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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Oct 03.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10월 2일

하루 종일 배가 많이 흔들린다. 아침에 본 티비에서의 바다도, 직접 야외갑판에 나가서 본 바다도 유난히 파도가 많이 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바다였다. 영국 옆이라 그런가…. 하루 종일 흔들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지금도 흔들리는 중). 바다색깔도 평소랑 다르다. 보통은 엄청 진한 파란색인데 오늘은 녹색에 가까운 빛을 하고 있었다. 물어보니 바다의 깊이가 이전의 우리가 항해했던 바다보다 훨씬 얕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Ship position 이 업데이트 되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보통은 수심이 4000미터쯤이라고 적혀 있는데 말이지.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 특별한 일도 없구나. 그렇다고 노는 건 아닌데.

일본 회사에 일본 손님에 일본 동료에. 일본어를 배우기에 가장 최적의 곳인데 영 관심이 가질 않는다. 한자를 못해서 그런가… 그래도 일본어 1도 못했던 첫 승선때를 생각하면 많이 발전 한 듯. 이제는 한 10프로는 알아들으니까 말이다. ㅋㅋㅋ 더구나 내 업무는 일본어 못해도 딱히 상관없는, 조금 불편한 정도라서 크게 모티베이션도 생기지 않고. 지난 크루즈 때는 하나도 모르니 이래저래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이번에는 약간 아주 약간 알아듣는다고 크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들고. 책을 하나 더 사왔음에도 불구하고 펼쳐 보지도 않았다 ㅋㅋㅋ 일본어 보다 영어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욕심이 있을 뿐. 그렇다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다 ㅋㅋㅋ 모 그보다도 한국어 공부를 더 해야겠지. 에고.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난 너무 게으르구나. 역시 공부는 강제적으로 해야 집중도 잘 되고 하게 되는 걸까? ㅋㅋㅋ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리셉션(게스트서비스라고도 불리고 회사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름. 일반 호텔에서는 프론트데스크라 불리는 곳)에서 일하는 나의 보통 일과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막상 적으려고 보니 무엇부터 적어야 할지 모르겠네.

손님들 승선하면 체크인을 하고, 선내 서비스 이용을 위해 현금이나 신용카드 등록을 한다. 각종 문의 응대를 한다. 캐빈의 요청사항을 접수하고, 처리 한다. 문이 안 열려요. 전등이 나갔어요. 캐빈이 너무 더워요. 수건 하나만 더 가져다 주세요. 카드를 방에 두고 와서 문을 열수가 없어요. 물이 안 나와요. 베개 하나만 더 주세요. 천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등등. 가끔 황당한 요청사항도 있으나 너무 많으니 생략하고. 지금 배는 100일이 넘는 세계일주 배니까 중간에 일시 하선 관련 문의사항이 많고, 그 외 갑자기 생각 하려니 생각 안나는 각종 정말 각종 문의사항 응대 및 불만사항 처리를 주로 하는 곳이 리셉션이다. 기항지에서는 승하선 승객, 일시하선, 일시하선 했다가 다시 승선하는 승객들 체크인 체크아웃도 담당하고. 결제날에는 결제내역서와 현금결제를 직접 담당하기도 하고. (지난 회사는 담당 부서가 따로 있었음) 일본 승객들은 아직도 팩스를 많이 이용해서, 팩스서비스도 하고, 국제전화서비스도 하고, 선내 인터넷 카드도 판매하고 등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와 같은 일을 보통의 리셉션은 24시간이라 교대 근무, 스케쥴 근무를 한다. 우리 배는 야간리셉션이 따로 있기 때문에 리셉션은 9시부터 7시까지 이고, 기항지에서는 기항 스케쥴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한다. 예를 들면 틸버리에서는 6시 도착 23시 출항이라 리셉션은 6시 30분부터 22시까지(이날은 23시까지…;;;) 보통 승객들이 모두 승선할 때까지 오픈한다. 고로 일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오픈 시간은 길었기 때문에 중간 휴식시간도 그만큼 늘어났던 것이었다. 다른 부서는 또 그 일의 특성에 따라 스케쥴과 업무가 주어지는데 다른 부서 경험은 없으니 잘 모르겠다.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점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다 는 점이다. 보통의 크루즈 승무원은 기본 10시간 정도는 (합법적으로! 불법이 아니라는 뜻) 일을 한다는 점. 생활하는 캐빈이 생각보다 작고, 밥이 맛이 없을 수도 있다는 점 ㅋㅋㅋ 도 더불어 꼭 알아 두었으면 좋겠다. 클럽메드에서 일할 때는 주6일이었는데 노동착취라며 엄청 불만이었는데, 크루즈 승무원이 되고 보니 일주일에 단 하루만이라도 쉬었으면 좋겠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ㅋㅋㅋ 보통 8개월에서 10개월 계약이고, 그 이후 1-4개월 정도 쉬고(당연히 무급으로;;) 다시 승선하는 생활을 반복 한다.

모 관심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내 이야기를 하자면 작년 4월에 승선하여(승선당시 그 큰 배에 혼자 한국인ㅠ 외로움ㅠ) 12월 초까지 이탈리아 크루즈 11만톤급의 한중일 4일 크루즈 네버엔딩 무한반복을 하고 12월 초에 하선했다. 게스트서비스 소속이지만 호텔디렉터 비서 포지션. 마이애미에 가고 싶다는 꿈을 꾸며 두번째 계약을 정중히 거절하고, 무직도, 휴가도, 구직중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지내다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는지 마이애미보다 더 재미난 세계일주 크루즈인 3만 5000톤급 오션드림호, 피스보트에 4월 초에 승선하여(함께 승선한 나를 비롯한 한국인 승무원들이 이 배의 첫 한국인 승무원들, 힘들 때 마다 생각한다. 자부심을 갖자고 ㅋㅋ) 첫번째 세계일주를 마치고, 두번째 세계일주 항해 중에 있다. 포지션은 어시스턴트 리셉셔니스트로 사무실에서 일한다. 11월 말 하선 예정이다. (그날이 어서 오기를…. ㅠㅠㅋ)

궁금하신 분들 있으실 까봐, 오지랖을 부려 크루즈 승무원 이야기를 잠깐 해 보았다. 혹시나 궁금한 점이 더 있으신 분들은 알려주세요. 성의껏 답변해드려요. 실시간 답변은 힘들지만 ㅠ

늦은 밤, 지금가지도 배가 흔들리니 이 핑계를 삼아 오늘은 이만 오야스미나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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