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생활은 순탄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대학원 수업을 위한 공부를 했고, 공연을 좋아하는데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꽤 자주 있어 공연도 보러 다녔다. 아는 이가 없어 만날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동 이름 외우는 것부터 가끔 시내라고 불리는 곳에 가보는 것까지 모든 게 즐거웠다. 새로운 곳은 늘 신기한 법이니까.
책을 빌리러 가끔씩 학교 도서관에 가긴 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원룸이었다. 혼자 살기 적당한 크기의 공간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같은 공간에서 모든 것을 하는 생활이 조금씩 답답하게 느껴졌다. 침대가 바로 옆에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누울 수 있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학교 도서관이나 독서실에서 공부가 잘 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랑은 먼 이야기다. 자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를 좋아해서 학부 때도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한 적은 없었다. 요즘에는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게 카페는 공부를 위한 공간은 아니다. 원치 않아도 주문을 해야 하고 두세 시간 이상 있을 수는 없고 산만한 분위기라 내게는 자유롭고 편안 것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답답한 마음은 있었지만 뾰족한 수 없이 집에서 공부하는 생활을 반복하던 중 대외활동도 하고, 경제활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어 얼마 뒤 5월 청주에서 열린 2018청주IPC세계사격선수권대회 기간 통역 자원봉사를 지원해 일했다. 그때 만난 인연으로 영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것도 성인 3명씩이나. '드디어 청주에도 아는 이가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장소부터가 문제였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근처의 카페를 전전하며 수업을 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카페 분위기는 역시나 편하지 않았다. 3명 모두 직장인이라 퇴근을 하고 오는데 저녁을 거르기 일쑤였다. 보통의 카페에는 외부음식 반입이 안되고 식사로는 부족한 메뉴들이 대부분이다. 저녁을 거른 상태에서 음료 1인 1 주문도 부담이었다. 학생들이 내 찻값을 내주었지만 그 또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 그래도 집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영어 수업을 시작하면서 점점 더 그 마음은 커졌다. 대학원 다니는 최소 3년을 청주에 거주할 것이고, 개인 공부를 할 공간, 편하게 영어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 이 외에도 여러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친언니가 아는 부동산에 동생이 공부방을 할 거라며 조건을 이야기했다. 부동산에서는 여자 혼자 운영할 곳이니까 깨끗한 곳을 추천하며 꽤나 적극적으로 여러 곳을 알려주셨다. 소개해 준 곳 대부분의 월세는 생각보다 비쌌고 이미 다른 용도로 쓰던 곳이 많아 인테리어를 다시 하는 것도 부담이었다. 마음은 절실했지만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일이 너무 급하게 진행이 되는 느낌이라 '좋은 곳이 나오면 연락 주세요, 급한 것은 아니에요' 말씀드렸다.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시작하니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가다가도 학교 근처에 임대라고 쓰인 곳이 보이면 전화를 해서 조건과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다. 권리금이라는 건 또 뭔가. 이 조그만 곳에 권리금도 있다니.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집 근처의 다른 부동산에 가서 상가 한 곳을 보기도 했는데 공동으로 쓰는 변기 없는 화장실과 이미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지라 새로 해야 하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걸렸다.
마땅한 곳이 당장 없으니 급하게 찾지 말고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7월 개강이니 우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9월 초에 있는 한국어 관련 시험 준비도 해야 하니까 우선은 9월 이후로 미뤘다.
7월 중순 개강을 했고, 하루 6시간의 꽉 차 있는 수업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 두 달만의 연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