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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Oct 19. 2017

크루즈 승무원 다이어리

10월 18일

바쁜 듯 안 바쁜 듯 바쁜 하루. 내 전화기는 쉴 세 없이 울려 대고, 요청사항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멀쩡하던 분쇄기는 고장 나고(예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매일 가득 찼다는 경고등은 들어와 있는데 비우는 사람은 없는 신비한 분쇄기. 종이가 끼었다는 경고등은 들어와 있는데 해결하는 사람은 없는 신비한 분쇄기. 이번엔 무얼 분쇄한 건지 알 수 없는 코팅지가 한 가득 커터날에 끼어 있다. 예전에 한 번은 종이 10장씩 한꺼번에 분쇄하는 거 목격하기도.), 일을 두 번씩 하게 만드는 이도 오늘따라 많고. 그래도 괜찮아. 다 덤비라규! ㅎㅎ

분쇄기를 수리 보내고, 그 자리가 잔 종이들로 어지럽길래 청소기를 빌려 청소했다. 빌린 김에 내가 주로 일하는 곳도 아닌 프론트와 방송실 바닥이 더러운 것이 항상 눈에 거슬렀던 터라 손님도 마침 없길래 열심히 청소기로 밀고 있으면, 좀 알아서 걸리적 거리는 의자는 치워주고, 청소 다 끝난 뒤에 무거운 청소기 들고 사무실로 가는 나를 위해 문 정도는 열어줬으면 좋겠다는 큰 바램 가져본다. 너무 큰 바램이라 들어줄 수 없는 거 알지만…

벌써부터 다음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무래도 드라이덕도 있고, 그 이후에 짧은 크루즈도 있고, 보통의 100일의 세계일주 크루즈가 아닌, 50여일짜리 오세아니아 크루즈, 50여일짜리 아시아 크루즈가 있고, 짧은 크루즈가 있은 다음 100일 세계일주 크루즈가 다시 시작 되기 때문에 아마 도쿄 오피스에서 계획을 일찍부터 짜는 듯 하다. 일반 승무원의 계약기간이 8-10개월 정도 되는데, 머리가 아프겠지. 더구나 이 배는 일본인 리셉셔니스트들이 영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플랜도 있어야겠고. 점점 늘어나는 일본 이외 국적의 승객들의 수도 고려 해야겠고, 내가 하선한 후 지금 맡고 있는 포지션을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어야겠지. 모두가 알다시피 나 없으면 리셉션 안 돌아가니까.. ㅋㅋㅋ

나없이 안 돌아가는 리셉션이므로ㅋㅋㅋ 짧은 휴가 후 바로 승선하는 회사에서 제안한(정확한 날짜까지 통보한 것이지만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거절 했으니까ㅋ) 스케쥴은 일단 거절했고, 오세아니아 크루즈에 욕심은 나지만, 하선 하자마자 얼마 뒤 다시 승선하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긴긴 휴가를 가지며 이래저래 계획한 것들 한국가서 차근차근 하고 그 이후에 다시 결정해도. 늦지 않으니. 몇 달을 쉬고, 적당한 크루즈 스케쥴을 이야기 하며 그때에도 회사에서 내가 필요하다면 승선하겠다 이야기 했다. 회사에서 오케이 할 지 또다른 제안을 할지는 두고 봐야할 일.

나란 사람, 사실 이렇게 배 안에 갇혀(?) 일을 하고 있으니 몇 달 째 조용히 일하고 있지, 육지에서 일하면서는 가까운 미래를 계획하거나 결정하지 않는다. 당장 무슨 일이 생길 지 모르기 때문에. 실제 무슨 일들이 항상 생겨왔기에… 호텔 다니다가, 갑자기 크루즈 승무원이 되어 승선을 했고. 첫 계약을 잘 마치고 내려서는 한국어교원양성과정 공부도 하고. 다시 승선해야 하는데 대책없이 승선 거절을 하고. 길을 잃어 방황하는 듯 지내다가 다시 이렇게 승선을 했기에. 그저 그때그때 주어지는 상황들에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단언컨데 무언가는 끊임없이 하고 있을 테니… ㅎㅎㅎ

내일 나소에 가는데, 멋진 해변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의 운은 이미 다 떨어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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