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뒤집는 인버전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세상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려낸 SF 첩보영화입니다.
이 영화엔 <메멘토><인터스텔라><인셉션><덩케르크> 등 내놓는 작품마다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국내에도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야심이 엿보입니다.
영화를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전작 중 <메멘토> 입니다.
아내가 살해당한 후 10분 동안을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사건을 되짚는 명장면에서 관객들은 시간의 역주행 시퀀스에서 남겨진 단서를 하나둘씩 채워 스토리를 이해해갑니다.
영화 <테넷>도 <메멘토>처럼 순행하는 현재의 사건에서 미스터리하게 남겨 둔 떡밥을 인물들이 인버전하면서 역행하는 과거로 돌아갔을 때 회수하게 만듭니다.
우주의 웜홀을 통해 타임 슬립을 보여준 <인터스텔라>, 현실 속에서 남의 생각을 훔치기 위해 꿈의 전쟁을 펼친 <인셉션>, 육해공 세 가지 다른 공간에서 색다르게 시간을 해석한 <덩케르크>까지 놀란은 마치 시간의 연금술사 같습니다.
그동안 놀란 감독은 시간의 연금술을 통해 차원을 달리하는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번 작품은 전작들의 집대성이라 할 만합니다.
크리스퍼 놀란의 양자물리학 개론
영화 속 등장인물이 전하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대사는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데, 놀란의 야심을 넘어 관객을 향한 도발처럼 다가옵니다.
필자도 두 번을 보고서야 비로소 어렴풋한 이해 속에 리뷰를 쓸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놀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초반 15분에 에스토니아의 오페라하우스 테러 장면을 배치해 가장 몰입도 높은 도입부를 연출했습니다.
무언가 터질 듯한 위기감 속에 웅장한 사운드가 오페라하우스를 뒤덮는 듯하고 순식간에 상황을 지배하는 테러집단의 총격전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입니다.
이후 시간과 엔트로피 등 양자물리학을 소재로 영화 제목 'TENET'이 베일을 벗습니다. 탄환이 없는 총의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총구로 빨려 들어 날아와 타깃을 맞추기도 하고, 감독은 방사능 노출로 인한 엔트로피의 역전 현상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합니다.
영화는 남보다 먼저 회전문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바꾸는 인버전 기술을 먼저 체득한 테러 집단 보스 사토르(케네스 브레너 분)의 패악을 막기 위해 투입된 주도자(존 데이비드 워싱턴 분), 인버전을 잘 아는 물리학 전공자 닐(로버트 패틴슨 분) 그리고 복수심 가득한 아내 캣(엘리자베스 대비키 분)의 협공 작전을 그려냅니다.
영화 속 엔트로피의 역전 현상을 통해 시간을 지배하는 미래세력이 누구인지 궁금할 때쯤 순방향에선 말쑥한 정장 차림의 주도자와역방향에선 방호복과 방독면을 뒤집어쓴 상대가 마주칩니다. 좁은 공간에서 일대일 격투신은 영화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CG를 배제한 촬영과 연출을 선호하는 크리스토퍼 놀런이라면 데칼코마니처럼 순행하는 현재의 사건에 과거를 역주행하면서 만들어낸 액션이라면 배우들의 합과 디테일에 무척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극중 인버전을 위한 회전문은 대칭되어 나타나는데,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시간을 역행하는 블루톤의 과거는 순행하는 레드 톤의 현재 상황을 되감기 한 듯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 떠올리는 시간 역주행 스펙터클 장관
더욱이 영화 후반부에 핵무기의 알고리즘이 묻힌 폐허의 도시, 스탈스크-12에 침투해 시간을 순행하는 레드팀과 시간을 역행하는 블루팀으로 나뉘어 펼치는 전투신은 놀라움 그 자체 입니다.
포격으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건물 사이로, 다시 복구되는 건물 파편들의 중첩은 시간에 역행해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마법사가 파괴된 동네를 복원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역시 '놀란의 야심'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스펙터클한 시각적인 효과와 촬영 기법과 달리 개연성이 떨어지는 영화 속 캐릭터와 사건의우연성은 151분이란 러닝타임에 담기엔 역부족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속에서 사건을 이끄는 건 주도자인데, 그가 왜 캣에게 그토록 집착하는지와 오히려 사건의 열쇠를 쥔 캣이란 캐릭터가 관객의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아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때문일까요? 아버지 덴젤 워싱턴의 그림자처럼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존재감은 적고, 엘리자베스 데비키는 마치 정통 첩보액션 시리즈 <007>의 본드걸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반전과 휴머니티를 통한 인류 구원 성찰
영화 <테넷>은 기존 첩보물들이 그려온 반전과 인류 구원이라는 포괄적인 의미의 휴머니즘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인물들에게 펼쳐지는 사건에 관여하는 동기가 바로 휴머니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미래에 우리가 개발한 과학기술들이 악용되거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력에게 넘어가면 어떠한 위기가 초래하는지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시간을 거슬러 테러 집단의 보스이자 남편과의 요트 신에서는 드라마 <더킹:영원의 군주>에서처럼 평행우주 속 동일 개체가 존재할 수 없기에 누군가의 죽음이나 희생이 필요하다는 역설처럼 풀이됩니다.
테러범이 누른 스위치를 멈추기 위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필요한 건 휴머니티에 대한 연대와 미래에 대한 어렴풋한 희망이 아니었을까요?
시간의 연금술 동해 차원을 달리하는 놀란의 야심이 빛난 영화 <테넷>이었습니다. / 시크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