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중심 지상파TV 예능과 차별화, 시원한 사이다 발언 백배 공감
최근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공개된 영화 <브이아이피>는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범죄수사극으로 한국영화의 고질적이고 상투적인 캐릭터 구성으로 피해자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누아르라는 장르 특성상 자극적인 묘사나 욕설 등이 불가피하다고 하지만, 영화 <추격자>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에서 범행 현장에 유기된 여성의 사체를 전시하는 것은 물론, 사건을 플래시백(회상) 장면으로 강조해야 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이 때문에 영화는 폭력적이고 잔인하면서도 여성 혐오 분위기까지 자아냅니다. 남성 중심의 선 굵은 국내 장르 영화에서 상투적으로 활용됐던 장면들이 겹치면서 젠더 감수성을 고려했으면 어땠을까 싶었어요.
이렇듯 대중문화계는 물론 정치, 사회 전반에 깔린 여성 혐오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2040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젠더 토크 예능이 최근 케이블 채널과 교육방송(EBS)을 중심으로 시작돼 눈길을 끄는데요, 온스타일이 8월 초부터 방영하는 <뜨거운 사이다>와 EBS의 <까칠남녀>가 이에 해당 됩니다.
먼저, <뜨거운 사이다>는 지난 10일 방송에서 출연 배우에게 폭행 및 베드신 강요 혐의로 피소된 김기덕 감독 이슈를 문화계 성폭력이란 주제로 확장하며, 17일 방송에서는 초등학교 교실까지 침투해버린 여성 혐오 현상을 꼬집었죠.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혜진과 김숙이 진행을 맡고 배우 이영진, 기자 이지혜, 변호사 김지예, 이여영 대표까지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패널들이 매주 젠더 감수성을 소재로 담론을 제시하고 마무리 때 사이다 한 캔을 들고 건배하는 시원한 속풀이 토크쇼입니다.
지난번 소개한 <열정 같은 소리>가 청년들의 속풀이 토크라면 <뜨거운 사이다>는 청년은 물론 기혼 여성에 이르기까지 성차별과 문화적 편견에서 무차별로 가해지는 폭력적인 정서 등 우리 사회의 민낯을 조명하며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대표되는 여성 혐오 범죄의 심각성을 지적한 뒤, 일상 속에서 패널들이 직접 느꼈던 여성 혐오에 대한 경험을 나누면서 토론을 이어갔어요.
박혜진은 "직접 들은 여성 혐오 발언이 있다. '아줌마가 왜 이렇게 처녀같이 하고 다녀?'라고 상대방은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한 말 같았는데 굉장히 불쾌했다. 속으로 '아저씨같이 생긴 사람이 뭐 저렇게 아저씨같이 하고 다녀?'라는 말을 떠올렸으나 참은 적 있다"라고 말해 패널들을 분노케 했죠.
또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발견된 금지어 리스트를 소개하며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으로 여성혐오 관련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문제"라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이영진은 "교육도 교육인데 어린 나이라서 어른들 책임이기도 하다"고 성찰했고 성인 콘텐츠 접근을 차단할 수 없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자칫 왜곡된 성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공감했습니다.
페미니즘적 성향의 패널 발언으로 역풍을 맞고 있는 EBS의 <까칠남녀> 역시 박미선, 서유리, 봉만대 감독, 정영진, 이현재 대표, 서민 교수, 작가 은하선이 패널로 나와 사이다 입담을 과시하는데요.
<뜨거운 사이다>와 다른 점은 'X의 방'이라는 사례 시연을 통해 토론 주제를 구체화하고 남성 패널들의 경우, 중립이나 남성의 입장에서 문화적인 현상이나 입장을 전하면서 맞짱 토론을 이어가고 결과에 대해 각자의 한줄 까톡으로 마무리합니다.
'김치녀라 부르지 마라'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는 김치녀를 된장녀와 대조시켜 의미를 설명했어요. 2000년대 초반, 비싼 브랜드 테이크아웃 커피를 즐기며 작은 사치를 누리는 여성을 비하했던 된장녀와 비교해 김치녀는 미국 등 해외의 젊은 여성이 슈가대디에 의존하는 것처럼,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을 일컫는 여성 혐오 용어가 됐다고 합니다.
서유리가 "우리나라의 대표 음식인 김치를 여성 혐오적인 표현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라고 하자 정영진은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대꾸합니다.
이에 서유리는 TV나 신문 등 매체에서 김치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지적하며 추억의 만화, '로봇 태권 브이'를 패러디한 광고와 음료 회사 광고에서 성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꼬집었어요.
이현재 대표는 "광고라는 것이 짧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임팩트 있게 각인되기 때문에 더 조심해서 만들어야 하는데, 마치 여자들이 돈만 보고 남자를 만나다가 결혼을 생각하면서 돈 없으면 '거지야' 하며 떠나버린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라고 전했죠.
이에 박미선은 광고라는 게 파급력이 있고 반복적으로 사람들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주는 게 문제라며 "남자들은 여자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백을 사줘야 하고 자가용도 있어야 하고 오래 만나려면 지갑도 빵빵해야 한다"라며 사례를 소개했죠.
정영진은 "이러한 광고들이 만들었다는 건 실제 사회에서 이런 관계가 많고 공감할 수 있다는 증거"라며 "광고는 다수가 공감하지 않는 메시지는 던지지 않는다"라고 반박했죠.
이후에 방송 초반에 시연했던 X가 등장해 "자신을 금전적으로 이용하려는 여자들과 만남에서 김치녀들에게 이용당했다"라며 "남자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어요.
은 작가는 "사연의 주인공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김치녀라는 허구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방식인 것 같다"라고 풀이하며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그 패턴에 따라 김치녀라고 하는 여성의 특징과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김치녀만 만나왔다 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서 이러한 공통적인 경험을 한 20~30대 남성을 주축으로 여성 혐오적인 의미가 부여됐다는 것이죠.
<까칠남녀>는 여성 혐오에 대한 주제의 토론에서 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를 소개하면서 역차별받는 남성의 에피소드까지 소개하면서 담론을 확대했어요.
수년째 같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며 여성 게스트를 리액션을 위해 구색 맞추는 듯한 지상파TV의 남성 중심 예능 프로그램과 차별화해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공감을 자아내는 케이블 채널의 젠더 토크가 새로운 예능 트렌드가 될 전망입니다.
From Morni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