가. 정령 내게 이러기인가. 어제 고맙다고 말한 거 취소다 취소. 음주측정 기계에 휴 내 숨을 불고 돌아왔다. 당연히 0.00. 당연한 거지만 아찔한 이 느낌은 뭐지….

홍해로 이미 진입을 했고, 해적출몰지역도 지났기 때문에 설치했던 창문가리개를 제거하는 작업이 아침부터 한창이었다. 나의 캐빈도 창문가리개가 열렸다, 메스에서도 창밖을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상쾌한 기분이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진 것 빼고는 순조로운 하루다. 물론, 배 내부의 재미있는 많은 일들이 매일 매일 있지만, 아직 재직중이라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음에 아쉽기도 하다. 나중에 퇴사하고 나면 다 풀어내리라!!! ㅋㅋ

오늘은 한국에서 1년에 1번 있는 한국어교원자격증 시험 날이다. 지난 겨울 126시간이었던가. 교육 이수를 마쳤고, 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전 크루즈 회사 재승선을 거절하고, 나답지 않게 한동안 앞으로 뭘 해야 할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던 차에 이 시험 준비한다는 거창한 명목을 앞세워 동해(나의 고향은 동해시ㅎ)로 내려와 잉여로 살고 있었는데 지금 이 크루즈를 타게 된 것이지. 이 크루즈를 타지 않았다면 오늘 시험을 보았을까? 합격률이 30%를 웃도니까 나는 분명 70% 중 한 명일 테니 보지 않았을까? 함께 공부한, 오늘 시험 보신 선생님들 파이팅 입니다! 전 아마 앞으로도 평생 안 볼 것 같아요…

평범한 하루다. 결제가 끝이 났고, 정산도 딱 맞아떨어졌다. 쉬는 시간에 너무 더워 샤워를 하고, 낮잠 대신 #굿바이싱글 한국영화를 보았다. 사랑 이야기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다행이다. 사랑 이야기 였다면 중간에 꺼버렸을지도 모른다. 사랑 이야기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자랑은 아니지만;;;; 멋진 배우 #김혜수 주연의 눈물 찔끔 이야기. 아침에 잠깐 깬 탓인지, 낮잠을 자지 않은 탓인지 졸려서 일찍 잘까 한다. 저녁으로 웬일인지 장어덮밥이 나와서 배불리 먹어서 더 피곤한지도.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점심에는 햄버거가 나오고 저녁에는 스테이크가 나오겠지. 지난 주 스테이크는 아주 얇아서 실망했는데 내일은 두꺼운 스테이크가 나와서 칼질다운 칼질을 했으면 좋겠다. 낮에 나오는 햄버거 패티는 너무 짜서 안 먹은 지 오래. 히히. 장어는 승선한 이후로 3-4번 정도 나온 듯 하다. 이렇게 장어 같은 게 나올 때는 사진 찍어서 흔한 #크루즈승무원식사 라고 사진 올리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매일 먹는 것처럼 말이지. 허나 #크루즈 #승무원 을 꿈꾸는 이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순 없는 일. ㅎㅎ 어제 크루바에 출근하지 않은 이유로 맥주 한 잔 할까 했지만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함을 잘 알고 있으니 오늘은 패스할까 한다. 잠시 #곤란한결혼 대신 #남궁인 선생님의 #지독한하루 로 갈아타서 읽고 있는데 거의 다 읽음. 곤란한 결혼은 결혼 이야기라 지독한 하루에 밀린 게 틀림없다. 나도 모르게 내게서. 내일은 다시 읽기 시도해 봐야지… ㅎㅎ

덥지만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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