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른다.
특히 안 좋은 마음은 더욱 더. 그러면 입을 닫는다. 입을 닫고 관계도 닫는다. 그게 내가 안 좋은 마음을 대하는 방법이다.
오전 8시 3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2시간 전 도착했다. 근데 불이 꺼져 있다. Chat GPT 에게 물어보니 7시쯤 공항직원들이 출근 한단다. 진짜 7시가 되니 불이 커졌다. 체크인은 5분 컷. 작고 귀여운 El Calafete 공항이다. 비행기를 타고나니 나는 창밖을. Bryan 은 내내 허공 어딘가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그의 표정도 보기 싫다. 애써 외면하고 창가에 기댄 그 때 딥슬립에 빠졌다. 아니 걍 기절했다고 보는 게 맞다. 피츠로이 등산과 빙산 트레킹을 연달아 한 파타고니아 일정은 내게도 너무 빡셌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기절하고 깼는데 내 입이 벌어져있다. 민망하다. 입 벌리고 기절하다니. 나도 진짜 피곤하긴 피곤 한갑다. 자연스럽게 침을 닦고 쿠키 하나 받아 야무지게 클리어 한 다음 다시 뻗었다. 또 입이 벌어졌다. 이제 뭐 거의 자동문이세요...그와중에 Bryan 은 또 심각하다. 쟤는 도대체 이번 여행에 와서 알차게 보낼 생각이라곤 1도 없이 노상 허상에 빠져 우울하게만 보낼 생각인가보다. 아무래도 우린 안 맞다. 나를 느끼하게 한참을 바라보던 그가 할 말이 있다한다. 뭔데? 라고 하니. 어제 비싼 투어를 내가 결제했는데 가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니 그게 왜 미안? 어차피 결제야 숙소 투어 나누어서 각자 반반씩 결제했고 너가 걍 돈 버린 거지 라고 말하고 싶지만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그냥 웃는다...그리고 자기가 코를 고느라 내가 숙면하지 못한 것도 미안하단다. 아니 그게 왜 미안하냐고. 그건 너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냐 미안할 필요없다 하니. 남은 일정은 본인이 케어 하겠단다. 쓰읍..그닥 믿음직 스럽진 않지만 그래. 고작 하루 남은 일정이지만 잘 해보시길.. 그렇게 그는 그의 마음에 남아있던 돌덩이를 내려놓았다.
드디어 부에노로 복귀.
좋은 숙소에서 푹쉬며 주위 구경하고 탱고보고 호캉스 좀 즐겨야지. 팔레르모에서만 지내다 레콜레타 지역으로 오니. 이제야 왜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남미의 파리인지 알겠다. 동네에 유럽식 건축물 부터 여유있고 고즈넉한 분위기 까지. 진짜 유럽의 어느 부촌에 와 있는 느낌이었다. 우와아 호텔 체크인을 하니 더 좋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파크 하얏트는 구관과 신관 사이 정원이 대박인데 어느 식당이나 바를 이용하든 정원을 바라보는 테라스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 역시 좋은 호텔에 묵어야 되는구나 싶다. 피곤하지 않고 성공적인 여행을 하려면 비즈니스를 타고 5성에 묵으며 다녀야 되는 걸까. 언능 서울에 돌아가서 열심히 돈 벌어야지 싶다. 체크인 후 예쁜 수영장과 자쿠지 스파에서 누워 있자니 몸이 줄줄 녹는 느낌이다. 아 좋다. 너무 힘들어 비행일자를 오늘로 땡길까도 고민했었는데 큰 일날 생각 이었다. 온전한 휴식 후 정원 테라스석에서 간단한 저녁과 와인을 한 잔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Bryan 과 진지한 대화를 했다. 오늘이 마지막 밤인데 무슨 생각이 드냐고 묻는 그의 말에 아무생각 이 없다고. 너는 어떠냐 했더니 나의 cold personality 를 처음 본단다. 하와이 때와 다른 사람 같다고.
같겠냐?
여긴 하와이도 한국도 아닌 둘 다에게 새로운 곳인데 어떻게 손도 까딱 안하냐 너는..? 이라고는 말 못 하고. 내가 계획하고 찾아보고 예약하고. 네가 이 여행에서 한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이거 딱 하나만 물어보자고. 이게 ‘내’ 여행이니 ‘우리’ 여행이니? 난 친구들과 여행하면 늘 Cooperation 했는데. 내가 큰 계획 전반을 짜면. 친구가 식당을 알아보고 예약하고. 내가 아프면 친구가 운전하고 알아서 다니고. 같이 때론 따로 다니면서 파트너가 됐는데 넌 뭐냐고. 여행도 인생과 같다 생각하는데 우린 파트너가 아니다. 나는 너의 프라이빗 가이드 투어 같고 여행 내내 중국 할배와 같이 다니는 느낌이었다. 하니 그는 내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머 놀랐다. 그러자 그도 억울한 듯. 본인은 그저 나를 보기 위해 힘들게 휴가를 낸 거고. 애초에 아르헨티나는 관심도 없었으며, 이 곳은 내가 오고싶어 한 곳이니 그저 내가 가고싶은 곳을 따라만 가주면 된다 생각했단다. 그게 무슨 여행이냐고...나는 여행 ‘파트너’를 원한 거지 ‘팔로워’를 원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보고 앉아 서로 다른 곳을 바라 보았고. 그렇게 길고 긴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