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이준익 감독, "문화,생활사관점 역사인식 전환 필요"

서울역사영화제 프레페스티벌 초청 GV에서 밝혀


'815 서울역사영화제'가 내년도 공식 영화제 개막에 앞서 프레페스티벌 형식으로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4일부터 광복절까지 이틀간 개최된다.


영화 <박열> 상영에 이어 오후 7시부터 '역사영화와 나'를 주제로 개최된 씨네토크에서는 이준익 감독과 <박열>에서 후미코로 변신한 배우 최희서가 참석해 모더레이터인 맹수진 프로그래머의 진행 아래 두 시간에 가깝게 영화와 역사 인식에 대한 뜨거운 담론을 펼쳤다.


지난달 개봉한 영화 <군함도>가 역사 왜곡 논란에 중심에 선 가운데, 역사를 테마로 한 영화를 가장 많이 연출한 이준익 감독의 GV에는 역사 교육과 역사를 소재로 영화 이야기에 많은 시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준익 감독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전쟁사와 정치사에 국한돼 역사를 보는 눈을 180도 전환할 필요가 있다"라며 "역사책을 만드는 것은 현재 권력이고,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꾸며 취사 선택되는 기록인 역사책을 의심해야 된다. 교과서에 나오고 시험문제나 수능에 나오는 정답도 의심해야 된다. 왜냐면 대부분 정치사와 전쟁사로 구성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관심이 없어도 정치가 내게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영화에 정치적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영화에서는 생활사와 문화사를 중시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를 보면 달라질 것"이라며 "정치나 전쟁사로만 일본에 반일 감정이 있더니 어린 시절에 더빙된 영화를 우리 꺼인지 알고 봤지만 커서 일본 애니메이션이였던 것을 알게 되도 보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문화사와 생활사 측면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문화의 힘은 개개인의 사상과 세계관을 억압하는 정치사와 전쟁사를 부정하며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대응하는 문화사와 생활사에서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못 찍을 영화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며 "일본 권력에는 반감이 있지만, 민중에겐 친밀감이 든다"는 영화 속 박열의 대사를 예로 들었다.


맹수진 프로그래머가 "극 영화이지만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고증에 충실하신데, 실제나 사실성에 비해 어떤 부분에서 허구적인 요소를 허용하는가"냐고 묻자 이준익 감독은 "최근 역사와 관련해 고증 논란들이 있는데 너무 좋은 일인 것 같고, 언제 한번 제대로 우리 사회가 이런 담론으로 들끓어 본 적이 있는가"라며 반문했다.


이어 그는 "왜 이리 늦었는가. 30년 전쯤에 이런 역사 고증에 대한 담론이 사회적으로 확장돼 30년이 지난 지금은 그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영화를 만들어서 영국에서 아서 왕 이야기를 미화해 영화로 만들어도 비난하지 않듯이 우리도 이러한 역사적 고증이나 허구 담론을 진작부터 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창작자가 훨씬 진화되고 진보됐으면 좋은데, 이제 시작이 아닌가 싶다"라며 설명했다.



이준익 감독은 "사극의 큰 어른인 신봉승 선생님의 어떤 강의에서 '이름과 날짜만 맞추면 된다'는 말에 영화 <황산벌> 제작 이후 역사 영화를 계속 찍어 오면서 역사적 고증에 대한 관객들의 요구에 신경을 더 쓰게 됐는데, 아무도 정해주지 않아 나름대로 고증의 기준을 정했다"며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첫째, 인물의 실존성을 강조했다.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고, 만나는 인물도 다 실존 인물이면 실존성을 획득한 것이다.


둘째, 사건의 사실성인데 영화 <박열>을 예로 들면, '관동 대지진이 났고 조선인이 검거됐고 사형을 선고받고 감형이 됐고 죽었다'처럼 사건에 새로운 것을 가미하지 않고 스토리를 진행하는 것이다.


셋째, 시기와 날짜의 정확성이다. 시기와 날짜가 뒤죽박죽되면 의도를 갖고 재구성한 것이 된다. 어떤 인간이 무엇을 선택할 때는 선택의 순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시대까지 같이 읽어내야 관객이 한 인물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창작의 영역은 주인공이 밥을 먹으며 누구와 얘기하는 경우처럼 창작의 영역을 만약에 고증의 잣대로 들이대는 것은 그 사람의 고증이 잘못된 것이다. 그 영역에 대한 분명한 선으로 영화를 만들어내다 보면 고증 담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이를 뛰어넘는 방법은 관객들이 북유럽 켈트족 신화를 가공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리얼리티 감정을 느끼듯, 아시아권에서 '심청전' 설화는 안데르센보다 훨씬 수준 높은 드라마이다. 내러티브를 보면 하늘과 바다를 왔다 갔다 하는 어마어마한 대서사로, 이를 소재로 만든 영화 한 편이 없다는 게 안타깝다"고 전했다.    


끝으로 이준익 감독은 "역사 영화를 할 때 지나친 근엄, 엄숙주의를 통해 역사를 미화하는 것을 탈피해야 한다. 지나친 미화나 비하는 인물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창작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편, '역사의 거울에 오늘을 비춘다'는 슬로건 아래 서울역사영화제는 내년 광복절 기간에 공식 개최된다.

/시크푸치


기사 본문 보기




매거진의 이전글 140자평으로 풀어 본 BiFan 일주일 간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