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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Nov 12. 2017

크루즈 승무원 다이어리

11월 9일

마지막 기항지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호놀룰루. 번역 어플리케이션으로 편하게 잘 들었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이제껏 우리가 거쳐왔던 항로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다. 감회가 새롭다. 지난 크루즈에 이어 이번 크루즈까지. 지구 두 바퀴라니. 물론, 앞으로 더 돌 기회가 있긴 하지만 ㅋㅋㅋ 그래도 나의 미래는 나도 잘 모르니 속단하지 않으려 한다.

오늘은 괜히 한국에 돌아가서 작은 공간 하나를 얻어 이쁘게 잘 꾸미고,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보았다. 강연도 하고, 영어도 가르쳐 주고, 한국어도 가르쳐 주고, 친구들과 파티도 하고 하면서 말이지. 내 개인 작업(?) 공간으로도 쓰고. 모임 장소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하지만 서울은 비싸…. ㅠㅠ 난 서울에 집도 없으니. 공간은 커녕 내 몸 하나 뉘어 쉴 집도 필요하고… ㅠㅋ 나에게도 후원자가 있었으면…. -_-ㅋㅋㅋ

브런치의 어느 글에 어느 분께서 긴 댓글을 남겨 주셨다. 블로그에는 종종, 브런치에는 간간히 이렇게 긴 글을 남겨 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이렇게 긴 댓글을 남겨 주시면 그 글을 몇 번이고 곱씹어 보고, 내가 쓴 글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나 내가 나를 내려놓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정말 경제적으로 밑바닥이었을 때, 막연하게 꿈을 쫓아가면서 장미빛 미래보단 뿌연 안개 잔뜩 낀 미래만이 보였던 그 때에 고민하고, 생각하고, 힘들고 혹은 그 이후에 깨달았던, 내가 안되는 이유를 핑계 대었던 상황들을 솔직하게 풀어 쓰려고 노력한 글들을 많이 공감 해 주신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거쳐 가야하는 고민과 힘듦인 듯이. 지금은 통달해서 (통달했다고는 하나 고민은 늘. 깊이는 깊어 졌으나 스트레스는 줄어든) 완전 초 긍정으로 나를 200% 믿으니 걱정 없지만 이 또한 얼마 되지 않았으니… 자신을 믿고 가라고. 내가 그걸 증명한 산 증인이라고. 설사 내 자신이 나를 실망시키더라도. 무한반복으로 기회를 주라고. 나조차 나를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냐며.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나와 닮은, 생각과 고민으로 가득 찬 그들에게, 혹은 어린 써니에게 위로해주고 싶은,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오지랖은 여전히….

어제에 이어 삘 받아서 일본어 한자 열나게 외우는 중에 윈다에게 전화 옴. 크루바에 있다고 ㅋㅋ 캐빈에서 일본어 공부하는 게 뭐가 중요하랴 ㅋㅋ 크루바에서 맥주 두 캔 마시며, 열나게 수다. ㅎㅎ 옆에 아저씨가(사실은 다른 부서 치프ㅋㅋ) 맥주 사줬어잉.. ㅎㅎ 요 며칠 목이며 등이며 몸이 다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마사지를 좀 받아야 겠다고 말하니, 아마 잠을 너무 자서 인 것 같다고 너무 꼭 집어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_- 사실이라 뜨끔함; 어서 쉬어야 해. 너무 오래 일했어. 어서 쉬어야 해. 쉬어야 해. 쉬어야 해.

혹 잊어버리신 분들을 위해 다시 한 번 이야기 해 드리지만, 크루즈 승무원 쉬는 날은 없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승선날부터 하선날까지 일해요…. 이런 게 진정한 노동착취 아닐까요? ㅎㅎㅎ

내일은 하와이 어느 화산섬을 볼 수 있도록 근처에 잠시 멈추어 간다는데 기대가 크다!! 슬슬 힐로, 호놀룰루 계획을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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