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파나마 운하
파나마 운하. 일어나기도 전부터 브릿지에서 방송을 해서 계속 깼다. 오늘은 이번 크루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파나마 운하. 모든 게 처음이었던 지난 번보다는 덜한 기대와 설레임 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갑문들이 열리는 것을 보는 건 신기하고, 감동적인 경험이다.
오전 9시 반쯤 갑문에 도착한 우리는 오후 8시가 훌쩍 넘은 지금 막 마지막 운하를 건너고, 빠져나가는 중이다. 10시간이 넘는 대장정. 하루 종일 수고한 오션드림호에게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 쉬지도 않고, 코린토로 항해 중.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야외 갑판에 올라가 보았다. 물론, 인내가 별로 없어 갑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내려오기 일쑤였지만..;; 갑문 열리는 건 사무실에서 티비로 시청 ㅎㅎㅎ 지난 번에는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런가 14시간이 넘는 대장정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그래도 그에 비하면 순조로운 편. 낮에 잠깐 올라가 보았을 때 우리 배 주변으로도 많은 선박들이 대기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녕, 반가워.
필요 물품이 있으면 store 라 불리는 창고(?)라 해야 하나. 부서장 사인을 받아, 종이를 들고 가서 물건을 받아 온다. 리셉션에서 쓰는 건 대부분 학용품들. 종이, 학용품, 건전지, 영수증 종이 등등. 자주 store 에 가는데, 무겁지 않는 이상은 내가 직접 간다. 벨보이 라는 포지션이 있어 다양한 일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은 선내의 모든 부서사람들이 불러 대기 때문에 항상 바쁘다. 무거운 건 부탁하기도 하지만, 왠만한 건 내가 직접. 사실 바람도 쐴 겸. 보통 store 는 배 맨 밑 층에 자리 잡고 있어서 바람을 쐬러 간다기 보다는 사무실을 잠시 탈출한다 정도가 맞겠지.. ㅋㅋㅋ
며칠 전 store 에 갔다가 반가운 한국 봉지라면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물어보니 얼마 뒤부터 수량 있는 만큼만 크루바에서 팔 예정이라고. 크루바에 깔리는 날 알려 달라고 당부에 당부를 했었었다. 오늘 store 에 가니, 마침 나에게 전화중이었다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라며 ㅋㅋㅋ 아이디 카드 들고 크루바로 갔다. 불짬뽕, 참깨라면, 새우탕 컵라면 ㅋㅋㅋ 다 데려옴 ㅋㅋㅋ 그런데 문제는 봉지라면이라는 것..
흠.. ㅋㅋ 그래도 다 방법이 있지. 요즘은 전기냄비도 잘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화재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열을 낼 수 있는 모든 전기제품의 반입은 선내 금지다. 사실 헤어 드라이기도 그렇긴 한데, 이는 좀 예외로 해주는 편. 여튼 전자레인지 전용 용기에 라면과 뜨거운 물을 붓고, 돌려주면 끝. 물론, 맛은 끓인 라면 보다야 못하지만 오…. 정말 이런 불맛이 나다니. 한국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는 라면. 먹는 다 해도 온갖 해산물과 야채 듬뿍 넣어 럭셔리하게 먹기만 하지 그냥 먹지는 않는 라면. 컵라면은 더더더더욱 안 먹는데. 배만 타면 그렇게 컵라면이 맛나고, 봉지라면은 심지어 감동적인 맛까지 나다니… ㅎㅎ 용기가 작아서 하나를 끓여서, 한 젓가락씩 먹으니 금세 동이 남. 하나 더 끓여서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음. (사실 난 저녁도 이미 먹은 상태였….) 한국에 있다면 짬뽕을 먹을 지언정 짬뽕라면이 웬말이냐 할 텐데… 아. 진짜 짬뽕도 먹고 싶다. 위시(음식)리스트에 추가. 위시리스트. 버킷리스트 따윈 내게 없다. 음식 리스트 만이 있을 뿐 ㅋㅋㅋ
아.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게 잠이 들 듯 싶다. 짬뽕라면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