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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Nov 06. 2017

크루즈 승무원 이야기

11월 5일

평범한 하루. 여유로운 하루. 바꿔 말하면 지겨운 하루.

하와이 만을 기다리는 이. 하선 만을 기다리는 이. 내게 뭔가 새로울 것은 없다. 다음 크루즈가 기다리고 있는 진행 형이 아닌 당분간은 휴식일 끝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그저 빨리 지나가주길 바라는 날들일 뿐. 에고야.

일요일 썬데이 점심은 햄버거, 저녁은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그 얇기가 왜 자꾸 얇아지는지 ㅋㅋ예전엔 2cm 정도 되는 두꺼운 스테이크도 나와 잘라먹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얆아질 대로 얇아진 스테이크는 더 이상 두꺼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후식으로 나온 자몽을 겁네 먹음. 난 정말 자몽의 이 시면서 달콤한 맛이 참 좋더라 ㅎㅎ

캐빈으로 돌아와서 한창 재미를 붙인 일본어 공부나 할까 했는데 윈다와 크루바에서 만나기로 함 ㅋ 지난 크루즈 때 매일 같이 크루바에서 떠들며 놀던 것 처럼 엄청 수다 떨고, 공감 하고, 회사 얘기도 하고, 휴가 계획도 짜고 함. 회사의 공식 스케쥴로는 같은 날 하선 해서, 같은 날 다시 승선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렇게 일찍 승선할 필요는 없지 ㅋㅋㅋ 모든 건 그 때 가 봐서 ㅋㅋㅋ 둘의 소원은 남자친구를 만나 그만 승선하는 것인데 아마 같이 다시 승선하지 싶다. 싱글로 ㅋㅋㅋ

아. 좋다. 그래. 많은 친구는 필요 없지. 좋은 친구 한 명만 있다면 크루즈 생활은 충분히 견딜만하다. 배라는 한정된 특수한 공간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이 생긴다.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견디지 못할 일도 생기고, 쉽게 상처받고,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라면 그 관계를 매일 같이 쉬는 날도 없이 겪어야 하니까. 특히 많은 이들이 한정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십 아닌 가십에 상처받기도 하다. 육지에서 1만큼 힘들 일들은 괜히 2배 3배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고 이런 일에 피해갔으랴. 다 겪어 보고, 경험하고 했으니 지금의 배 생활은 아무런 썸도 없이 아무런 가십도 없이(같이 일하는 한국인 동생은 내게 제발 좀 남자 좀 만나라고 난리다-_-) 힘듦도 없이, 관계의 어려움도 없이, 부처님처럼 자기 컨트롤 잘 하며,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게 된 것. 글 쓸 여유도 있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ㅋㅋㅋ 너무 잘 지내서 탈이지. 그러다 이렇게 가끔씩 윈다랑 맥주 한 잔 하며 그동안 밀린 수다를 다 떨어버리는 나의 크루즈 생활은 정말 환상적인 것이지. 모 내 생활이 맞는 건 아니지만 나만 만족하면야 ㅎㅎ

전 크루즈 승무원인 #조은아 님이 최종 하선을 하면서 쓴 글 중 하나에 그런 고민들과 생각들이 잘 담겨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크루즈 승무원이라면 다 공감할 만한 이야기.

뜬금 없는 내일부터 다이어트 결심으로 다이어리를 마칠 까 한다. 크루바에서 맥주 마시다가 새우탕을 하나 먹었으므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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