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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Oct 21. 2017

쉬어가는 다이어리

불안한 그대와 나에게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요즘 민들레를 읽으며 드는 생각.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괜찮다고 말은 하면서도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불안이 자꾸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든다.

친구들의 출산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자주 들려오던 때가 있었는데, 연장선인가 보다. 그들의 임신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카톡 프사가 아이 사진으로 바뀌어 있는 걸 보니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이렇게 정체(?) 되어 있는데, 심지어 누군가와의 만남 조차도 몇 년 전을 끝으로 쉬고 있는데, 아무런 업데이트 해 줄 것이 없는데. 너희들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도 하고 있구나. 나만 제자리 걸음인 이 느낌은 뭐지.

한 때 대기업에 들어가서 승승장구하고, 높은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인 부를 얻고 싶은 야망도 있었고, 대안 교육에 이 한 몸 불사르고 싶은 큰 포부도 있었다. 현재 직업은 크루즈 승무원. 이 쌩뚱 맞아 보이는 현재 상태를 설명하자면 좀 길지만, 간략히 요약하자면 그때 그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미련없이 떠날 ‘때’가 되면 떠나 다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공교육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적이 받쳐주지 않아 전과를 목표로 사범대로 유명한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공부보다는 술 마시고, 동아리활동을 하는데 내 젊음을 바쳤다. 그러다 영어 콤플렉스로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서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오며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라고 쓰고 철이 들었다고 읽는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지.

그 이후 무엇이든지 열심히 했다. 학과공부도, 동아리활동도, 대외활동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으니 마지막 학기에는 취업준비에 매진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일탈을 해보고 싶었다. 취업을 하게 되면 앞으로 최소 몇 년간은 일탈은 못할 테니까.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국비 지원해주는 해외취업 연수프로그램을 신청하여 중국에 가서 연수생활을 했다. 중국어 1도 못했지만 영어를 했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취업도 했다. 그러나 대기업을 꿈꿨던, 패기 넘쳤던 나에게 첫 직장은 실망감만을 주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두 달이나 취업활동을 해야 했다. 생각보다 취업이 어려움을 매스컴에서 한창 이야기 하던 취업시장을 몸소 경험했다. 눈을 낮춰 중소기업이지만 업계 1위를 자랑하는 회사에 입사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다 어린이날까지 출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게 물었다. 아니. 하나도 안행복해.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 이후로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했다. 독서모임도 하고, 강의전문가 과정도 듣고, 여전히 바쁜 일상이었다. 그러다 클럽메드 지오(세계 70여개 국에 있는 프랑스 체인 ClubMed라는 리조트에서 일하는 직원을 뜻하며, G.O, Gentle Origanize 의 약자이다. ‘친절한 직원’이란 뜻으로 만능엔터테이너로서 손님응대, 각 포지션 근무는 물론이고, 쇼를 직접 만들고, 이벤트 참여 등 일반 리조트 직원과는 차별화된다.)라는 직업을 알게 되었는데 매력적이다.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았지만 내게 맞는 포지션이 없다고 해 지오가 될 수 없었다.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찾았는데 할 수가 없다니.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 대학원을 갈까, 핀란드로 유학을 갈까 많이 알아보고 고민했다. 그러다 돈도 벌고, 여행도 하고, 외국에서도 살아보는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다. 사실 대학원을 가기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무엇보다 내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는가.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절레절레 였기에.

초기자금을 모았고, 뉴질랜드로 향했다. 1년 동안 즐겁게 여행했고, 즐겁게 돈을 벌었다. 사실 돈을 번 경제활동이 주였지만, 간간히 여행도 했고,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농장을 경험하며 1차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달았다. 비자가 만료되어 한국에 들어왔고, 클럽메드에 다시 도전했다. 티오만 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두 달을 기다렸음에도 티오가 나지 않았고, 이번에도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바로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뉴질랜드 워홀 경험이 있었고, 시드니에 친구도 있어서 첫 1-2주 알차게 계획을 세웠고, 어느 한 농장으로 떠났다. 호주에서도 즐겁게 돈 벌고, 즐겁게 여행했다. 호주에서는 시급이 뉴질랜드보다 훨씬 높고, 당시 환율도 높아 여기에서도 돈을 버는 경제활동이 주였지만, 뉴질랜드 때와 마찬가지로 간간히 여행도 했고, 더 새로운 농장도 경험했다. 그러다 비자가 거의 끝나갈 쯤 다시 한 번 클럽메드에 지원을 했고, 어서 한국으로 들어와 지오로 떠날 수속을 하자는 답변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지오에 도전한지 3년만에 클럽메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여러 나라의 리조트가 있었지만 발리로 배정을 받았고, 발리와 사랑에 빠져 2년을 그 곳에서 지냈다. 어느 일이나 그렇듯이 힘든 날도 있었지만, 매일 웃으며, 진심으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즐겁게 생활했다. 어느 순간, 그만할 때가 되었다, 후회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없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우선 쉬고 싶었다. 그렇게 쉬고, 쉬고 또 쉬고. 원했던 꿈을 이미 이루었기 때문에 방황했다. 또다른 이뤄야 하는 꿈이 필요했다. 그렇게 쉬고, 쉬고 또 쉬고. 괜히 집에서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크루즈 승무원을 알게 되었다. 오호라! 이거 정말 해보고 싶어! 완전 생소하지만 완전 멋지고 재미있을 것 같아! 한국에 있는 한 에이전시에 원서를 내고, 1차 면접도 보고, 했는데 본사 인터뷰 날짜가 한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잡히지 않았다. 이러다 기약 없겠다 싶었고, 결심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다. 취업활동 시작이다! 한국의 취업시장에서 나는 경력 짧은 나이 많은 여성 지원자였다. 면접을 보러 가면 왜 그렇게 나이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점점 위축되어만 갔다.

감사하게도 나를 받아주고, 나와 잘 맞아 입사를 결정한 회사는 미국 호텔 체인이었다. 나이와 경력, 성별로 차별하지 않는 회사였다. 외국 총지배인 어시스턴트 일이 나의 업무였는데 처음 하는 업무였지만 열심히 일했다. 회사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역차별이라 느껴질 정도로 여직원의 비율이 현저히 높았고, 누구에게나 성장의 기회, 교육의 기회가 과분할 정도로 주어졌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공허만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야금야금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크루즈 면접을 보면서 알게 된 언니가 다른 크루즈 합격 통지를 받았다며, 나에게도 원서를 써 보라고 제의했다. 원서를 쓰고, 두 번의 인터뷰를 보고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1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게 운명일까. 되려면 이렇게 되어야 하는 걸까?

그 길로 회사에 퇴사통보를 하고, 크루즈 승무원이 되기 위한 수많은 시간의 안전교육을 받고, 드디어 승선을 했다. 이탈리아 회사 크루즈였지만 한중일 노선에 승객들은 99프로 중국인 승객. 1000명이 넘는 크루즈 승무원 중 유일한 한국인 승무원으로 승선해 열심히 일했다. 4일짜리 짧은 크루즈에 상해-제주-후쿠오카를 기본으로 한 크루즈. 얼마나 바쁜지. 8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 바쁜 크루즈 계약을 무사히 마친 내가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하선을 하고 두 세 달 정도 휴가가 예상됨에 따라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한국어교원양성 과정을 들었다. 이곳에서 소중한 인연을 많이 만났다. 함께 공부한 선생님들 그리고 인연을 맺게 된 미국인 학생들까지. 역시 난 일복과 인복은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구나. 그러다 회사로부터 두번째 계약 승선날짜를 받고, 승선 준비도 하였는데, 뭔가 급한 느낌도 있고, 다시 한중일을 8개월 간 탄다고 생각하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중일은 꼭 벗어나고 싶었으므로. 정중히 회사에 승선 포기 의사를 밝혔다. 다시 무직으로 돌아온 순간이었다.

한국어교원양성과정도 끝나고, 관련 자격증 시험 준비한다는 핑계로 고향에 내려와 쉬었다. 하선을 하고 막 왔을 때 에이전시들 이곳 저곳에 연락을 해 놓은 것이 이 때 연락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곳에서 한국인 리셉셔니스트를 뽑는다고 연락을 해 왔고, 그렇게 화상 인터뷰를 보았다. 이미 승선한 경험이 있어 안전교육을 모두 이수한 후라, 바로 승선이 가능하다는 점이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더이상의 인터뷰 없이 합격통보를 받았다. 부모님은 말은 안 하셨지만 노는 자녀의 모습을 보는 게 싫으셨을 터. 이제 일하러 간다고 하시니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이러니 노는 내가 죄짓는 기분일 수 밖에. 그렇게 나는 또다시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이번에는 세계일주 크루즈 승무원이 되었다. 지금 승선하고 있는 배는 100일간의 세계일주를 하는 크루즈 인데, 규모는 일반 대형 크루즈 선에 비해 작지만 노선이 너무 매력적이다. 이미 꿈만 같았던 100일 세계일주는 마쳤고, 지금은 두 번째 세계일주 중에 있다. 배 안에서 항해 중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적어 놓으니 나의 인생은 무언가 차근 차근 잘 진행되는 것 같지만 가끔씩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많이 하게 된다. 친구들의 결혼 소식을 듣고, 출산 소식을 들을 때, 한달에 한 번 쥐꼬리만한 월급 명세서를 받을 때, 내 나이가 몇 개인데 모아 놓은 돈이 이것 밖에 안되지 하는 자괴감이 빠질 때,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많이 지내 가족행사에 무조건 불참일 때 등등.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아 우선순위를 매겨야 할 정도인데 이것 또한 질문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아도 괜찮을까? 금방 싫은 내는 성격 때문은 아닐까? 하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난 항상 내 편이니 괜찮다고, 잘 하고 있다고, 정답은 없다고, 너가 가는 길이 맞다고 그렇게 용기를 내 본다.

나, 이대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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