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초록

이번 여행의 마지막 피날레.

친구의 폰이 사라졌다.

마지막 날 조식


고대하던 귀국일.

몸도 마음도 힘들고 지쳐 인천공항에서 김치찌개에 소주한잔 하는 것만 기다리고 있었건만. 비행 시간이 3시간 20분이나 지연 되었다. 오후 8:10 비행기도 멀게 느껴졌는데 오후 11:30 이라니. 실소가 터진다. 그것도 Bryan 폰으로 문자가 와서 다행이지. 내 폰은 아르헨티나 유심이라 아무 안내 문자도 받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오늘은 한식당에 들러 삼겹살에 소주나 달리고 공항에 가야겠다 생각하던 그 때. 내 환승 시간이 4시간 이었다는 게 떠올랐다. 첫 비행기 지연 이슈로 거의 1시간 안에 환승을 해야 되는데 미국은 환승할 때도 비자 확인을 한다. 젠장. 경유 비행기의 다음 항공 편을 찾아보니 다행히도 3시간 뒤에 인천행이 하나 더 있었다. 그래 12:30 비행기로 바꿔야 된다. 근데 이건 뭐 대한항공 쪽으로도 델타항공 쪽으로도 연락이 닿질 않았다. 아무래도 호텔 로비로 가 직원에게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던 찰나. Bryan 이 델타항공 직원과 연락이 닿았다. 그는 그의 아틀란타 발 LA를 경유하여 하와이로 가는 비행기편으로 변경하였고, 그의 변경이 마무리된 후 나의 것도 잘 변경하였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 떼우기. 사정을 말하니 Late check-out 을 무려 3시까지 해주는 혜자 파크 하얏트. 체크아웃 후 버거에 와인 한 잔 하며 여유 뿌리다 스파 시설을 이용했다. 수영장-자쿠지-사우나 왔다갔다 하다보니 3시간은 금방 갔다. 호텔 바에서 한 잔 씩 기울이다 공항으로 향했다. 하..근데 우버 하나 부를 때도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델타 항공 터미널이 몇 번이냐 묻는 그. 본인이 모르는 걸 나는 어떻게 알겠냐고요..결국 아무거나 찍고 우버 기사에게 문의하라는 답변을 드리고 다행히 우버에 올라탔다. 어둡도 무서운 부에노스 아이레스 외곽 지역을 한참 달려 도착했다. 기사님은 생각보다 더 친절하고 나이스 했다.


체크인 게이트로 슝슝.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체크인 게이트를 확인하고 줄을 섰다. 무슨 줄 서는 입구에서부터 여권과 비자를 확인 하는 것. 당연히 Bryan 도 신분증과 비행티켓 바우처를 보여주기 위해 가방을 뒤지더니 연신 Shit..fuck 을 외치는 것. 설마. 너 진짜 마지막까지 그러지 마라. 하..폰이 없단다. 가방에 있어야 되는데 없다고. 아무래도 택시 안에 떨어뜨린 것 같다 했다. 아니 폰으로 우버를 불렀는데 폰이 없으니 폰을 어뜨케 찾냐고. 그리고 여기가 무슨 천국도도 아니고 무려 아르헨티나인데 카드 잔뜩 꽂혀있는 아이폰을 다시 공항까지 가져다 줄 리가. 그와 함께 공항 information 센터에 갔더니 직원이 내 폰으로 그의 우버 계정에 로그인 해서 기사와 연락해보랬다. 아니 천재세요? 역시 공항직원 짬바란. 근데 내 폰으로 미국 계정 로그인이 안 된다. 일단 시간이 촉박하니 티켓 체크인 부터 하고 방법을 찾아보자 했다. 델타 항공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하더니 그들의 폰으로 로그인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결국 별 소득 없이 그는 information 센터를 다시 한 번 방문 해 보고. 체크인 수속장으로 들어갔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서 그의 카드 분실신고를 위해 전화를 해야되는데 내 폰은 외국 유심이라 전화, 문자가 되지 않았다. 결국 게이트 앞의 엄청 친절한 공항 여직원의 도움을 받아 그녀의 폰으로 해결 완료. 한시름 놓았다. 그는 늘 보조 가방을 들고 다녀 폰을 한 번도 잃어 본 적이 없다 했다. 이번 폰도 무려 7년 이나 쓰던 폰이라고. 나도 믿기지 않는다 이 상황이. 마지막 피날레 장식이 생각보다 화려하다.


내게는 비슷한 상황이 몇 있었다.

내 생애 첫 유럽여행. 3주 간의 긴 여정 끝 마지막 여행지 포르투갈에서 였다. 파리 런던 바르셀로나를 거쳐 온 우리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기 위해 늘 긴장했었고.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지인 포르투갈에서 안심하고 다니던 찰나. 순식간에 친구의 폰이 없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기차 시간에 쫓겨 급히 지하철 티켓을 끊느라 주위를 살피고 소지품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 때도 돌아온 길을 다시 샅샅이 살피다 결국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넘어가. 본 기차는 놓치고 다음 기차를 다시 예매했더랬다. 폰 분실에 대해 여행자보험 받으려면 현지 경찰서에서 받은 서류가 있어야 된다 하여 기차를 기다리며 처음으로 현지 경찰서도 방문 했었다. 그렇게 기차타는 시간이 헬이었다. 우울증에 빠진 그녀 앞에서 당당히 폰을 쓰자니 조롱하는 것 같고. 폰도 못보고 나도 같이 울상을 짓고 있자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뭐라 말해도 위로가 안될 걸 알기에 무어라 해줄 말이 없었다. 그렇게 쎄했던 마지막 일정. 나는 감정적 위로를 못해 준 게 미안하여. 마지막날 혼자 샹그리아를 병째 털어내곤. 서울가면 너 휴대폰 값의 절반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같이 여행하다 잃어버렸으니 절반씩 하는 게 맞다고. 그녀는 됐다고 한사코 거절하며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마무리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디퓨저를 사들고 포항에 우리 부모님까지 만나뵙고 왔다고. 여행 잘 마무리 하고 왔다며 우리 엄마를 만나 선물과 함께 인사를 드리고 왔더랜다. 본인이 중간에 폰을 잃어 버리기도 하고 온갖 여행 스토리를 나 대신 우리 엄마에게 풀어주었다던. 감동이었다. 아무튼 그녀와 나는 중딩 때부터 만난 고향 친구 였기에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던 우리의 첫 배낭여행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내 고향 친구가 아니다.

우울할 그를 위해 탑승 전 맛난 거나 사먹여야 겠다 하니 입맛도 없는지 생각이 없단다. 그렇게 맥주 한 캔 씩 사 탑승 게이트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까 체크인 할 때 있던 항공사 직원이 그를 찾아왔다. 마침 우버 기사와 연락이 닿았고 다시 나가서 폰을 받고 체크인 수속을 밟으면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It depends on you. 라며 그는 게이트 근처에 있겠다고 맘을 정하면 찾아오라 하였다. 아니 일단 받을 수 있든 없든 기사보고는 빨리 공항에 와라 해야될 것이 아닌가. 왜냐면 시내에서 공항까진 40-50분이 걸리고. 우리는 탑승 전까지 1 시간이 채 안 남아 있었다. 빨리 결정해야 된다는 내 말에 그는 다시 직원을 찾아 갔고. 다시 무기력하게 돌아왔다. 기사가 돌아오는 데 45분이 걸린다고. 비행기를 놓칠 거라고. 비행기 티켓을 다시 끊으면 200 달러 인데. 폰은 고작 100 달러? 어차피 카드정지 다 시켰으니 그냥 포기하는 게 낫다고 결정을 내린 듯 했다. 뭐.. 그게 맞지 비행기 티켓이 많이 비싸긴 하더라고. 그러고 나서 한참을 고민 하더니. 비행기 티켓은 200 달러 지만 자기 폰에는 코인과 주식이 있으니 폰을 찾으러 가야 겠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인증서 없이 코인과 주식을 건들일 수가 없을 텐데 저게 무슨 소용이지? 생각했지만 이건 그의 일이니..그렇게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 또 다시 돌아왔다. 폰을 찾고 나서 다시 비행기 티켓을 결제 해야하는데 카드를 모두 정지시켜 티켓을 구매할 수가 없다고. 첩첩산중이다. 나 같음 폰을 일단 찾으러 간 후 항공사 직원에게 사정을 말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했을 것 같다. 그리고 체크인 수속은 탑승객들에게 사정을 말해 새치기하고. 근까 뭐 내 비행시간이 급해서 제가 앞으로 가도 될까요 하고 울고불면 어찌하겠는가 도와주시겠지.

아틀란타 경유 비행기

다 각자의 삶. 각자의 방식대로 사는거지.

다행인지 뭔지 나는 탑승 전에 몸검사 해야되는 사람으로 분류 되었고 그렇게 Bryan 과 찢어졌다. 하..다행이다. 나도 쉽지 않았던 길고 힘든 여행. 그의 뒷바라지 까지 하려니 표정관리가 안 되려던 찰나 였다. 그래도 친구가 폰을 잃어버린 심각한 상황인데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도 이기적이다. 적당히 해야지..갑자기 귀국 공항 길에 폰을 택시에 왜 두고 내리냐고..그리고 그 폰은 케이스에 신분증과 카드를 모조리 다 꽂아놔 꽤나 무겁기도 하고 엄청 중요한 건데 왜..어떻게 그걸 제대로 못 챙기는지.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인생의 파트너를 잘못 만나면 이 꼴이 나겠구나. 한 명은 계속 사고를 치고 나는 계속 수습해야 하는 끝없는 악 순환.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나지 못하면 Cooperation 하며 1/2 씩 나눠 해결하는 게 아니라 내가 1+1 . 즉 온전히 2 개를 혼자 해결해야 된다. 소름끼친다. 이래서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잘 안 하나.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고 어깨는 누구에게 밟힌 거 같이 아파오고. 자리는 좁아터져 모가지가 꺾이는 듯한 고통을 참아내며 졸다 깨기를 반복. 다행히 시간이 후딱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피곤했다. 세 시간 스파 후 한 잔 딱 하고 기분좋게 싸악 잠들 계획 이었는데. 갑분 폰+카드 분실이라뇨. 동시에 더 큰 죄책감도 느껴졌다. 여행엔 관심도 없는 애먼 애한테 괜히 제안을 해서 나 따라와 등산하다 다치고 폰까지 잃어 버리고. 쟤 인생 최악의 잊을 수 없는 기억 이겠거니. 같이 좋자고 온 곳에서 나도 힘들 었지만 동행자에게 최악의 추억을 선물한 건 아닌가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그래 이제 당분간은 여행없이 돈 아끼고. 궁딩이가 근질근질 하면 국내여행이나 캠핑 다니고 그래야 겠다. 물론 돈도 많이 쓰고 지구 반대편 까지 왔으니 이런 고생도 하며 내 자신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지만. 진짜 이런 여행이라면 걍 내 자신에 대해 그만 알고 싶고 그만 성장하고 싶다.


아무지간.

이번 여행에서도 역시나 마지막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긴장을 늦출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친다. 이 고단한 여행을 함께 한 나 자신과 그 분 께도 내적 박수를.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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