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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Oct 09. 2017

크루즈 승무원 일기

10월 7일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

아침부터 기분이 꿀꿀했다. 아기다리 고기다리 했던 친구들의 편지가 도착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가 이렇게 먼 곳이구나 새삼 느껴지는. 보냈다고 한지 2-3주는 지났는데도 아직도 안 왔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ㅠ 윈다에게 다음에 아이슬란드에 오면 꼭 보관해달라 부탁을 해 두었다. ㅠ 무슨 타임캡슐 편지도 아니고. 1년 뒤에나 받게 생겼다. 터벅터벅. 뭔가 기운 빠지는 아침. 이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 에잇.. ㅠㅠ


비는 오지 않았지만 흐린 날씨. 날씨까지 나를 다운 시키는 구나. 추워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반팔, 긴팔, 남방, 후드, 머플러, 점퍼 몇 겹을 입었는지 모른다. ㅋㅋㅋ 내복을 가지고 왔어야 한 걸까. ㅋㅋㅋ 애매한 4시간 반의 쉬는 시간, 자연을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보가 없다. 지난 번 왔을 때 시내에 관광센터가 있었는데, 우선은 거기를 가보자 싶다.

 

내가 사랑하는 2층 투어 버스가 크루들에게는 무료라는 정보가 있었다. 꽤 괜찮은 걸. 맞는지 안맞는 지를 몰랐기 때문에 우선 물어 보기로 한다. 저 멀리 Hop on hop off 버스 안내소가 있는 것이 보여 보러 갔다. 거기에는 페리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저 옆에 보이는 섬에 가는 페리다. 가격도 착하고, 무엇보다 겨울에는 주말에만 3회 운행하는데, 마침 토요일, 그리고 운행시간도 내 쉬는 시간이랑 딱 맞는다. 1시 15분 2시 15분 3시 15분. 버스 관련 물어보니 20% 할인이라고 이야기 해 준다. 어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저 멀리 보이는 저 섬에, 집 한 채. 갈 순 없는 것일 것 궁금했는데, 바로 이 앞에서 갈 수 있다니. 이렇게 고민하는 사이 빨간색 hop on hop off 버스가 왔다. 크루들이 우르르 탔다. 버스는 무료였다. ㅋㅋㅋ 


우선은 타야지. 버스를 타고, 얻어온 지도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이 버스에서 내려 다음 버스를 탄다면 2시 15분 페리를 못 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섬에 갈 수가 없다. 4시 30분 업무 시작이므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저 옆 섬이 그리 아름다웠다는 글이 있어 가보기로 했다. Hop on hop off 를 탔음에도 내리지 않고, 한시간 여 레이캬비크 포인트를 도는 버스를 2층 맨 앞 자리에 타서 바깥 구경을 하고, 다시 돌아왔다. 2시 15분 표를 끊고, 시간이 잠시 나마 이쁜이 노랑 등대 있는 곳으로 가서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 멀리 보이는 저 섬으로 가는 거다!


2시 15분 페리에는 나 밖에 승객이 없었다. 아무래도 겨울이기도 하고, 한정된 운행시간에 첫 페리를 타고 마지막 페리로 돌아오나 싶었다. 5분 정도 페리를 타고 섬에 도착했다. 비데이 섬. 멀리서 보이던 집 한 채가 바로 내 눈 앞에 있으니 신기했다. 저 멀리 내 집, 오션드림호가 바다 건너 보이니 신기했다. 3시 30분 돌아오는 페리를 타야 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섬은 아담했으나 1시간으로는 다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동서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나는 연못이 있는 서쪽을 선택해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다. 섬에는 갈대만이 흔들리고 있을 뿐. 정말 자연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그래서일까. 강아지 똥이 겁네 많았다ㅋㅋ) 까만색 모래의 바닷가가 있고, 멋쟁이 절벽이 있다. 돌들은 다 까만색. 아무도 없다. 저 멀리 한 명, 한 명 이렇게 작게 보일 뿐이었다. 등산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런 자연을 걷다니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침에 아이슬란드에 괜히 서운했던 마음도 누그러졌다. 바람만 안 불었어도 좋을 텐데 조금 아쉽다. 옆 섬에 굉장히 높은 산이 있는데 구름이 끼여 운치를 더 했다. 지난번 아이슬란드 사진을 찾아보니 지난 번엔 구름은 없었고, 눈이 있었네. 산 정상에…. 이 멋진 산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다니 너무 기분이 좋다. 언덕도 올라가고, 내려오고, 가만히 서서 경치도 감상하고. 행복한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생각을 해 보니 점심을 먹지 않았다. 캐빈으로 돌아온 시각은 4시 -_- 비상으로 가지고 간 카라멜 몇 개가 오늘 먹은 것의 전부. 말도 안되 ㅠㅠ 그래서 아껴두었던 부대찌개 라면을 먹었는데, 추운 날씨와 배고픔이 합해져 세상에서 가장 맛난 라면이 되었다. ㅋㅋㅋ 이제 라면 없다 ㅠㅠ


밤 9시에 출발하는 승객들의 오로라 투어가 날씨를 이유로 전면 취소 되었다. 덕분에 리셉션이 8시까지 오픈이었는데, 관련 대응하느라 9시 반이 훌쩍 넘어서 끝이 났다. 이럴 순 없는 거다 정말 ㅠㅠ


늦게 끝났다고 오버나이트 하는 레이캬비크인데 캐빈에서 잠만 잘 순 없지. 가자 시내로! ㅋㅋ 윈다와 시내로 걷기 시작했다. 밤인데 날씨가 생각보다 따뜻하다. 바람도 안 불고. 서로 바빠서 자주 이야기도 못하는 우리는 시내까지 가는 시간 동안(1시간 정도?) 수다를 그리 떨었다. 주로 회사-_- 이야기였지만 충분했다. 시간이 모자랄 정도 ㅎㅎ 예전 크루즈에서는 상상도 못할 기항지  밤을 즐기는 일. 시내에는 주말이라 그런가 북적 북적 했다. 아이슬란드 남자들 키도 크고 넘 머쪄.. +_+ 레스토랑 바들은 자정까지는 운영하는 듯 했다. 예전에 윈다와 점심 먹은 적 있는 이름이 Laundromat (빨래방ㅋ) cafe 에 다시 갔다. 아쉽게도 주방이 닫아 음식은 주문할 수 없었지만 Viking 맥주 두 잔을 주문했다. 세상 행복하구나… 맥주를 마시고, 배가 고픈 우리는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 배회했지만 대부분이 영업시간이 마감이었다. 유명해 보이는 핫도그(나는 핫도그도 참 좋아하는데, 먹을 때 마다 꽃보다 청춘에 보면 핫도그 세 개 주세요가 hotdog world 라고 번역기 결과 나온 것이 생각이 난다ㅎㅎ)를 하나씩 사서 벤치에 앉아 레이캬비크의 밤을 느끼며 먹었다. 튀긴 양파가 별미구나 ㅎㅎ

택시 타고 귀가. 아. 피곤. 아. 너무 피곤. 정말 피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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