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앵두 Oct 13. 2017

크루즈 승무원 다이어리

10월 12일

크루즈 승무원 다이어리 (다이어리라고 하는 어감이 더 나은 듯 하여 바꾸어 봄. 브릿지 존슨의 다이어리처럼. ㅋㅋ 흠.. 그럼 안네의 일기는 어쩌지… 흠…. 오늘도 동료 회사 이야기 포함이라 친구 공개로.)

무지개다. 무지개. 아침 업무를 시작하는데 티비 CCTV에 무지개가 보였다. 대박. 그동안 무지개가 출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니 이렇게 보는 것이 처음이다. 바로 카메라를 들고 데크 10으로 올라갔다. 저기 앞 바다 위에 무지개가 보인다. 사진을 찍었는데 잘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중간 정도의 선명도를 가진 무지개가 바로 내 앞에 보인다. 좋다, 너무 좋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서서히 옅어졌다. 리셉션 사무실로 돌아오니 CCTV에서도 사라져 있었다. 어렸을 때는 무지개를 쉽게 잘 볼 수 있었는데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듯 하다. 여튼 오늘은 무지개를 봐서 아침부터 기분이 좋다. 오늘은 일몰도 CCTV에 너무 이쁘게 보이길래 데크 10으로 올라가서 한참을 보다가 내려왔다. 가끔씩 이런 혼자만의 낭만 참 좋다 ^^

어제는 화가 많이 나는 하루였기 때문에 오늘은 애써 침착을 유지해본다.

5개팩 중 마지막 티슈박스를 가져가는데 5개를 봉했던 겉 비닐을 휴지통에 넣지 않고, 그대로 그 자리에 둔다. 누구 보고 치우라고?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 중이었는데 충전기는 그대로 콘센트에 꽂아 두고, 배터리만 카메라에 끼운다. 자기가 필요한 것만 보이는 거지. 종이 분쇄기는 항상 가득 차 있다는 표시가 켜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나만 치우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복사기에만 가면 종이가 떨어졌다는 표시등이 켜진다. 내가 프린트 할 때만 종이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눈 앞에 펀치며, 셀로판 테이프며 찾아 보지도 않고, 내게 얘기한다. 없다고… 아이스 베개 알코올 소독한 티슈가 너저분하게 돌아다닌다……. ㅠㅠ 엄마야.. ㅠㅠ 엄마.. ㅠㅠ

하루 하루 내 인내심을 실험해주는 이들 덕분에 한계를 깨닫곤 한다. 그래도 오늘은 행복하고 싶은 날이니…. 괜히 농담하며 너의 잘못을 지적해주리라…. 제발 쫌!ㅋㅋㅋ

오늘은 한시간 버는 날이니 윈다와 함께 선술집인 나미헤이에 갔다. 마침 저녁이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게 아닌가. 어쩜 이래. 점심 때는 오랜만에 바나나 무더기가 나왔는데, 밥 다 먹고 먹어야지 다짐한 사이 없어져버렸다….. 어쩜 이러냐고… ㅋㅋㅋ 바나나 한국에서 흔해서 잘 먹지도 않는데 선상에서는 어째서 이리 귀한 음식이 되어버렸냔 말이다 ㅋㅋㅋ 윈다가 마침 오피서 메스에 온 시각에 회가 한정적으로 나왔는데 운이 좋게 두덩이를 먹었다. 으흐흐… 오랜만에 회구나… 밥을 떠와서 스시 같이 맛나게 먹었다.

나미헤이에 갔더니 막걸리가 없어지고, 백세주가 있길래 한 병 주문했다. 비싸다… -_- 7-8000원 사이. 내 사랑 대만식 소시지. 윈다는 춥다며 우동을 주문했다. 거의 한달만에 오는 듯. 윈다 생일 때 와보고. 정말 한 달만이네. 사실 이 곳은 크루 오피서들만 올 수 있다. 뭔가 불합리한 듯 하지만 이 회사 룰이니 따를 수 밖에. 예전 회사는 손님들 가는 레스토랑에 명찰과 유니폼을 입는 다면 누구나 당연히 출입 가능 했는데…. 백세주 한 병을 거하게 마시고, 안주도 당연히 클리어 하고 ㅋㅋㅋ Hoppy 라는 무알콜 맥주도 마셔보고. 손님들이 몰려들 10시 쯔음, 우리는 자리를 떴다. 폭풍 수다를 떨었지. 주로 휴가 때 뭐 할 지 이야기 ㅋㅋㅋ 자리를 옮겨 크루바에서 아사히 프리미엄 맥주 한 캔 클리어. 오랜만에 좋구나.

지난 94회 크루즈, 나는 크루바 매니아였다. 매일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고, 윈다도 마찬가지. 사실 내 캐빈은 크루바 바로 옆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맥주 한 두 캔은 매일매일 마셨고, 윈다와 수다도 매일매일 떨었는데, 이번 크루즈는 뭔가 조금 개인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캐빈에서 보고 하는 시간이 길어 졌기도 했고, 잘 피곤해졌기 때문에 캐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짐. 체력탓이지 체력탓.

참! 시즌 3까지 밖에 없었던 셜록홈즈였는데, 시즌4를 윈다가 오늘 건네주었다. 대박. 앞으로 뉴욕까지는 재미나게 시간 보낼 일이 생겼다. 내 사랑 셜록. 언능 보고파잉… ㅎㅎ 으흐흐…

오늘은 이래저래 행복한 하루^^ 1시간 넘는 에피소드지만 하나 다 보고 자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크루즈 승무원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