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작은 스타트업 회사의 회의 문화를 소개합니다.
회의적인 회의
아주 잠깐의 시간 동안 SI업무를 했던 시절, 아침 출근 - 회의 - 점심 - 회의 - 저녁 - 야근 - 회의 - 철야 형태를 무한 반복했던 적이 있습니다. 결론도 나지 않는 무한 반복되는 회의는 일정 조율이 우선이었고, 그로 인한 개발 업무는 당연스럽게 업무시간이 끝난 저녁시간 이후로 진행되는 경우가 빈번했었지요.
덕분에 꼬꼬마 개발자 시절엔 회의란 업무는 적어도 저에게 있어서는 대표적인 방해물 중에 하나였고, 가급적이면 회의에서 제외되고 싶어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적어도 회의라는 본질적인 뜻은, 함께 모여 업무나 목적을 향해 가장 좋은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 시간을 내어 논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의미를 가진 이 단어는, 저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추억이 되었던 적도 있고, 바쁜 시간에 귀찮은 하나의 업무가 되었던 적도 있는 역설적인 단어가 되었지요.
리더급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회의(會議)는 저에게 있어서 하나의 도전 과제였으며, 되도록 업무가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뚜렷한 목적을 같이 상담할 수 있는 수단으로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은 '회의'라는 단어가 더 이상 회의(懷疑)적인 회의(會議)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링크드인의 임원중 하나인 Brian Rumao(Chief of Staff at LinkedIn)가 2015년에 적은 [링크드인에서 하고 있는 회의 방법-How LinkedIn Execs Run Meetings]에서는 훌륭한 회의(Great Meeting)가 되기 위해서 9가지의 팁을 내놓기도 했으며, 구글의 회장이었던 '에릭 슈미트'도 [구글에서는 어떻게 일하는가? - How Google Works?]라는 책에서 회의의 8개 원칙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이 회사에서는 딱히 회의에 대한 원칙을 내놓거나 회의에 대한 규칙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리더급을 비롯한 임원진들은 효율적인 회의를 위해서 계속 시도를 하고 있으며, 고민한 방법에 대해서 전 직원들에게 같이 설득하며 진화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덕분에 회의의 종류가 비교적 많은 편이지만 업무에 지장 되지 않는 한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회의의 방식이 수시로 바뀌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분위기 파악을 하기 위해서는 귀찮은 일들이 종종 생기곤 합니다.
앞서 우리 회사에서는 회의에 대한 규칙을 따로 정해놓은 것은 없습니다만, 지금까지 경험하면서 암묵적인 룰은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만큼은 95% 이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a. 회의하기 전에는 무조건 Agenda를 미리 공유한다.
b. Agenda확인 후 참석자에게 가능 시간을 문의한다.
c. 시간을 확인 후 공통 시간을 정해 초대 메일을 보낸다.
d. 비정기 회의 시간은 최대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e. 정기 회의는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f. 반드시 진행자 역할을 지정한다.
현재 회사에는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정기회의와 필요시 진행되는 업무회의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회의에 대해서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아침 회의(朝会)
아침 10시가 되면 모두 책상 앞에 일어나 인사를 합니다. 기본적으로 진행은 임원진이 하며, 그날 공유사항이 있다면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직원들끼리 전달할 말이 있다면 이 시간에 모두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은 하나 킨(花金:우리나라의 '불금'이라는 뜻)입니다. 코가 삐뚤어지도록 술 마셔 봅시다"
"오늘은 월말입니다. 스스로 근무시간 체크해서 조절하세요."
"오늘 점심시간에 000에서 일하는 친구가 옵니다. 이야기 나눌사람 점심시간에 모이세요."
식의 업무나 업무 이외의 모든 말들을 공유합니다.
길어야 5분이며, 짧을 땐 10초 만에 끝날 때도 있습니다.
2. 팀 칸반 회의
각 팀들이 정한 시간에 매일 칸반 보드 앞에서 각자의 담당 카드에 대해 진행상황을 보고 합니다. 보통 아침 회의 이후에 바로 시작하는 팀도 있고, 점심시간 30분 전에 진행하는 팀도 있습니다. 각자 팀마다 진행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칸반 앞에서 업무를 공유하는 목적은 모두 같습니다.
진행 시간은 10분에서 길어지면 30분 정도로 제한합니다.
이야기가 길어지게 될 분위기가 되면 진행자가 "이 이후에 따로 회의를 잡아서 해당 담당자만 참여해서 진행하도록 합시다. 다른 멤버에게 민폐가 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3. 팀 스프린트 회의 (お茶会)
보통 스프린트는 1주로 잡으며, 2주짜리 스프린트도 있습니다.
해당 스프린트가 끝나는 주에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잡고 회의를 하게 됩니다.
진행자는 그동안 완료했던 칸반 카드와 inbox(업무로써 결정되지 않은 제안들, 또는 과제들이 모여있는 단계)에 담겨있던 카드들을 가지고 와서 피드백을 하고, 결정을 하는 회의입니다.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리더는 과자와 각종 차(お茶)들을 가져와서 멤버들에게 나눠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 회의를 오챠카이(お茶会- 차를 마시면서 하는 회의)라고 부릅니다.
4. 체험회
서비스로 릴리즈를 하기 전 회사 내부에서 오픈 베타를 합니다. 그 오픈 베타를 하기 위해 시연회를 하게 되는데 이를 '체험회'라고 부릅니다.
보통 1시간 동안 진행되며, 매주 금요일 오후 4~5시에 진행합니다.
이때 소지품은 모두 금지이며, 핸드폰도 들고 오지 않고 참석을 합니다.
참석자는 해당 제품(또는 기능)을 개발한 팀이 참석하며, 이외에는 회사 내부 직원 모두가 자유롭게 참여합니다. 보통 1~2개의 기능이나 서비스를 시연하며, 2개 이상일 경우에는 반반씩 나눠서 30분씩 시연회를 진행합니다. 참석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해당 서비스를 고객의 입장에서 평가를 합니다. 이 또한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회의를 진행하기 때문에 맥주와 안주들을 먹으면서 진행합니다.
5. 주 정기 회의(週次会議)
매주 월요일 10시 아침 각 팀의 현황을 보고하는 회의입니다. 정기적인 회의 중에서 가장 분위기가 경직된 회의이며, 각 팀에서 수치로써 현황을 보고 하기 때문에 +숫자가 얼마인지, -숫자가 얼마인지에 대해 예민하게 평가하며 발표하고 질문합니다. 약 30분~1시간 정도 동안 진행이 되며, 각 팀당 약 10분 정도씩 보고를 하는 회의입니다.
지극히 일반적인 정기회의지만, 처음 시작은 약간 시끌시끌했던 회의였습니다.
지금은 10시부터 주 1회 진행하는 회의지만, 처음에는 임원진에서 제안했던 건 월요일 기합을 넣고자, 30분 일찍 출근해서 진행을 하자! 였습니다.
지난 글(근태관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회사 업무 코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입니다. 임원진이 제안한 오전 9시 30분은 코어 타임 이전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반발이 조금 있었습니다.
직원 A : 왜 코어타임 이외에 저런 중요한 회의를 하지?
임원진 : 한주의 시작을 긴장도 기합도 넣을 겸 30분 일찍 시작하자는 거야.
직원 B : 의도는 좋아. 하지만 코어타임을 30분 일찍 당겨지게 되니 코어타임 마감시간도 오후 2시 30분인 거야?
임원진 : 그건 아니야.
직원 B : 그럼 코어타임의 의미가 없잖아. 애초부터 코어타임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고.
임원진 : 미안해. 너의 말이 맞아. 그럼 참석은 자유로 하자고. 관심 있는 직원들은 먼저 와서 볼 수 있도록.
직원 C : 여기 관심 없는 직원은 없다고 생각해. 결국 다 오게 되는 거잖아.
임원진 : 이 회의의 의도를 생각해줘.
직원 D : 애초부터 이런 중요한 건 우리와 함께 결정했어야 하지 않아? 일단 납득은 되니 진행하자. 다만, 우리가 말하는 의도는 알아줬으면 좋겠어.
임원진 : 미안해, 그리고 이해해줘서 고마워. 일단 시범적으로 진행하는 거니 계속 수정해 나갈 테니 지켜봐 줘.
실제로 이루어진 대화였으며, 서로 이해를 하고 9시 30분에 진행을 하기로 했습니다만, 몇 주 진행을 한 뒤 결국은 코어타임의 시작인 아침 10시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진행을 하고 있는 회의입니다.
6. 월 정기 회의(月次会議)
이 회사의 회의 중 가장 큰 회의입니다.
월 1회 진행하며, 전 직원 모두가 참석하는 회의입니다.
가급적이면 이 날은 유급을 삼가도록 권유하고 있으며, 타지방이나 타국에 있는 직원들도 영상통화로 연결하여 모두 참여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든 팀의 실적과 경과보고를 하게 되며, 각 팀당 20분씩 보고를 합니다.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되며, 각 팀의 실적보고, 각 지방 거점의 보고, 각 국(현재는 한국, 미국)의 현지 보고까지 진행됩니다. 또한 회사에 얼마나 돈이 남아있으며, 어디에 사용이 되었고, 이상태로 얼마큼 지속되는지까지 세세한 상황까지 보고 됩니다. 비교적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는 있지만, 직원들은 매달 진행하는 축제처럼 즐기는 분위기입니다. 가장 긴 시간의 회의이기 때문에 회사로부터 점심 식사가 제공됩니다. 매달 한번 모이는 기회인 만큼 적어도 점심식사는 함께 같이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회사의 의도가 들어있기도 합니다. 중국요리를 먹을 때도 있고, 피자를 먹을 때도 있으며, 빵이나 샌드위치, 버거 등을 잔뜩 사 와서 골라먹기도 합니다.
YOUNG
상사나 대표 혼자서 주절거리면서 "네"만 반복하는 회의라던가, 결론은 나지 않고 갑론을박만 반복하는 회의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충분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회사의 젊은이들은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회의 분위기를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차 한잔이나 맥주 한잔, 식사 등을 하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곤 합니다.
실패하게 되면 바로 바꾸는 성격들 덕분에 분위기 적응하는 데는 꽤나 귀찮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계속 시도해보면서 뭐든지 즐기려는 모습들은 굳어버린 저에게 있어서도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젊다는 건, 언제나 부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