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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호 Apr 16. 2024

새벽 한 시의 약속_ '수호'편 Part 2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16p

  1 Am. 새벽 한 시.


  하루의 시작은 밝고 화창한 색이 아닌 곧 어둠에 빠질 듯한 피곤함을 그리는 칙칙한 색에서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일도 역시 해는 뜰거라는 생각에 사무쳐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날이 무수히 많았다. 내일의 삶이 불안했던 나는 이 순간과 친하지 않았다. 그래도 삶은 공평하다. 제일 친하지 않았던 새벽 한 시의 순간은 내가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중력을 높여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친하지 않았던 새벽 한 시는 나 인간 '김수호'가 이 순간을 기다리게끔 하나의 약속을 가져다 주었다.


  새벽 한 시. 그렇다. 새벽 한 시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seonsays/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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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하는 선영은 내게 혼란을 줬지만 선영을 생각할 땐 행복 그 자체였다. 그녀의 남자친구의 유무를 나는 '친구'라는 걸로 애써 대응하며 '유사 연애'를 '우정'이란 걸로 합리화했다.


  사실 선영은 1년 남짓된 남자친구를 시종일관 숨기며 비밀연애를 해왔다. 새벽 1시의 약속을 통해 학생 중엔 내가 처음 알게 되었고 그녀의 비밀을 애써 지켜주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나와 있을 때 유독 편하게  연인에게나 할법한 멘트를 날렸다. 다른 학생들에겐 이런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거슬렸겠지. 그들은 우리 둘다 솔로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내일 발렌타인데이래!"

    "오빠! 나 오빠 일하는 곳 앞이야"

    "맨날 나만 전화하잖아.."

    "내일은 나랑 같이 가자!"


  남들의 시선으론 플러팅으로 밖에 안보이는 이런 멘트를 왜 내게 하는지. 정말 남자친구를 정리하고 내게 찾아 올건지. 나는 이런 말을 하는 선영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설레임을 느끼기엔 충분했기에 어느 순간 선영과 그 시간들을 즐겼다. 그런 모습들은 둘만의 시간을 넘어 남들과 있을 때도 나타났다.


  사람들이 우린 언제 사귀냐고 말할 때 나는 '친구'란 단어를 언급하며 애써 웃어 넘겼다. 선영의 반응 역시 민망하다는 눈치를 주며 자연스레 다른 화젯거리로 말을 옮겼다. 그렇게 남들 앞에선 '비밀 연애'를 하는 우리로 보여졌고, 둘만의 시간인 새벽 한 시의 약속에선 '유사 연애'를 지속했었다.


수호야. 진짜 너 아니였어?


  그랬던 비밀 연애도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오랜만에 무리에 섞여 버스를 삼삼오오 앉아 집을 향하고 있던 중 얼마 안가 선영은 갑작스레 환승을 한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영문을 모른 채 선영을 보내주었으나 선영이 버스에서 내린 뒤 버스는 무엇보다 떠들썩했다. 

  

    "수호야. 진짜 너 아니였어?"

  무리에서 나와 선영을 가장 많이 엮었던 '현택'이 충격 받은 표정을 하고서 내게 물었다. 그리고 난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가슴이 스믈스믈 아프기 시작했다.


  선영이 내리자 왠 멀끔한 남자가 선영의 얼굴만한 꽃을 들고 선영에게 향했다. 그리고 선영은 꽃을 받았다. 

선영이의 남자친구를 목격한 뒤로 버스는 선영의 이야기만 늘어뜨려 놓았다.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둥, 내가 불쌍하다는 둥, 오해하고 있었다며 위로 아닌 위로가 날아다녔다. 원래 알고 있는 사실을 눈 앞에서 직면하니 마음에 큰 구멍이 하나 생겼다. 설레임을 모아 두는 방에 미사일이 날아와 설레임 방이 없어진 것 마냥 마음이 참으로 아팠다. 구멍난 것처럼 공허하게 아팠다.


  그렇게 아팠던 건 내가 그녀를 정말 좋아하고 있었단 반증이 아닐까? 그렇게 그녀의 비밀연애는 끝이 났다.


오늘 헤어졌어요.

    

  비밀 연애가 끝이 나자 그녀의 곁을 맴돌던 남사친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또, 배신감이 많이 느껴진다는 여사친들도 여럿 떠나갔다. 여우처럼 눈웃음으로 남들을 꼬신다는 마녀사냥도 생겨났지. 그녀는 한동안 힘들어했고 남자친구 역시 정리하는 중이었다.


  다시 새벽 한 시가 된 밤. 핸드폰은 약속 시간보다 한참이나 뒤늦게 울렸고 약속을 지키는 그녀의 첫 마디 '여보세요'에는 슬픔이 한 가득이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전화를 했다고 한 그녀는 10분간 아무 말 없이 울기만을 반복했다.


    "오늘 민중이와 헤어졌어요. 이 이별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려고.."

    "당황했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받아줘서 고마워요. 괜찮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우는 그녀를 시간이 가는 지도 모르게 달래주며 그녀와 '김민중'의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꽤나 어른스러운 연애를 했던 그녀를 우리의 언어로 위로했고 그녀는 점차 진정했다. 선영이 진정되고 차분해지면 해질 수록 나는 선영과의 약속이 더 지속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니 잦은 질투와 플러팅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둘만의 미래는 말해주지 않던 그녀였다. 단지 그 순간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선영이지 않았을까. '김민중'으로 채워지지 않던 마음을 내가 잠시나마 채워준 것이 아닐까. 마음이 차분해졌을 때 역시 선영은 나와의 미래는 온데 간데 없었고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구구절절이었다.


  오늘이 선영과의 마지막 통화가 될 것만 같았던 나는 내 진심을 조금은 숨기고 애매하게 닦아 온전하지 않게 그녀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우리의 약속은 이 순간까지면 족할 것 같아 '친구'란 방패를 들이밀며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보호했다.


    "쉽진 않겠지만 일어나면 좋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네. 힘들면 힘들다고 지치면 지친다고 울고 싶으면 울고 숨기지 말아요 나랑 있을 땐 그래도 돼요. 그렇게 힘든 걸 표현해주는 게 나는 더 좋아요. 그때마다 옆에서 응원하고 힘이 되어 줄게요."


    "슬플 때 힘들 때 나를 가장 먼저 찾아줘서 고마워요. 선영. 정말 고마워요 나도."


  선영에 대한 애정을 조금 애매하게 다듬어 전달하며 그녀와 새벽 한 시의 약속을 정리했다. 누웠을 땐 버스에서 느껴졌던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가 움푹 패어진 기분. 구멍이 나서 공허하게 아픈 것보다 움푹 파진 가슴에 상처가 보이는 걸 보는 게 더 아팠다. 그렇게 나 '김수호'는 '선영'과 시작하지도 않았던 관계를 잊으려 하고 있었다.


  다시. 선영은 수호를 좋아한 것일까. 전화기가 울리는 시간 새벽 한 시의 간질거림이 좋았던 것일까.



장덕철 - 그날처럼
날 보는 네 눈이 좋아서
얼굴 붉히며 딴청피던
아름답던 그날처럼
좋은 사람 만나 사랑받고
너도 이젠 웃을 수 있길
찬란했던 우리 그날처럼


습관적 글쓰기를 위해 하루를 기록합니다. 하루동안 제게 입력된 생각이나 상상의 순간들 어쩌면 일기일지도 어쩌면 소설이 될 수도 있는 이 글은 하루의 끝 쯤 하루를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 정도 되겠네요. 영수증을 확인하면서 음악도 소개해드릴게요. 영수증 플레이리스트 <영플리>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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