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스크린, 상실과 죽음 성찰하는 다양성영화 8편

현재의 삶 치유와 성찰을 주제로 국제영화제 초청작들


영화 <럭키>가 국내 극장가의 박스오피스 정상을 줄곧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부천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 지난해와 올해 국내외에서 개최된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다양성영화들이 잇따라 국내 스크린에 걸렸거나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들 영화는 가을 영화로 추천할 만한데, 현재 상영중인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중견배우 윤여정이, <다가오는 것들>에는 프랑스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열연이 돋보이며 독특한 형식의 로맨틱 코미디이자 올해 부천국제영화제 초청작 <니나 포에버>도 개봉관에서 만날 수 있다.


이어 개봉을 앞둔 작품 중 시한부 삶을 소재로 한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흔들리는 물결>, 소중한 이의 갑작스런 사고나 이별을 소재로 한 영화 <라우더 댄 밤즈><와와의 학교 가는 날><두번째 스물> 등은 인간의 감정과 마음의 흔들림 등을 섬세히 포착해낸 영화들로, 죽음과 상실을 테마로 현재의 삶에 대한 치유와 성찰을 그려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깊어가는 가을에 8편의 작품 리뷰와 영화평점(5점 기준), 그리고 함께 보면 좋을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죽여주는 여자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고, 파고다 공원과 청계천 일대에서 노인들을 상대하며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성노동자, 일명 '박카스 할머니'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핸드백에 박카스와 담배, 각종 성인용품을 잔뜩 넣어 놓고 노인들을 상대로 "죽여주게 잘해 드릴께"라는 멘트를 넌지시 내뱉는 노년의 소영(윤여정 분)이 존엄사, 안락사 등을 희망하는 노인들의 죽음을 돕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 영화는 <하녀><돈의 맛>으로 연기의 아우라를 각인시킨 윤여정에 의한 윤여정을 위한 윤여정의 영화라 할 만큼 극중 복합적인 캐릭터로 변신을 거듭하는 배우 윤여정의 존재감이 눈에 띄며 이주노동자, 혼혈아(코피노),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 소외계층과 다문화 사회에 관해 사유하고 있다.


특히, 가족사의 아픔을 안고 연명하듯 살아가는 소영이 사생아가 될 뻔한 이주노동자의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에서 감독은 위트는 물론 죽음을 앞둔 이들에 대해 냉소와 연민, 비애 등 다층적이고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냈다.


영화 <정사><스캔들><여배우들> 등을 연출한 이재용 감독의 충무로 컴백작으로, 영화는 고독사 등 구멍뚫린 사회안전망에 대한 고발과 웰다잉(Well-dying)에 관한 도발적인 성찰이 돋보이며 영화 속에서는 '죽여주는' 이란 표현이 안락사, 존엄사 등과 중의적으로 사용됐다.


별점 ★★★★(4.0/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오베라는 남자, 아무르, 죽어도 좋아




2. 다가오는 것들


영화 <다가오는 것들>은 원제 <띵쓰 투 컴(Things To Come)>으로 올해 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한 프랑스 출신의 신인 감독 미아 한센 러브의 작품. 워킹맘 나탈리(이자벨 위페르 분)가 갑작스러운 남편의 고백 후, 상실을 마주하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힐링하며 행복을 찾는 모습을 그려낸 감성 드라마이다.


칸-베를린-베니스등 국제영화제에서 다섯 차례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존재감을 잘 살려낸 여성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고, 영화에서는 불안하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중년 여성이 결핍과 공허를 온전한 자유로 채우려는 온기가 느껴지는 반면, 교사 출신의 부부가 감성이 배제된 채 괜찮은 척하는 이성의 아이러니로 인해 홀로 남겨진 중년의 고독에 대처하는 지혜를 조명한다.


나탈리의 흔들리는 어깨를 따라 진폭되는 슬픔과 공허라는 감정의 더께가 쌓이면 관객의 몰입도 극대화되고 영화적 정서를 풍부하게 해주는 아카펠라, 컨트리, 클래식의 선율에 따라 나탈리의 감정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지루해 할 틈이 없다.


별점 ★★★★ (4.0/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아노말리사, 지골로 인 뉴욕,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3.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올해 개최된 20회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은 소설가 가와무라 켄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남자가 의문의 존재를 만나며 하루를 더 사는 대신, 세상에서 없어져도 될 것을 한 가지씩 없애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영화는 스산해진 가을 죽음과 상실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성찰하는데 전화, 시계, 영화 그리고 고양이 등은 단순히 사물만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가 존재하는 이유와 증거가 되는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와 기억마저 사라져버린다는 기발하고 판타스틱한 사유가 주목된다.


일회성과 편의 중심으로 만남과 이별을 가볍게 여기는 이별과 상실의 시대에 우리에게 공감과 배려의 언어가 필요한 까닭을 아름다운 미장셴으로 사유하면서 사토 타케루와 미야자키 아오이의 절제된 감정연기 호흡도 마치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켜 스산해진 가을에 가족의 소중함과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케 한다. 11월 10일 개봉 예정


별점 ★★★★☆(4.5/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천국의 우편배달부, 소라닌, 8월의 크리스마스




4. 와와의 학교 가는 날


영화 <와와의 학교 가는 날>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애틋한 정서를 더해주는 사운드트랙 과 남매의 애잔한 사랑에 눈물샘을 자극하며 장엄하고 아름다운 차마고도의 절경 속 '분노의 강'을 건너지 못하는 소년의 사매곡(思妹曲)이 벅찬 감동과 진한 여운이 느껴진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지형의 중국 원난성 차마고도(茶馬古道)를 배경으로 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학수단인 외줄 짚라인에 의지해 학교를 다니는 누나 나샹(아나무랑 분)과 함께 학교에 가고 싶어 누나 몰래 줄을 타고 강을 건넌 개구쟁이 동생 와와가 새로 학교에 부임한 교생 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엮어냈다.


아프리카의 '스쿨 미' 캠페인 수혜자인 아이들 만큼이나 걸어서 학교 가는 것이 절박하고 애틋한 아이들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연출한 장예모를 떠올리는 중국의 신인 감독 펭 지아후앙과 현대엔 보기드문 스승의 상을 소화한 배우 조희문의 열연이 눈부시다.


단순한 어린이 영화아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소재 힐링무비로, 86분의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중국의 두 아역배우 딩지아리와 아나무랑의 순수하면도 천진스러운 연기에 푹 빠져들게 되고 중국 금계백화영화제에서 최우수아동영화상과 신인감독상 수상작이다. 10월 27일 개봉 예정


별점 ★★★★☆ (4.5/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초승달과 밤배, 천국의 아이들




5. 흔들리는 물결


지난해 개최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된 영화 <흔들리는 물결>은 소중한 이를 먼저 떠나 보내고 마음의 문을 닫은 남자가 죽음을 앞두게 된 여자를 통해 삶의 치유력을 얻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죽음 앞에서 우리들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을 사유하며, 삶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을 존재의 흔들림 속 강을 거슬러오르는 남자를 통해 온기로 전하는 듯하다. 특히, 감정의 절제와 삶과 죽음에 관한 사유가 돋보이는 무자극 힐링 레시피 무비로 추천할 만하다.


영화는 관계를 통한 삶의 복원과 치유를 원한다면 죽음을 성찰할 때라고 말하는 것 같고, 힘들땐 타인에게 말걸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잔잔한 위로를 받라는 것처럼 보인다.


독립영화 <1999, 면회>와 영화 <변호인>에 출연했던 심희섭과 영화 <경성 학교: 사라진 소녀들>에 출연했던 고원희가 첫 스크린 주연을 꿰찬 작품으로 외부에 의한 감정의 강요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가는 내면 연기를 소화한 두 배우의 감성적인 호흡도 주목된다. 10월 27일 개봉 예정


별점 ★★★☆ (3.5/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다른 길이 있다, 유타 가는 길




6. 니나 포에버


영화 <니나 포에버>는 올해 개최된 21회 부천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사고로 여자친구를 잃은 남자 롭(시안 베리 분)이 새 여자친구 홀리(아비게일 하딩햄 분)를 사귀게 되고,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눌 때마다 죽은 여자친구 니나(피오나 오쇼너시 분)가 나타난다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그려낸 로맨틱 코미디이다.


이 작품은 오싹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컬트풍의 로맨스 영화로 볼 수 있는데, 상실의 공간을 대체할 수 없고 그들을 수용하고 위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위트있게 그려낸 블랙 유머가 넘치는 작품이다.


영화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B급 장르물의 특성을 대변하며 실험적이지만, 위트 넘치는 연출로 송새벽-강예원 주연의 <내 연애의 기억>을 떠올린다. 이렇게 독창적인 형식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영국의 크리스/벨 브렌린 등 형제 감독인데, 이들의 행보가 워쇼스키 형제가 될지 다르덴 형제가 될지 또 하나의 형제감독 탄생을 예고한다.


중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등장인물들을 놀라게 하고, 공포에 휩싸이게 하는 니나 역의 여배우 피오나 오쇼네시의 존재감이 각인돼 'Fiona forever'로도 부를 만하다. 10월 20일 개봉


별점 ★★★★ (4.0/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내 연애의 기억, 달콤 살벌한 연인, 오싹한 연애




7. 두번째 스물


영화 <두번째 스물>은 20대에 뜨거운 연애를 한 연인이 세월이 흐른 뒤 이태리에서 40대에 운명처럼 재회하며 보내는 일주일간의 여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그려낸 멜로 영화이다.


영화제 심사위원 업무상 이태리에 온 영화감독 민구(김승우 분)과 현지에서 유학중인 딸도 보고 학회 참석을 위해 이태리에 온 민하(이태란 분)이 이태리 바로크시대의 대표적인 화가 카라바조의 그림 투어를 하면서 오해와 원망으로 생긴 내면 속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동력을 얻고 따스한 위로로 치환해주는 인생 2막의 화양연화(가장 즐거운 시절)를 맞이하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는 수려한 이태리의 풍광과 건축물을 배경으로 속죄와 구원의 삶을 살다간 카라바조의 명화를 보며 그들 스스로도 구원과 심판을 기다리는 오래된 연인처럼 다가온다. 영화 <인페르노>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지중해의 풍광은 당장 이태리로 여행을 떠나고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다만, 일반 관객들에게 다소 낯선 카라바조의 그림을 다큐멘터리처럼 설명하는 듯한 대사톤이 멜로영화의 감성 몰입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연없는 이별이 어디 있을까. 이들은 상처와 원망을 바로 잡기까지 걸린 시간이 13년이나 걸렸다. tvN 드라마 '두번째 스무살'과 제목이 유사하다. 11월 3일 개봉 예정.


별점 ★★★ (3.0/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남과 여(한국), 두번째 사랑, 화양연화




8. 라우더 댄 밤즈


영화 <라우더 댄 밤즈>는 제 68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라스폰 트리에의 친적으로 알려진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작품이다. 종군 사진 작가였던 어머니의 전시를 앞두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 조나가 어머니를 다시 떠올리며 폭탄보다 더한 슬픔과 상실에 관한 사유를 그려냈다.


영화는 사고로 아내, 엄마를 잃은 3부자를 응시하면서 우리가 상실의 고통을 견뎌내며 진실을 마주할 때의 반응들을 섬세하게 포착해내며, 잘 알것 같으면서도 가장 알기 힘든 가족이 진정한 가족공동체로 회복하려면 신념과 윤리의 분열이란 본질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칸영화제에 두 번이나 초청된 주목받는 신예 요아킴 트리에는 스크린에 문학을 써내려가려고 시도했던 것일까. 너무 잦은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과 조나 역의 제시 아이젠버그 등 캐릭터들의 복합적인 시점 구성이 오히려 어느 인물에도 감정 개입과 몰입 방해하는 듯하다.


홍상수의 페르소나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알려진 프랑스 출신의 연기파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올해 국내 스크린에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가운데, 독특한 것은 영화 초반부에 그녀는 사고로 죽었지만 영화 내내 그녀의 존재감이 정서를 지배하는 작품이다. 10월 27일 개봉 예정


별점 ★★★ (3.0/5점 기준)


한핏줄 영화 -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잃어버린 조각, 시





최근 한반도도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미디어의 보도가 우리를 불안에 가두고 있고, 세월호 참사나 도심 속의 스크린도어 사고 등 갑작스런 주변 사람들의 죽음이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져온 탓일까.


올 가을 스크린은 유난히 상실과 죽음이라는 담론을 토대로 현재의 삶을 치유하고 성찰하는 모습들이 돋보이는 것 같다.



국제영화제

/시크푸치

https://t.co/mJbXcjTLBw

@ wikitree 2016-10-23 09:10:5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가을 감성 가득한 멜로 영화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