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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앵두 Dec 31. 2018

10.기항지에서 크루즈 승무원은

 크루즈 승무원을 꿈꾸는 이들의 로망 중 하나는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나 또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하며, 일하는 삶을 꿈꿨다. 


 보통 크루즈는 기항지에 아침에 도착하여, 저녁에 출항한다. 가끔 1박 2일을 머물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고 승객들도 그렇지만 승무원들은 정해진 시간에 반드시 귀선해야 한다. 만약 승객 혹은 승무원이 귀선 시간에 맞춰, 출항할 때까지 귀선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메뉴얼에 따라 짐을 싸고 포트 에이전시에게 전달된 후, 뒷 상황 수습을 부탁하고 크루즈는 출항해야만 한다. (Port Agency라고 하여 각 기항지마다 크루즈 선을 관리해주는 에이전시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가끔 이런 일은 실제로 발생한다. 


 항해중일 때나 기항지에서나 크루즈 내에서는 부서별로 승무원의 스케쥴이 정해진다. 기항지에서는 몸이 불편한 경우나 개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승객의 대부분이 기항지 투어를 떠나거나 자율 여행을 위해 하선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부서를 운영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날은 부서장의 재량으로 돌아가면서 몇 시간씩 쉬는 시간을 몰아서 주는데 우리 부서는 조금 유동적이라 개인별로 평균 4-5시간 쉬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기항지 밖으로 나가서 관광하거나 쉬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항지에서 승무원의 승하선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제한되기도 한다. 사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들은 자유를 만끽하며 자연과 관광지를 즐기는 듯 멋있게 보이지만 이 사진들은 그야말로 인스타용일 뿐 실상은 그렇지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경험자들은 알겠지...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쉴 세 없이 바쁘게 다니기가 일쑤이고, 예상치못한 일이라도 생긴다면(버스를 잘못 탄다던지,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던지, 길을 잃는다던지 등) 계획했던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힘만 빼고 그저 크루즈로 돌아오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짧은 쉬는 시간이었던 탓에 수박 겉핥기 식과 같은 기항지에서의 시간이었지만 그렇게라도 기항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눈으로 직접 보고, 맛난 음식을 직접 먹어본다는 것에 우선은 의의를 두기로 했다. 이 때가 아니라면 언제 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이름도 생소한 몬테네그로, 버뮤다, 니카라과 등) 기항지에서 쉬는 시간에 크루즈에 머무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참 많이,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세레나 호의 노선은 한중일의 무한반복 네버엔딩 노선. 상해, 제주도, 후쿠오카(아주 가끔 나가사키, 가고시마 하지만 주로 후쿠오카) 를 오가는 노선이었다. 8개월 계약 내내 인천, 부산 몇 번을 제외하고는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게 크루즈 승무원인가. 그래 이게 크루즈 승무원이지. 에라 모르겠다. 


의 과정을 거치며 기항지에 대한 어떠한 기대와 미련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보고 싶었던 상해는 모항이라 승하선이 이뤄지기 때문에 바깥구경을 한 적은 5번 정도이다. 그것도 근처에서 간식 사 먹었던 것이 전부. 동방명주를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8개월 동안. 4일에 한 번씩 상해에 갔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호, 같은 노선으로 두 번째 계약을 받았을 때 너무 실망했다. 그 유감의 표시를 회사에 했는데 회사는 두 달 후 다른 배로 트랜스퍼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배 또한 같은 아시아 노선.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다 오션드림 호에 승선하게 되었다. 세계일주 크루즈라니!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아시아를 거쳐 유럽, 유럽을 거쳐 미국, 파나마 운하를 거쳐 하와이를 한 바퀴 돌면서 수많은 기항지에 기항했다. 오션드림 호에 승선하고서야 비로소 기항지 관광이라는 것을 경험한 셈이다.


 크루즈 노선에 따라 기항지도 달라진다는 점을 예비 크루즈 승무원들은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마이애미에서 7일 노선의 크루즈를 타는 승무원의 푸념이 생각난다. 7일마다 같은 아름다운 바다와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가다보니 이제는 그날이 그날 같다는 것...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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